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에서 소비로 전락한 대학교육

    사회 수요를 약 40% 초과한 대졸자가 민주와 복지와 법치를 위협하고 있다.

    최성재    
     
      교육은 투자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교육은 가장 대규모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다.
    인간은 만 6살이면 작지만 일을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16년 동안 양육비와 교육비와 기회비용을 모두 더하면 얼마나 될까. 1인당 교육비만 2억 원이 넘는다는 보도도 있고, 영유아의 양육비와 부모의 기회비용까지 더하면 4억 원이 넘는다는 보도도 있다.

      2012년 7월 조선일보는 ‘고졸의 경제학’ 특집에서 4년제 대학의 공교육비와 사교육비, 기회비용을 모두 합치면 1억 2천만 원이라고 했다. 50세까지 평생소득을 따지면, 특성화고(실업계) 출신보다 고작 3천만 원 더 번다고 한다. 그나마 상위 10개 대학 출신이 평균적으로 그럴 뿐 나머지 대학은 도리어 1억 원 손해라고 한다. 상위 10개 대학도 취업이 3년 늦어지면, 4800만 원 손해라고 한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대졸자의 폭발적 증가이다.
    상위 10개 대학의 연간 졸업생만 2만7000명인데, 인기 20개 회사의 신입사원은 2만5000명밖에 안 된다.
    좀 더 범위를 넓혀 공공기관과 중견기업 이상이 모두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1995년 412만 개에서 2009년 405만 개로 감소했다. 그 사이 대학 진학률은 51%에서 80%로 늘었다. 대학 졸업 후에 하향 취업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향 취업자는 1982년 대졸자의 24.1%였지만, 2002년 졸업자의 31%이다. 2012년 졸업자의 하향 취업자는 40%가 되지 않을까. 이건 비정규직이라도 취업한 경우이다. 실업자나 취업 포기자는 이론상 수입이 0원이다. 이런 사람들은 투자비를 한 푼도 건지지 못하니까, 일회용으로 과소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연간 50만 명 대졸자 중에서 18만 명(405만 나누기 23년) 정도만이 편익비용(benefit-cost)에서 투자비를 뽑을 뿐 나머지는 본전도 제대로 찾지 못한다.

      교육을 순전히 경제만으로 따질 수는 없다. 개인적 성취감과 인격도야, 사회적 지위와 평판, 국가경제의 발전과 민주의식의 확산 등도 대학교육(고등교육을 편의상 대학교육이라고 표현)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대졸자의 일부가 아니라 절반 가까이가 중산층으로 올라서는 게 아니라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생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소득 또는 무소득의 대졸자 양산은 장기적인 사회불안 요소가 되어, 민주와 복지와 법치를 위협한다.

      먼저 민주에 대한 위협이다. 이들은 부모가 재력가나 아닌 한, 계층 상승이나 계층 유지에 실패하면서 사회나 국가의 지도자 또는 소시민적 문화인이 될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대학에서 공부를 거의 안 해서 간신히 졸업장만 받았다면 모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실업 상태에 놓이거나 평생 저임금에 시달린다면, 사람인 이상 분노와 원망과 적대감이 쌓인다. 자신의 잘못은 없기 때문에 자연히 이들은 기득권을 증오한다. 사회의 화약고가 된다. 누군가, 특히 정치인이 나서서 표를 노리고 이들을 선동하면 금방 분노의 불이 활활 타오른다. 선동은 증오의 대상을 찾는 데서 시작하여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증오심을 폭발시키는 것으로 발전한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폭민주의(暴民主義 sansculottism)로 타락하기 쉽다. 이들은 배운 무식자이기 때문에 무식한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는 중우정치(衆愚政治 ochlocracy)보다 과격하고 무섭다.

    히틀러나 레닌은 바로 불만에 싸인 이런 지식인들을 선동하여 증오의 대상을 향해, 악마를 향해 돌진하게 만든 자들이다. 여기서 좌우 이념은 중요하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런 현상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악용하는 자 중의 대표가 안철수라 할 수 있다.

     
    복지도 위협 받는다. 대졸자는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복지의 제공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들이 실업수당이나 받고 기초생계비나 보조 받는다는 것은 복지의 근본취지를 흔들고 국가 파산을 잉태하는 요인이 된다. 개인적으로도 자기 모멸과 자기 연민에 벗어나지 못하여 정상적인 가정도 꾸리기 힘들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사회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보기 때문에 기득권 전체가 자신을 착취했다고 보고, 복지 수혜를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여 스스로 악착같이 벌 생각은 숫제 접고 막무가내로 무한 복지를,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기 쉽다.

      법치도 위협 받는다. 이들은 선동에 쉽게 넘어가서 분노의 물결에 금방 휩쓸리기 때문에 무리를 지어 떼법의 스크럼을 단단히 짜고 사회통념과 관습, 윤리는 물론 실정법을 거칠게 떠밀고 깔아뭉갠다. 자포자기 심정에, 또는 분노에 못 이겨 이성을 잃고 또는 이성을 악용하고 지식을 왜곡하여 법을 기득권의 착취 수단으로만 확신하여 실정법 어기는 것이 곧 사회개혁 내지 사회혁명이라고 믿는 괴이한 양심범이 되기 쉽다. 그러다가 이중에 어떤 이들은 선동가로서 출세하여 그 길로 신분이 수직 상승해서 정치인으로서 직업을 얻고, 자신의 성공신화를 널리 떠벌이며 세력을 모은다. 광화문 촛불세력은 거짓을 진실로 믿고 국민의 건강과 농민의 생존권을 위해 위대한 일을 했다고 자랑스러워하고, 영도 희망버스 탑승자는 실직자가 복직하더라도 유급휴가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잡초 무성한 회사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악덕 기업가를 사로잡아 국회에 포로로 넘겨줌으로써 무능한 국회를 유능한 국회, 생산적인 국회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자랑스러워한다.
    민주통합당은 당헌에 자랑스럽게 촛불세력의 정신을 이어받는다고 밝혔다.

      여야 할 것 없이 사회와 국가의 수요를 40% 정도 웃도는 대졸자를 양산하는 것이 교육의 근본 문제임에도 대학등록금 반값 공약으로 300만 젊은 유권자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
    한꺼번에 대졸자를 줄이지는 못하겠지만, 사회 수요에 근접시키는 장기적인 교육 공급을 제시하는 정당이 없다. 독일과 스위스와 싱가포르를 본받아 대졸보다 유능하고 월급도 적지 않은 고졸 기능인을 양성하는 획기적 교육제도도 병행하는 정당도 없다.

    사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실업고와 대학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중우정치를 민주주의로 착각한 김영삼 정부 때부터 교육이 조선말기의 족보 장사처럼 변질되었다.
    형식상 백성의 80%가 양반이 되었지만, 실지로 그들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졌던 것이다.
    항산이 없었으므로! 알아 주는 사람도 없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