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한이 먼저 변해야 북한도 변한다.

    장진성 기자

    김정일 사망 후 가장 정확한 표현은 “김정일 정권이 끝났다.”이다. 왜냐하면 김정은이 3대 세습자라고 하지만 결코 김일성이나 김정일 정권 때와 같은 완벽한 유일지도 권력의 연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도 경험도 어린 김정은의 앞날이 아득해서가 아니다. 역으로 김정일의 일인 지배 역사가 너무 길어서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김정일의 장기 집권이 북한의 모든 권력 논리를 단 한 사람에게만 적응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언행도, 표정도, 심지어 옷차림까지 김정일처럼 하지 않으면 김정은이란 존재는 무의미하게 돼 버린 셈이다.

     권력이란 통째로 준다고 통째로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실제적 권력에 앞서 심리적 권력이 준비 되어야 하고 또 그 외에도 많은 절차들이 따라 주어야 한다. 더구나 북한은 한 사람의 권위만 인정되는 왕조 정권이다. 이런 시스템을 지속 가능하게 하자면 수령 영웅주의를 수령 신격화로 승화시켜야 한다. 관념적 지배가 없으면 전체의 복종을 이끌어낼 명분도 증발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북한에서는 수령 숭배가 곧 절대 권력의 증표가 된다.

     그러나 김정은에게는 북한 지도자로서 가져야 할 기본조차 없다. 그것은 바로 신격화 권력이다. 아무리 국가원수라고 해도 신격화 권력을 못 가지면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 증거가 과거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난 김정은의 스킨십 정치이다. 김일성 때에는 주민들이 감히 다가서지 못했는데 지금은 김정은이 끌어안아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또한 부인 리설주 공개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자신도 한 가정의 아버지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라는 인간적 호소가 없으면 주민들과의 공감대를 만들어 갈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김정은이 아무리 국가의 최고 지위들을 단숨에 꿰차도 그것은 분명 20대가 가져선 안 될 비정상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정은의 신격화 권력을 방해하는 중요 요인이 있다. 그것은 김정은의 섭정 정치 여주인인 김경희라는 존재이다.

     아버지, 어머니도 없는 김정은의 유일한 후견인인 김경희가 실제권력의 상징인물로 살아있는 한 북한 권력층들의 충성 심리도 양분될 수밖에 없다. 이는 오직 유일 권력에만 적응된 북한 간부들의 생존방식이기도 하다. 김경희의 또 다른 대체인물인 장성택이라는 2인자도 있어 김정은에겐 절대 충성 기반이 사실상 불안정한 상황이다. 보다 불행한 것은 김정은이 자신의 측근세력을 갖기도 전에 비준 정치라는 궁중 정치에 묶여버린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김정일식 유일통치 방식을 계승한 듯 보이지만 실은 김경희나 장성택 측근들에 둘러싸여 김일성, 김정일 대역을 하는 것일 뿐이다. 실권을 가져야 하는데 현지시찰 권력만 가진 꼴이다. 마치 말년의 김일성이 당 총비서이면서 주석이었지만 김정일의 당 조직부 유일지도체제에 포위되어 고립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북한의 3대 세습 역사는 본질적으로 체제 붕괴의 3대세습이었다. 김일성 사망은 영원한 주체 이념의 기둥을 무너뜨렸고, 김정일 사망은 절대적 신격화 권력을 붕괴시켰다. 오늘날 김정은에게는 그 이념과 유일권력의 명분만 남은 꼴이다.

     문제는 남한이다. 북한 스스로가 20대 지도자라는데 남한은 아직도 김정일 정권으로 착각하는 듯싶다. 각 정당 대권주자들이 들고 나온 대북정책 공약들을 살펴봐도 오늘이 아니라 김정일 정권 연장선에서 북한을 상대하려 한다. 이런 남한이니 이번 대선을 향해서도 김정은 정권은 어김없이 포를 겨누고 있다. 어쩌면 북한의 단골 메뉴인 평화공갈은 남한의 평화공포가 만들어주는 것이다. 김정일의 지독한 장기집권이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까지도 길들여 놓은 게 아닌가 싶다. 남한이 먼저 변해야 북한도 변한다. 아니, 지금이야말로 남한이 과감하게 한반도 변화를 주도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