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눈독 들여…차지하면 골목상권 초토화 '절규'‘포숑’ 철수 대신 대기업 브랜드 인수추진…‘보네스뻬’와 함께 골목재패 ‘꼼수’
  • “동네 어느 제과점을 찾아가도 뚜레쥬르와 파리바게트를 운영하는 대기업들의 횡포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살살 달래며 회유하다가 안 되면 갖은 수법을 동원해서 협박하는 그들은 조만간 업계와 국민들의 큰 분노를 감내해야 할 겁니다.”

    김서중 한국제과협회 회장이 분노에 차 외친 절규다.

    김 회장은 “홍대에서 오랜 시간 지역 명소로 자리매김해 왔던 리치몬드제과점이 문을 닫은 건 대기업들의 행태를 보여주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70~80%의 영세한 개인 제과점이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돌아서거나 문을 닫았다”고 지적했다.

  • ▲ 홍대 인근의 랜드마크였던 '리치몬드 제과점'이 문을 닫았다. 이 자리에는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엔젤리너스 커피' 직영점이 들어선다.
    ▲ 홍대 인근의 랜드마크였던 '리치몬드 제과점'이 문을 닫았다. 이 자리에는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엔젤리너스 커피' 직영점이 들어선다.

    그는 “재계 일각에서는 재벌가 자녀들의 ‘빵집’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만 판매하고 있어 골목상권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전혀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주위 5km 안의 영세 업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재벌빵집’ 정말 물러섰나?

    최근 서민들 삶의 터전인 골목상권을 보호하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재벌가들이 앞 다퉈 ‘빵집’을 포기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이부진 사장이 맡고 있는 호텔신라는 지난 1월 26일 자회사 ‘보나비’가 운영하는 커피·베이커리 카페 ‘아티제’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범LG그룹인 종합외식업체 아워홈도 순대·청국장 소매시장에서 철수키로 했다. 이어 지난 27일엔 현대기아차그룹이 계열사인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가 구내 카페로 운영하던 ‘오젠’의 문을 닫았다.

    이 와중에 국내 제빵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SPC그룹(舊 삼립식품) 계열의 파리크라상이 운영하는 ‘파리바게트’와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가 여론의 비난에서 한 발짝 빗겨간 점은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 ▲ '자칭 빵집 중소기업'이라는 SPC그룹의 사옥. SPC그룹은 연 매출이 2조 원을 넘는다.
    ▲ '자칭 빵집 중소기업'이라는 SPC그룹의 사옥. SPC그룹은 연 매출이 2조 원을 넘는다.

    특히 파리크라상 측은 자신들을 식품전문 중소기업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영세 제과점들은 “매출 2조가 넘어가는 업체가 무슨 중소기업이냐”고 반문한다. 실제 파리크라상의 모기업인 SPC그룹은 ‘파리바게트’ 외에도 ‘던킨도너츠’ ‘베스킨라빈스’ 등과 함께 외식사업도 벌이고 있다.

    한편 CJ푸드빌은 ‘뚜레주르’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자세를 한껏 낮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론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들과 달리 정부와 여론의 질타는 무시한 채 다른 기업의 프랜차이즈에 눈독을 들이는 재벌이 있다. 바로 '롯데'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31일 신격호 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 블리스 대표가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 등 7곳에서 운영 중인 베이커리 전문점 ‘포숑’의 사업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속내는 다른 대기업의 '빵집 프랜차이즈'를 인수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 제기됐다. 

    한 제과업계 관계자는 “만약 롯데가 다른 '재벌 빵집' 프랜차이즈를 인수하면 그 여세를 몰아 곧바로 대대적인 시장 공략에 나설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홍대 리치몬드 제과점 자리에 ‘롯데’ 들어간다?

    영세 제과점들은 SPC나 CJ 또는 다른 '재벌 빵집' 프랜차이즈가 롯데로 넘어갈 경우 ‘골목제과점’은 전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에서도 롯데는 절대 식품사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분야는 신격호 회장의 숙원사업이라고 한다.  

  • ▲ 롯데브랑제리가 운영하는 '빵집' 보네스뻬' 매장. 전국에 140개 매장을 갖고 있다. 롯데가 '뚜레주르'까지 인수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 롯데브랑제리가 운영하는 '빵집' 보네스뻬' 매장. 전국에 140개 매장을 갖고 있다. 롯데가 '뚜레주르'까지 인수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롯데의 ‘음식업’ 욕심은 상상 이상이다. 롯데 신 회장의 외손녀가 운영하던 ‘포숑’은 철수했지만 지금도 롯데브랑제리는 그대로 영업 중이다. 롯데브랑제리의 ‘빵집’인 ‘보네스뻬’는 전국에 140여 매장을 갖고 있다. 반면 ‘철수’했다는 ‘포숑’은 매장이 불과 7개다.

    롯데는 커피전문점도 갖고 있다. 논란이 됐던 홍대 앞 ‘리치몬드 제과점’ 자리에는 롯데의 ‘엔젤리너스’가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롯데리아’는 다른 외식 브랜드가 넘어서지 못한, 국내 부동 1위의 ‘햄버거 가게’다.

    롯데가 이처럼 ‘프랜차이즈 요식업’에 큰 관심을 두는 건 ‘음식판매’와 함께 부동산 투자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창업하는 이들은 ‘프랜차이즈’를 단순한 음식판매로 생각하지만, 롯데와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은 교통요지에 위치한 매장은 모두 직영점으로 운영한다. 부동산 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커피 프랜차이즈 '엔젤리너스'의 로고. 어디서도 '롯데'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꼼수'를 쓰고 있다.
    ▲ 롯데그룹이 운영하는 커피 프랜차이즈 '엔젤리너스'의 로고. 어디서도 '롯데'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꼼수'를 쓰고 있다.

    이런 롯데가 대규모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인수할 경우 순식간에 전국 1,000여 곳이 넘는 소매점을 갖는 셈이 된다. 대규모 제과제조에서부터 유통, 백화점과 마트, 소매점까지 아우르는 초거대 ‘식품재벌’이 된다.

    롯데의 마케팅도 공격적이다. 과거 롯데리아가 급성장할 때를 생각하면 된다. 롯데가 '재벌빵집'을 인수하면 기존의 ‘보네스뻬’와 함께 ‘동네 중국집’이나 ‘치킨집’ 수준까지 그 수를 대폭 늘일 가능성이 높다.

    ‘빵집’뿐만 아니라 음식료는 거의 '재벌' 차지

    매일유업의 수제 샌드위치 전문점 ‘부첼라’, 농심의 일본식 카레 전문 레스토랑 ‘코코이찌방야’, FnC코오롱의 슈크림 전문점 ‘비어드파파’, 애경그룹의 일본 라면 체인점 ‘이퓨도(一風堂)’ 등 재벌들이 골목에 차린 '프랜차이즈'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중견재벌’의 자녀들이 운영하는 수많은 프랜차이즈 브랜드까지 포함하면, 일부 재래시장 점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식음료 매장들은 대기업 소유라고 봐도 무방하다.

  • ▲ 롯데그룹의 파워는 막강하다.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 타워는 군 비행장의 활주로까지 바꿀 정도다.
    ▲ 롯데그룹의 파워는 막강하다.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 타워는 군 비행장의 활주로까지 바꿀 정도다.

    하지만 음식료 업계에서는 누구보다도 롯데그룹이 '제과점 프랜차이즈'에 진출하는 것을 우려한다. 롯데제과에 롯데칠성, 롯데유통, 롯데쇼핑(백화점)에 롯데마트, 롯데슈퍼, 롯데리아, 엔젤리너스 등 음식료 업계의 절대강자이기 때문이다.  

    한편 ‘재벌 음식점’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공정거래위원회도 조만간 요식업계 현황에 대한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단속 시기는 내부 기밀”이라면서도 “베이커리 관련 제보가 없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동반성장위원회도 지난해 제조업 분야에 이어 올해 유통·서비스 분야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추진하고 있다. 서비스업은 대기업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한 데다 프랜차이즈가 보편화된 분야가 많아 적합업종 선정 과정에서 갈등이 예상된다.

    하지만 공정위와 동반성장위가 사업의 절반이 일본에 근거를 두고 있는 롯데, '제2롯데월드 타워' 건설을 위해 국방부까지 움직였던 '막강' 롯데에 제대로 맞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