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호남의 선택-또 묻지마 투표?
    ‘문철수’ 되면 민주당 해산‧열린당 재창당-

    오 윤 환

    여전히 살벌하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대한 호남 주민들의 반응이 그렇다.
    광주에선 박 후보 현수막이 칼로 예리하게 찢겨진 채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면도날 테러’를 떠오르게 한다. 박 후보 얼굴에. 버얼건 스프레이로 “독재자”라 휘갈겨 쓴 프래카드도 나온다. 박 후보의 지난 27일 전북 임실 유세 도중 지나가던 차량들이 일제히 클랙슨을 울려 박 후보가 마이크를 내려놔야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박 후보의 유세도 조심스러웠다.

    반면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대구‧경북 유세는 거침이 없다. 박 후보와 같은 날 문 후보는 박 후보 본거지인 대구의 심장부 동성로 대구백화점 광장에서 “새누리당이 대구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대구시민들은 믿는 도끼에 수십 번 발등을 찍혔다"고 기염을 토했다. 문 후보 진영은 대구‧경북에서만 ‘20% 이상’의 지지를 장담하고 있다. 박 후보가 ”호남에서 10%만 넘기자”고 안간힘 쓰는 것과 대조적이다.

     지금 분위기로는 박 후보가 호남에서 10%를 넘기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5년 전 호남 출신 정동영 후보가 출마했을 때도 호남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9%’를 얻었지만 여건이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 새누리당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묻지만 투표’는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이상하다. 민주당 문 후보는 부산 출신이고 그가 몸담았던 노무현 정권은 호남을 ‘홀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를 출범시키자 마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불법송금 특검을 수용해 ‘DJ 양아들‘ 박지원을 구속시켰다. 대북불법송금은 DJ의 노벨평화상까지 먹칠하는 국제적 망신이다. 그 중심에 ’청와대 문재인‘ 후보가 있다. 문 후보가 호남을 돌아다니며 “노무현 정부 때 많이 섭섭하셨죠? 호남의 한과 설움을 풀어 드리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푹” 숙인 건 이 때문이다. 문 후보는 노무현 비서실장 때 아예 “노무현 정부는 부산 정권”이라고 노를 당선시킨 호남에 못을 박기도 했다.

     거기에 비해 새누리당 박 후보는 호남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다. 호남을 서운하게 했을리도 없고 홀대한 일도 없다. 다만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DJ의 오랜 숙적 관계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연좌제가 아니라면 박 후보의 프래카드 얼굴이 날카롭게 찌겨질 일도, 박 후보 유세에 클랙슨으로 방해놓을 일도 없다. 박 후보를 “독재자”라고 매도하는 건 DJ 아들들에게 “사기꾼”이라고 욕하는 것과 유사하다. 박 후보는 DJ 세아들과 달리 사법처리 도마에 오르지도 않았다.

    이대로라면 문 후보는 10년 전 노무현 후보가 얻은 광주 95%, 전남 93%, 전북 91%의 몰표를 다시 얻을 공산이 크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초반 이인제에 밀려 ‘언더 도그’였던 그가 본선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광주경선’부터 였다. 당시 집권세력이던 DJ 정권과 호남의 합작이 노무현이었다. 호남과 ‘부산출신 대선후보’의 결합이다. 이번도 호남과 부산출신 문재인 후보와의 연합 구도가 그때와 같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호남이 2002년의 호남이 아니다.
    문 후보는 안철수 후보가 출마를 포기하기 전까지 안 후보에게 호남에서 밀렸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호남의 거부감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문 후보에게서 민주당은 뒷전이다. 안 후보의 ‘정치개혁‘ 요구에 밀려 DJ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이해찬 대표가 쫓겨났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정기국회까지 시한부다. 문 후보의 관심사는 오로지 ‘안철수’다.

    안철수가 누구인가? 부인이 전남 출신이라지만 그 역시 부산 본토박이다. 혹시 문 후보가 집권하면 안철수와의 ‘공동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게 그의 공약이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는 또다시 ‘부산정권’이다. 문재인 50%-안철수 50%다. 호남의 지분은 얼마일까?

    새누리당 박 후보는 부친과 DJ 관계에서 호남에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2004년 8월 동교동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해 “아버지 시절 많은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것을 딸로서 사과드린다”고 한 것은 DJ를 포함한 호남에 대한 사과였고, 호남과의 화해시도였다. DJ도 “과거 일에 대해 그렇게 맣해주니 감사하다”고 마음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DJ는 “박 전 대통령이 최대 정적이었지만 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준 것은 평가받을만 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얼굴이 칼로 찢겨진 박 후보 플래카드를 보면 그 화해는 그걸로 끝이다.

     호남 입장에서 문재인-안철수 공동정부는 ‘부산정권’이다. 노무현과 민주당이 동거한 ‘참여정부와도 또 다르다. 더구나 안철수는 대선 후 ’신당‘을 꿈꾸고 있다. 문 후보는 안철수 신당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창당과 흡사하다. 안철수-문재인 신당에서 가장 먼저 청산될 대상은 ‘지역주의’고 그 상징들이다.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민주당’이고 ‘호남’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아마 무소속으로 남거나, 아니면 열린당 창당 이후 곁방살이로 내쫓긴 새천년민주당 꼴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도 호남은 문재인 90% 지지 분위기다.

    반면 새누리당 박 후보가 당선되면 호남에 관한한 채무의식은 여전히 남는다. 프래카드 얼굴이 예리한 칼날에 찢겼어도, 클랙슨 때문에 유세가 방해받았어도 호남에 진 ‘빚’을 갚으려고 애를 쓸 것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에 대비해 ‘호남 책임총리’를 박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발표하려던 것도 호남부채의식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는 문재인-안철수 공동정권보다 오히려 호남을 배려할 수 있는 ’여백‘과 ’공간‘이 많다.
    호남에 대한 부채의식과 더불어 TK 인재풀의 한계로 호남인재를 기용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박근혜-호남의 ’권력과점‘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2012년 대선에는 어차피 호남 후보가 없다. 호남이 모처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다.

    DJ 비서실장 한광옥에 이어 ‘리틀 DJ’ 한화갑 등 동교동 실세들도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마당이다. DJ 못지 않게 박정희로부터 탄압받은 시인 김지하도 “박근혜 여성 대통령”을 지지했다. 호남에서 “묻지마 투표‘ 아닌 이변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박정희 후보는 5~7대 대선 당시 호남지역에서만 40%를 웃도는 지지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