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철(金尙哲) '미래한국' 발행인 別世

    전 서울시장 김상철(65) '미래한국' 발행인이 오랜 지병끝에 14일 강남성모병원에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22호실), 영결식은 17일(월요일) 오전10시 대치동 서울교회에서 거행한다.

     

  • ▲ 2004년 국가보안법사수를 위한 국민대회 당시 연설모습. 

    故김상철(前 서울시장) 미래한국 발행인은 1947년 평안북도 태천 출생으로 서울 법대를 수석 졸업했다. 80년대 대표적 인권변호사로 ‘대우자동차 파업사건’, ‘김근태 고문사건’, ‘서울 美 문화원 점거 사건’, ‘권인숙 性 고문 사건’ 등 대형 시국사건들을 맡아 변론을 펼쳤다.

    1987년 6월 대시위 당시에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으로 활약했다.

    6.29선언 이후 보안처분 제도의 존치를 놓고 與野 改憲협상이 결렬 위기에 놓이자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보안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는 타협안을 내놓아 野黨을 설득했고, 독일법관 연수 시절의 경험을 살려 憲法裁判所 제도를 받아들이도록 與黨을 설득하기도 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46세의 젊은 나이로 서울시장에 임명되어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韓美우호협회’ 회장,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이사, ‘밝고 힘찬 나라운동’ 집행위원 등을 맡아 韓美우호 강화와 대한민국 正體性 확립에 헌신했다.

    1990년대 중반 북한 동포들의 대량아사 사태를 목격한 뒤, 1999년 4월 ‘북한난민보호’ UN청원운동본부장을 맡아 2년 반 만에 국내외에서 1180만 명의 서명을 받아 냈다. 이후 ‘북한난민보호운동본부’(CNKR)를 이끌며 탈북자 지원 및 구출 운동을 벌였다.

    2002년 6월 愛國 정론지 ‘미래한국신문’(現 격주간 ‘미래한국’)을 창간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故人은 평소 대한민국과 이웃, 그리고 교회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했었다.

    특히 2003년 3월1일 서울시청 광장에 10만 명이 넘는 애국시민들을 모은 反核反金국민대회의 집행위원장으로서 좌파정권하의 우파애국운동을 선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