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대통령, 북한문제의 최종해결책은 통일뿐이라고 확신" 
      
    대통령, '불가능 국가'의 저자(著者) 빅터 차 일행에게
    "北은 마지막 단계에 왔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趙甲濟   
     

  •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의 아시아 담당 국장이었던 한국계 미국인 빅터 차(조지타운 대학교 교수)가 쓴 ‘불가능 국가’(The Impossible State)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하퍼콜린스에서 최근에 출판한 530페이지짜리 이 책은 ‘북한, 과거와 미래’라는 副題(부제)대로 秘話(비화)가 많고, 대담한 전망이 있다. 이 책은 북한문제를 다룬 가장 深度(심도) 있고 密度(밀도) 있는 기록일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 학자출신이 2004~2007년 사이 미국정부의 최고위 정책부서에서 일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다룬 경험이 들
        어 있다. 강단 학자들의 건조한 분석과는 많이 다르다.
     * 최고급 정보를 접한 경험자의 글이라 秘話(비화)가 많고 재미있다.
     * 한국계라서 그런지 한국 사정에 대한 본질적 誤判(오판)이 적고 한민족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느껴진다.
     * 북한의 과거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한반도의 미래를 예측하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對案(대안)도 냈다.
     
     10장으로 된 이 책의 9장은 ‘통일에 다가가기’(Approaching Unification)이고, 10장은 노래 ‘마이 웨이’의 첫 대목 ‘최후가 가깝다’(The End Is Near)이다. 1~8장은 마지막 두 장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분석처럼 보인다. 그는 북한정권의 종말이 다가오니 한반도 통일문제를 주변국들과 한국인들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9장에서 필자는 2011년 4월에 리처드 아미티지 등 미국의 전직 高官(고관)들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을 한 시간 넘게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빅터 차가 요약한 李 대통령의 설명은 이렇다.
     
     <우리는 햇볕정책과는 다른 시각을 갖고 출발했다.

    남북 교류는 북한이 상호주의 원칙에 응해야 정당한 것이다. 무조건적인 對北(대북) 협력은 안 된다. 나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인권문제를 해결해야 우리는 북한의 사회기본 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건설하며, 남북한 전쟁상태를 종식시킬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한국 납세자의 돈을 북한에 투자한다면 그만큼의 이득이 있어야 한다. 대화 그 자체가 목적이어선 안 된다. 어린이와 姙産婦(임산부)에 대한 지원은 조건 없이 한다. 다른 지원은 인권개선(국군포로, 납치자, 납북어부 송환 등) 및 非核化(비핵화)에 연계시킨다.

    햇볕정책 시절엔 한국이 북한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썼지만 더 이상 그럴 순 없다. 나는 북한의 지도자와 만나는 것에 거부감은 없지만 한 가지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 회담을 위하여 북한에 돈이나 물자를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빅터 차는 여기서 한 逸話(일화)를 소개하였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 김정일은 盧 대통령과는 형식적인 대화만 하고 수행한 기업인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환심을 사려 하더란 것이다.

     著者(저자)는 <평양정권은 남한 정치인들을 별로 쓸모없는 존재로 보는데, 다만 그들을 통하여 한국의 기업인들을 이용하려 한다. 기업인들이야말로 북한에 돈이 되니까>라고 썼다.
     
     李 대통령은 빅터 차 일행을 앞에 두고 금강산 관광객 사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런 공격은 비참한 처지에서 나온 절박한 도발일 것이다. 북한은 마지막 단계에 왔다. 일반 주민들 속에서 정권의 정통성을 잃어가고 있다. 정보가 들어가니 불만도 높아진다. 북한사람들이 많이 알게 될수록 정권 지배층의 미래도 암담해질 것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그들이 그런 종말을 피하도록 우리가 도와줄 필요는 없다.”
     
     빅터 차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공개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 자리에 참석하였던 우리는 한국 대통령이 북한의 핵문제-인권탄압-재래식 군사력에 의한 對南(대남)도발을 총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품격 있는 공식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통일이었다.>
     
     著者(저자)는 李 대통령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통일만이 북한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고 확신하고 있음이 분명하였다고 했는데, 나도 작년 10월에 있었던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 같은 인상을 받았다.
     
     대통령은 자신이 4년간 일관되게 추진한 엄격한 對北정책이 북한에서 정권의 배급기능이 약해지는 대신에 시장기능의 확대라는 본질적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좌파정권 때 한국에서 퍼주기를 하니 배부른 북한 정권이 시장을 축소시키고 오히려 배급제를 강화했는데, 그 돈이 들어가지 않으니 배급기능이 약해져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장의 확대를 방치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 결과로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다소 좋아졌다고 했다. 對北퍼주기는 북한의 개방을 방해하였는데, 對北봉쇄가 오히려 시장의 확대라는 근본적 체제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李 대통령은 자신의 엄정한 대북(對北)정책과 김정일의 대남(對南)도발 및 핵실험이 결합되어 중국, 일본, 한국, 미국, 러시아의 대북(對北) 봉쇄망이 형성되었고, 이런 상태가 5~6년 더 가면 북한 체제는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듯하였다.
     
     빅터 차도 이 책에서 李 대통령처럼 ‘한반도 문제의 최종해결책은 한국 주도의 통일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는 <한반도에서 역사의 종말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청와대뿐 아니라 아시아의 5성 호텔에서 이어지는 회의나 여러 나라 수도의 權府(권부)에선 햇볕정책 때보다 훨씬 공개적으로 한때 禁忌視(금기시) 되었던 통일 문제가 대화의 주제가 되어가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한국이나 미국 때문이 아니라 북한에서 전개되는 사태 때문이다.>
     
     저자(著者)는 한반도 통일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김정일의 급사(急死), 미국의 북핵(北核)문제 해결 노력이 실패한 것, 김정은 정권이 체제를 지켜내기 위한 개혁에 실패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1. 김정일은 지도자 수업을 20년간 받았는데 김정은은 2년도 되지 않는다. 특히 장군들과 관계를 구축할 시간이 없었다. 건강이 나쁜 고모 김경희가 죽으면 고모부 장성택이 후견인 역할을 할 것인데, 수양대군처럼 조카를 몰아내는 쿠데타를 할지 모른다.
     
     2. 미국은 20년에 걸친 외교적 노력의 실패로부터 근원적인 북핵(北核( 해결책은 통일뿐이라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외교적 노력은 하되 북한의 핵무기 제조능력을 규제하는 위기관리 차원으로 만족하고 북한정권의 내부 붕괴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3. 김정은을 둘러싼 제도와 사람들은 김일성 시절보다 훨씬 폐쇄적이다. 그들은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가 처형된 것, 리비아의 카다피가 반군(反軍)한테 맞아죽는 것을 보면서 개혁 개방이 그런 사태를 유발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김정은은 스스로 체제를 개혁할 수 없으므로 더욱 중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북경의 간부들은 '중국의 도움 없이는 북한 정권이 1년 버티기도 힘들 것이다'고 말한다.
     
     
     주한미국 대사를 지낸 캐티 스티븐슨은 워싱턴으로 귀임한 후 "재임기간중 한국인들이 통일문제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게 그 전 10년과 달라진 점이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통일논의가 보수 정권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란 비판에 대하여 빅터 차는 몇 가지 점에서 과거의 통일논의와 다르다고 했다.
     
     1. 통일논의는 이념적인 게 아니라 실용적 필요성에 기인한다. 북한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북한정권이 불안정해지고, 외교의 실패에 따른 한계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광복절 연설에서 통일세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2. 한국의 통일논의는 냉전시대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국제주의적이고, 투명하며 개방적 성격을 띠었다. 과거에 韓美日 전문가들이 회합을 하여 통일문제를 꺼내면 한국 대표는 '그것은 국내문제이다'고 회피적이었는데 2008년 김정일의 졸도 이후엔 적극적으로 나온다고 한다. 성공적인 체제 전환을 위하여는 외부 세계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젊은 세대에 대한 통일교육이 진행되고 젊은이들의 반응도 좋다.
     
     3. 통일의 방법론을 이야기할 때 군사력 같은 힘보다는 정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李 대통령도 著者 일행과 이야기하면서 군사력을 한번도 언급하지 않고 정보가 북한사회를 바꾼다는 점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4. 최근의 통일논의는 통일비용보다는 통일이 가져올 기회에 대한 강조가 돋보인다. 통일공포증을 과장하는 게 아니라 한반도 통일이 아시아 지역 전체의 이익이 될 것이란 쪽으로 논의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닉 에버스타트는 "한반도 통일에 의한 북한의 근대화는 남한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번영을 촉진시킬 것이다"고 말한다.
     
     5. 통일논의는 순진한 낙관론을 배척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통일과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한국인들은 잘 안다.
     
     6. 한국에서 진행되는 통일논의는 한반도 주변지역으로 확대될 것이다. 일본, 러시아, 미국도 한반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은 통일뿐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국, 미국, 중국 사이에 대화가 지속되면 중국의 강경파들도 통일된 한국이 중국에 지정학적(地政學的)인 위험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게 될 것임을 기대한다.
     
     빅터 차는 <다음 미국 및 한국 대통령은 재임(在任)기간에 북한의 급변(急變)사태와 아마도 통일문제까지 다뤄야 할 것이다>고 예측하였다. 그는 2011년의 아랍 혁명을 분석하고, 그 혁명을 성공시켰던 객관적 조건들이 북한에선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북한정권의 행태를 관찰하면 소요사태에 대한 불안감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폭동진압 부대를 만들고, 한국에서 날아오는 풍선에 대포를 쏠 것이라고 위협하며, 도심부에 탱크와 군대를 집중배치한다. 저자는 북한이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기는 점들을 잘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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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12월 21일 루마니아 대통령 차우셰스쿠는 운명적인 결정을 했다.

    6일 前 지방에서 시작된 시위가 수도 부카레스트로 확산되자 그는 거대한 기념물인 인민궁전(사무실 용도의 건물로는 세계 제2위-延면적 기준) 앞 광장에서 관제 데모를 열기로 한 것이다. 공장에선 열성분자들을 선발하여 아침 일찍 광장으로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집회가 취소되었으니 공장으로 돌아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노동자들이 돌아가는데 이번엔 다시 정오까지 집합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열성분자들은 거의 다 퇴근해 버려 공장들에서는 당성(黨性)이 약한 노동자들을 뽑아 보낼 수밖에 없었다.

    12시30분 차우셰스쿠가 인민궁전 발코니에 나와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한 구역쯤 떨어진 곳에 모여 있던 젊은 시위대가 야유를 시작했다. 관제 집회장에 모여 있던 군중들도 웅성대더니 야유에 가담했다. 차우셰스쿠가 당황하는 표정이 텔레비전에 그대로 방영되었다. 연설은 중단되고 관제시위를 하러 왔던 군중은 진짜 시위대로 변해버렸다.
      
    다음날 오전 11시30분, 부카레스트 라디오 방송은「반역자」밀리아 장군이 자살했으며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고 발표했다. 밀리아 장군은 국방장관이었는데 시위대에 대해 발포를 거부했다고 하여 차우셰스쿠가 자살을 시킨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시위대는 인민궁전으로 몰려갔다. 차우셰스쿠는 다시 발코니에 나타나 연설을 하려고 했으나 시위대가 건물 안으로 돌입하면서 물건을 던지자 황급히 사라졌다. 옥상에서 차우셰스쿠 부부가 헬리콥터를 타고 달아나는 것이 목격되었다.

    다음날 구국(救國)전선이란 조직이 갑자기 등장하여 이온 일리에스쿠 위원장이 임시 정부를 선포한다고 발표했다. 24일, 비밀재판에서 차우셰스쿠 부처를 총살형에 처했다는 발표와 함께 시체가 텔레비전을 통해서 공개되었다. 이런 신속한 처형은 공산당 간부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차우셰스쿠의 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 최근에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