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평생의 가장 길었던 하루

    두 시간 뒤엔 그로부터 더 불길한 소식이 들어왔다. '정치부 기자들은 박근혜 패배 쪽으로 기우는 듯합니다'

    趙甲濟    

  •   확신과 불안 사이
     
       투표일을 하루 앞둔 지난 12월18일 밤 광화문 광장에서 새누리당 朴槿惠(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마지막 유세가 있었다. 수만 명의 인파는 거의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었다. 全연령층에 걸친 군중이었다. 朴 후보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 나게 하였다. 정치집회이지만 축제 분위기였다. 가장 불리한 서울의 열기가 이 정도라면 '박근혜 당선은 확실하다'는 생각을 더욱 굳혔다.
      
       나는 그 나흘 전에 TV 조선 인터뷰에 나가 너무 단정적인 예측을 했었다.
     
       <조갑제 대표: 제 판단은 이렇습니다. 최근 20여개 여론조사 기관에서 막판에 발표를 했는데 한국일보 조사를 제외하고는 전부 박근혜 씨가 이기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좁혀진다고 하더라도 이제 5일 남았는데 여기서 추월한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대체로 대표님은 이번 대선의 승부를 어느 정도로 예상하세요?
       조 대표: 저는 한 150만표를 기준으로 해서 前後(전후) 50만표 쉽게 말하면 150만표에 오차범위 50만표, 적으면 100만표, 많으면 200만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18일 밤부터 비공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文在寅(문재인) 후보가 무섭게 추격해오더니 드디어 역전하기 시작하였다는 소문이 번지기 시작하였다. 불안해졌다. 그렇다면 광화문에서 내가 확인한 느낌이 틀린 것인가? 이날 밤 10시를 넘어 TV 조선 인터뷰가 있었다. 진행자가 "좌우 대결 구도에선 우파가 큰 차이로 이길 줄 알았는데 박빙입니다. 내일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이왕 쏟아낸 말이니까 주워담기도 뭣하고 해서 "그렇지 않습니다. 상당한 차이로 박 후보가 이길 겁니다"라고 했다.
     
       휴대전화로는 '판세가 朴 후보에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메시지와 역전된 여론조사 수치가 계속 들어왔다. 나는 기성세대와 서민층이 궐기하여, 유례 없는 투표율로 박근혜를 당선시킬 것이란 感(감)이 생기는데, 기자들과 이른바 정치평론가들은 젊은 세대의 투표율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새누리당 선거 관계자들도 '투표율이 절대로 70%를 넘지 않을 것이다'고 단언하였다.
     
      영하 10도의 새벽을 뚫고 투표장으로
     
       12월19일 투표일 아침 아내가 혼자 사시는 70代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투표하러 가셔야죠.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벌써 투표하고 왔는데요."
       "예?"
       "어제 박근혜가 연설하는 걸 보니 옛날 박정희 대통령과 저의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컥 했습니다. 또 다시 그때처럼 '잘 살아 보세'로 나간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투표장으로 갔습니다. 추워서 혼났습니다. 오가는 데 한 시간 걸렸어요."
       몸도 성치 않은 분이 영하 10도의 새벽 길을 걸어서 투표장으로 간 것. 이건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전 10시쯤, 한 우파성향 여론조사 전문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어제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이 逆轉(역전)한 경우도 상당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세대 대결로 생각하고 투표장에 많이 나갈 것 같아요, 우리도 투표 독려를 해야겠습니다."
     
       오전 투표율은 엄청 높게 나오고 있었다. 朴 후보 지지가 높은 지역(경상도)에서 특히 높고 서울이 최저였다. 반드시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투표장에 갔더니 젊은이들이 과거 선거 때보다 많이 보였다. 한 현직 신문사 간부는 "투표율이 높게 나와 불안해집니다. 73%를 넘으면 박이 위험하답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두 시간 뒤엔 그로부터 더 불길한 소식이 들어왔다. '정치부 기자들은 박근혜 패배 쪽으로 기우는 듯합니다'
     
       오후 1시 쯤 한 知人(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출구조사에서 박근혜가 1.5% 지고 있다는데 아세요"라고 했다. 선거캠프에서 활동중인 새누리당의 한 국회의원도 힘이 빠진 목소리로 "불안합니다. 갤럽에선 투표율이 77%를 넘기면 어렵겠다고 합니다"라고 했다.
     
       “아빠,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내일은 꼭 좋은 소식 가지고 아빠 보러 갈게요-”
     
       오후가 되자 우파 단체와 인사들이 발신한 투표권유 메시지가 불티 나게 들어왔다. 높은 투표율에 놀란 사람들이 비상을 건 것이다. 故김우동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캠프 선대위 홍보팀장의 딸 김예현 씨도 자신의 트위터(@KimYehyun)에 '투표 인증샷'을 올리면서 글을 남겼다. 김 前 홍보팀장은 朴 후보의 강원도 선거유세 중 발생한 수행차의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진 뒤,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故人(고인)의 부친은 김정일의 지령으로 김현희-김승일에 의해 공중폭파 된 대한항공(KAL) 858편의 기장이었다.
       “보고 싶은 아빠...! 오늘은 엄마랑 손 꼭 잡고 투표하러 왔어요. 아빠,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내일은 꼭 좋은 소식 가지고 아빠 보러 갈게요-”
       '꼭 좋은 소식'의 가능성이 옅어지고 있을 때라 글이 안쓰러웠다.
     
       박근혜 패배를 가능성으로 받아들이자니 그 뒤에 닥칠 사태가 걱정되기도 하였지만 나로서는 <월간조선> 1월호에 당장 써야 할 기사가 문제였다. 박근혜의 당선을 전제로 하여 준비해왔는데, '왜 박근혜는 졌느냐'로 주제를 바꿔야 할 판이었다. 이는 동시에 '나는 왜 오판하였느냐'는 반성문이 될 터였다.
       나는 친지들이 승패를 물어올 때마다 '박 후보가 100만 표 이상으로 이길 것이다'고 장담하였다. 우선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주의를 주어야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신경질을 냈다.
       "그런데 뭣 때문에 텔레비전에 나와서 박근혜가 크게 이긴다고 큰 소리 쳤어요? 그러니 자극 받은 젊은이들이 몰려 나오지."
     
       한 후배기자는 이런 전화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가 나라를 정상화 시키려는 최소한의 노력만 꾸준하게 기울였다면 나라의 운명이 젊은이들의 투표율에 바뀔지도 모를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투표마감 한 시간 반을 앞두고...>
      
      투표 이틀 전 새누리당 쪽에서는 "갖고 있는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을 全文(전문) 공개해버릴까" 하는 논의를 한 적이 있으나, "3~5% 차로 이길 것 같은데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출구조사 발표 시각이 다가오자, 나는 '만약 문재인이 당선되면 대화록을 일찍 공개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1등 공신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낭패한 나를 구해준 것은 5시40분쯤 한 공무원이 걸어온 전화였다.
       "방송 4사 출구조사에 의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