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 사망 49명 부상입은 총기난사 원인 놓고 갑론을박덴버市 충격…‘총기규제’ 관련 공화-민주 간 논쟁에 '시민'은 빠져
  •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시사회에서 총기 난사가 있었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美정치권과 언론은 총기 규제 찬반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게 있을 것 같다. 바로 미국 사회의 '용광로 기능' 약화다.

    7월 20일 미국 동부표준시 오전 0시 30분.

  • ▲ 7월 20일 오전 0시 30분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美콜로라도 덴버 인근의 센츄리 16 극장의 모습. 12명이 숨지고 49명이 부상을 입었다.
    ▲ 7월 20일 오전 0시 30분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美콜로라도 덴버 인근의 센츄리 16 극장의 모습. 12명이 숨지고 49명이 부상을 입었다.

    美중부 콜로라도州 덴버 인근 오로라市의 ‘센츄리 16’ 영화관.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 관객들은 블록버스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이벤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총격에 쓰러지기 시작하자 영화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2명의 범인은 방독면을 쓰고 전신 방탄복을 입었다. 이들은 레밍턴 산탄총과 10mm 구경 자동권총 2정, 소총으로 관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내가 조커다”라고 외치며.

    경찰과 구급요원들이 현장에 도착해 확인한 결과 12명이 사망하고 59명이 총상을 입었다. 범인 중 1명은 영화관 주변 주차장에서 자신의 현대차 옆에 서 있다 붙잡혔다. 경찰은 용의자 신원을 파악한 뒤 그의 집을 찾았다. 집에는 문을 열면 터지도록 ‘부비트랩’이 설치돼 있었다. 경찰은 긴급히 주변 6개 블록의 주민을 대피시켰다.

    덴버市 경찰청장과 시장이 나와 긴급 브리핑을 했고, 백악관도 비상상황에 돌입한 뒤 사태파악에 나섰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프랑스 파리 프리미어를 취소하기로 하고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곧이어 경찰은 체포된 범인의 신상을 공개했다. 24살의 제임스 홈즈. 샌프란시스코의 한 대학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한 뒤 콜로라도-덴버 의대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지금은 성적 부진으로 자퇴 수속을 밟고 있는 ‘얌전한 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법행위는 ‘교통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뗀 게 고작이었다.

  • ▲ 체포된 총기난사의 범인 제임스 홈즈. 콜로라도-덴버 의대에서 박사과정을 다니다 자퇴수속을 밟는 중이었다. 총은 6주 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美NBC 화면 캡쳐]
    ▲ 체포된 총기난사의 범인 제임스 홈즈. 콜로라도-덴버 의대에서 박사과정을 다니다 자퇴수속을 밟는 중이었다. 총은 6주 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美NBC 화면 캡쳐]

    사건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물론 세계 언론들은 홈즈의 범행을 보도하고 있지만 내용은 거기서 거기다. ‘왜?’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아무도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총기 난사들

    미국에서는 총기 난사가 종종 일어난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만 봐도 다음과 같다.

    2002년 10월 존 앨런 무하마드는 워싱턴 인근에서 3주 동안 소총으로 무차별 저격을 저질러 10명을 숨지게 했다. 2003년 8월 27일에는 시카고에서 해고된 것에 앙심을 품은 농장 인부가 동료 6명을 총으로 살해했다.
    2004년 11월 22일에는 위스콘신州 버치우등에서 한 사냥꾼이 말다툼을 벌이다 다른 사냥꾼 6명을 쏘아 죽였다.

    2005년 3월 13일 위스콘신州 브룩필드에서는 한 남성이 예배 중인 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7명을 살해했다. 2006년 10월 2일 펜실베니아州 웨스트 니켈 마인스의 한 학교에 트럭 운전사가 난입해 여학생 5명을 살해한 뒤 자살했다.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州 블랙스버그의 버지니아공대에서 한국계인 조승희가 자동소총 등으로 32명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2007년 12월 5일 네브라스카州 오마하의 한 쇼핑센터에서 젊은 남성이 총기난사를 가해 9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12월 24일에는 워싱턴州 카네이션에서 남녀가 여성의 가족 6명을 총으로 살해했다.

    2008년 2월 2일 시카고 인근의 한 옷가게에서 쇼핑하던 여성 6명이 총에 맞아 5명이 숨지고 1명은 부상을 입었다. 2008년 2월 14일 일리노이州 드칼브의 北일리노이大 강의실에 한 남성이 들어와 총기를 난사했다. 범인을 포함 6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을 입었다.

    2008년 9월 2일 워싱턴에서는 출소한 지 한 달 된 정신병자가 총기를 난사, 6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2008년 12워 24일 캘리포니아州 코비나에서는 산타 복장을 한 40대 남성이 전처의 친정으로 쳐들어가 총기를 난사했다. 범인을 포함 9명이 사망했다.

    2009년 3월 10일 앨라배마州 제네바 카운티, 커피 카운티에서 20대 실직자가 여러 마을을 돌며 총기를 난사해 10명이 사망했다. 2009년 3월 29일 노스캐롤라이나州의 한 요양원에서 총기난사가 일어나 8명이 사망했다. 같은 날 캘리포니아州 산타클라라 카운티에서는 일가족 6명이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2009년 4월 3일 뉴욕州 빙엄턴의 이민자 서비스 센터에 베트남계 이민자 지벌리 윙이 무차별 총기난사를 해 13명이 숨졌다. 2009년 11월 5일 텍사스州 포트 후드에서 정신과 군의관 니달 하산 소령이 총기난사를 해 군인 12명, 민간인 1명이 사망하고 42명이 부상을 입었다. 2009년 11월 8일 애리조나州 투산에서는 정치 연설 도중 제러드 리 러프너가 총기 난사를 해 연방판사 등 6명이 숨지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때 가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은 중태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기도 했다.

    2012년 4월 2일 캘리포니아州 오이코스 지역의 한 대학에서 한국인 고수남(43) 씨가 권총을 들고 학생과 교사들을 향해 난사, 7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총기난사 일어날 때마다 ‘총기규제론’ vs. ‘개인 문제’ 의견 팽팽

  • ▲ 美민주당과 좌파 진영은 '총기 소유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선봉에 섰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 포스터.
    ▲ 美민주당과 좌파 진영은 '총기 소유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선봉에 섰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 포스터.

    총기 난사가 일어날 때마다 미국에서는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과 ‘총기 규제는 미국의 건국정신을 훼손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지금도 그렇다.

    이런 의견 대립이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이 콜로라도州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다.

    1999년 4월 20일 美콜로라도州 리틀턴市의 콜럼바인(Colombine) 고등학교. 두 학생이 총을 들고 나타나 친구들과 교사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들이 쏜 900여 발의 총탄에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이 숨졌다. 두 학생은 경찰이 출동하자 결국 자살했다.

    이후 공화당과 우파 진영은 범인들이 엽기적인 메탈 그룹 ‘마릴린 맨슨’의 팬이라는 점을 들어 헤비메탈과 대중문화의 폭력성을 원인으로 꼽았다.

    반면 민주당과 좌파 진영은 ‘총기규제법안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봉에는 ‘화씨 9.11’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이 있었다. 무어 감독은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ombine)’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총기난사가 만연한 사회의 뒤에는 ‘미국총기협회(NRA)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이 영화로 2003년 3월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이번 ‘다크나이트 라이즈 총기난사’가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총기 규제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재연되고 있다. 대선을 앞둔 공화당과 민주당의 논쟁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일부 언론은 범인인 홈즈가 공화당의 후원그룹인 ‘티 파티’ 회원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 ▲ 한편 美공화당과 우파 진영은 '미국 국민의 총기소유를 제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을 후원하는 것이 美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다. 사진은 NRA의 로고.
    ▲ 한편 美공화당과 우파 진영은 '미국 국민의 총기소유를 제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을 후원하는 것이 美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다. 사진은 NRA의 로고.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 국민은 이 같은 정치권의 이념논쟁과 주장에 대해서는 그리 공감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은 총을 갖고 있지 않고, 총기 소유 자체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총기 소유의 절차와 범위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총’을 갖는다는 건 성인이 되었다는 것과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미국의 서부개척사나 독립전쟁에서부터 총은 미국인에게 자존심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총기난사는 이런 미국인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고 있다. 마피아나 중남미 마약 카르텔도 아닌 자들이 총을 사서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한다는 점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총기소유의 허용범위와 절차 등에 대해 수많은 논쟁이 있었다.  


    총기소지 자유로운 스위스, 이스라엘에는 총기난사가 드문 이유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연방정부는 총기소유를 지지하지만 주 정부는 이를 무제한 규제할 수 있다’는 원칙 등 여러 가지 규제방안을 논의했다. 덕분에 지금 미국에서는 연발사격이 가능한 자동소총이나 연발사격이 가능한 자동 산탄총은 판매와 구입이 모두 금지돼 있다. 또한 총기를 구입할 때도 사는 사람의 전과기록, 정신과 진료기록 등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

    한편 일각에서는 최근 총기 난사의 문제를 이런 절차나 법적 규제 보다는 미국의 ‘용광로 기능 정지’ 문제로 보기도 한다. 총기 난사의 범인 대부분이 이민자들 중 미국 사회와 그 신념을 받아들이지 않고 적대시 하는 사람,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 의견에 상당수 미국인들이 공감하고 있다. 특히 콜로라도와 같이 지난 20년 사이 이민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주에서는 더욱 그렇다. 실제 안보 문제로 총기 휴대는 자유로우나 이민자는 그리 많지 않은 이스라엘이나 스위스에서는 총기난사가 그리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 ▲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등장인물. 왼쪽부터 악당인 '베인', 주인공 '배트맨', 조연인 '캣우먼'이다. 미국 사회는 이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등장인물. 왼쪽부터 악당인 '베인', 주인공 '배트맨', 조연인 '캣우먼'이다. 미국 사회는 이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자생적 테러리스트’ ‘이민자를 가장한 마약 카르텔’ ‘학생을 가장한 스파이’와 싸우면서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최근에는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국방비는 물론 각종 복지예산을 축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미국 사회의 ‘용광로(Melting Pot)’ 기능이 약해지면서 치안 질서와 사회 안전기능이 약해졌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이 같은 지적을 美정치권이 계속 무시한다면 미국 사회는 현실에서도 ‘다크나이트’를 필요로 하게 될지 모른다. 그것도 자기네 시민들을 대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