• 반값 등록금보다 급한 것

    대졸의 취업률이 57.2%인 상황에서
    반값 등록금보다 급한 것은 대학의 구조조정이다.


    최성재     
        
    약속을 중히 여기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TV에서 단호하게 약속한 대로 반값 등록금 행보를 내딛었다.
    전국의 대학 등록금이 14조 원이니까, 순차적으로, 소득연계형으로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2014년부터 매년 혈세 7조 원이 추가 투입될 모양이다. 과연 그만한 효과와 가치가 있을까.

    전문대 포함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1, 2위를 다툰다.
    2007년 기준 한국 대학생 총수는 326만 명(교육부)으로 일본보다 6만 명 많다.
    일본은 한국보다 인구는 2.6배, 일인당 국민소득은 2배이다.
    고도 산업국가일수록 대졸의 수요가 많아지는 것은 제외하고 인구만 감안하더라도,
    한국은 일본에 비해 대학생 숫자가 3배나 많은 셈이다.

    한편 한국의 4년제 대졸의 취업률(2012년 대학알리미)은 57.16%, 전문대졸 취업률은 62.14%이다.
    이것은 단순히 취업률만을 따진 것이고 ‘위장 취업’을 빼면 취업률은 50%를 넘지 못할 것이다.
    학력을 제대로 인정받는 경우는 비공식적이긴 하다만 40%로 알려져 있다. 60%가 도로아미타불!

    대졸이 고졸보다 연봉이 많다고 하지만, 실업자를 0원으로 계산하고 고졸 대우 받는 취업자를 여기에 더하고 대학 재학 기간의 기회비용(opportunity cost) 약 1억 원을 얹으면, 아마 평균적으로 지금은 고졸의 임금 저울추가 더 무거울 것이다.

    교육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전형적인 대중주의(populism)에 휘둘려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학 문을 넓히면 사교육이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교육부는 대학 설립을 쉽게 해 주고 학생 정원은 선뜻선뜻 늘려 주는 대신 ‘감 놔라 배 놔라’ 권한은 한층 강화했다. 교육부의 1개 과장이 웬만한 대학총장보다 세다.

    5천만 국민에겐 집집마다 싸구려 사각모를 내려 보내, 국민 모두가 위대한 학자가 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대학은 학력 미달 학생을 잔뜩 받아 학점을 인심 좋게 주어 등록금만 내면 거의 100% 졸업시켰다.

    반값 등록금은 또 다른 교육 포퓰리즘이다.
    대학 재정의 공공부문 분담 비율이 한국은 21%인 반면, OECD 평균은 69%라고 하니까, 300만 젊은 유권자는 환호했다. 대학 운동권은 정치 투쟁 이슈가 사라지면서 사학비리와 반값 등록금 투쟁으로 선회했는데, 여기에 정치권이 여야 없이 솔깃해진 것이다. 300만의 붓두껍 동그라미!

    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OECD는 대학생 숫자가 인구 비례하여 한국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특히 유럽은 대부분 국공립이다. 한국은 후진국의 후진국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경제개발이 본격화되기 전에는 재정의 절반 이상을 미국의 동정심에 의존했기 때문에, 재정 형편상 국가가 대학을 설립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다행히 사학재단이 교육입국(敎育立國)을 내걸고 팔을 걷어붙였다.

    만약 사립대(4년제 158개)를 1995년 이전처럼 엄격히 제한했다면,
    45개 국공립대가 22%가 아니라 70% 차지하게 했다면,
    대학 정원이 그렇게 해서 현재의 3분의 1밖에 안 됐다면
    한국도 공공부문 부담이 70% 정도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눈앞의 표와 인기에만 연연한 최근 20년간의 정부들이 하나같이 대학정원을 무지막지하게 늘려 주거나 거의 구조조정하지 않음에 따라, 대학졸업이 곧 취업이 아니라 대학졸업이 곧 실업이 되도록 조장했다.
    그러다가 이제 여야 정치권이 한 마음 두 뜻으로 반값 등록금의 미끼를 덥석 물고 300만 표의 월척을 기대하고 있다.

  • 현재 한국의 대학은 재정이 국공립대와 일부 사학을 제외하고는 매우 열악하다.
    마구잡이 학생 증원으로 교수 1인 대 학생 비율이 1: 27이다. 고등학교 1:16보다 못하다.
    OECD는 평균은 1:15다. 한국의 교원 확보율이 71%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도 연봉 1천만 원에서 2천만 원 수준의 겸임교수를 포함한 것이다.
    그래서 대학은 대부분 박사 학위 소지자인 시간강사를 후려친다.
    강의는 그들에게 거의 50%를 맡기고 강사료는 방학 3달은 지급 않으니까, 1년에 고작 7백만 원 정도밖에 안 준다. 한 달 평균 60만 원이 안 된다. 비정규직 중에 이보다 슬픈 비정규직이 없다.
    전임 교원 1명 쓸 돈으로 시간강사 10명을 쓴다.

    실험 실습? 제일 사정이 좋다는 서울대도 선진국의 대학에 비하면, 아니 후진국인 중국의 명문대에 비해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오죽 했으면 서울대 공대 대학원에 미달 사태가 벌어질까.
    그나마 제일 나은 대학이 포스텍(포항공대)과 카이스트와 울산과기대이다.
    그러나 이들 대학은 정원이 300명에서 1000명 정도밖에 안 된다.
    만약 이들 대학도 다른 대학처럼 마구잡이로 정원을 늘린다면 2류 대학으로 바로 곤두박질친다.

    과감하게 대학 구조조정을 병행해야 한다.
    대학 교원은 그대로 두고 학생은 최소한 30%는 줄여야 한다.
    적어도 졸업을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반값 등록금도 그렇게 어렵지 않고 대학의 경쟁력도 크게 높일 수 있다.

    뭐, 대학 못 가거나 중도 탈락한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고?  
    그들에게는 대구 영진전문대나 각도에 평균 하나씩 있는 폴리텍대학이나 우수 직업훈련소처럼 회사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선진 학문과 선진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스웨덴이나 핀란드, 독일 등과 마찬가지로 산학협동을 가로세로로 연결해야 한다.
    또는 최근의 몇몇 특성화 고등학교처럼 회사서 탐내는 고졸을 양산해야 한다.

    오로지 사교육 줄이려는 근시안적 생각으로 대학생 숫자를 늘리다 보니까, 사회의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아 이제 휴학생이 3분의 1에 달한다. 휴학 기간 중에는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대부분 사교육에 매달린다.

    1인당 사교육비가 대학생이 중고등학생보다 높아진 지 옛날이다.
    교육부만 모를 뿐이다. 또는 알고도 모른 척할 뿐이다.
    이른바 스펙을 쌓기 위해서 대학생들은 등록금보다 많은 돈을 쏟아 붓는다.
    각종 자격증, 고시와 공무원 시험, 편입과 취업 준비 등으로 중등반 학원보다 단가가 훨씬 센 수강료를 지불한다. 외국에도 아낌없이 갖다 바친다. 어학연수 6개월만 다녀와도 4년간 대학 등록금을 우습게 날린다.

    덕분에 선진 외국은 가만히 앉아서 부자 나라 한국이 뿌린 달러를 세기 바쁘다.
    반면에 우리나라 대학에는 중국인 근로자가 대거 몰려온다.
    아무나 등록하고 그저 ‘반값 등록금’만 내면 결강을 밥 먹듯 해도 졸업장을 주는 그런 대학에 몰려온다.
    그러면 외국인 학생 비율이 높다며 교육부는 대학의 순위를 쑥 올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