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당한 증인, 황당한 법정

    신분확인도 안된, 술에 취한 증인을 심문......

    1월 20일 오후4시 30분, 서울남부지방법원 306법정에서는 이상한 공판이 진행되었습니다. 속칭 <불법현수막 절단사건> 3차 공판이 열렸습니다. 3차 공판은 2번의 연기가 있은 후에 열렸고, 증인으로 신청된 사람은 세 명이었습니다. 근데 2명만이 참석하고 한 명은 불참했습니다. 법원의 통지가 주소불명으로 되돌아 왔다고 했습니다.

    결국 공동고소인 두 명만이 증인신분으로 출석한 것입니다. 증인심문에 앞서 신분확인절차가 있었습니다. 근데 한 분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판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증인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곤 증인심문이 진행되었습니다. 판사의 권한인지 뭔지 모르지만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증인심문은 단답형의 묻고 답하기 형식이 일반적입니다. 남자 증인은 장황한 자기 설명과 함께 허위사실이 적시된 불법현수막의 정당성을 알리려는 의도로 말을 했습니다. 듣다 못한 판사가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도 장황한 설명이 계속되었고, 결국은 증인 스스로 질문이 뭔지도 모르는 답변을 하는 지경까지 됐습니다.

    여러 차례 판사의 제지가 있었고, 약 30분 넘게 남자분의 증인심문이 끝났습니다. 이어 여자 증인의 증인심문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기가 옆에서 재차 묻는 해프닝이 있었고, 급기야는 검사와 변호사가 번갈아 가면서 증인 심문대 옆에서 심문을 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증인들이 정상인이라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남자 증인은 "자신이 맞았다"고 하면서 "어떻게 맞았는지"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자신이 피해자라면, 폭행을 당했다면, 그것도 단 한 차례라면 선명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근데, 그 남자 증인은 경찰조서에서 말한 것과 증인대에서 말하는 내용이 틀렸습니다. 판사가 "확실히 말하라"고 종용 하자 어물쩍거리면서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아니, 자신이 맞았다고 고소까지 한 사람이 맞은 내용에 대해 뭘 다시 생각할 것이 있을까요?

    두 번째 여자 증인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아마 술 냄새가 났던 모양입니다. 필자 또한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증인으로 나온 사람이 술을 마시고 왔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검사와 판사의 증인심문은 고역 같아 보였습니다. 젊은 여자 검사와 변호사는 누가 심문을 당하는지 헷갈려 보였습니다. 결국 판사의 입에서 술을 얼마나 마셨냐는 질문이 나왔고, 증인은 점심과 더불어 반주로 막걸리 한 병을 마셨다고 했습니다. 증인은 "본인은 말짱하다"고 하는데 법정에 있는 분들은 대부분 그가 말짱하지 않다고 보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여자 증인은 사건과 관련해 당사자는 "맞지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검사가 어떤 단체에 가입되었냐는 말에 "약 20군데 가입되어 있다", "여기 저기 오라면 간다", 검사가 "한 곳만 말하라"고 하자 "정의사회 구현 사제단"이라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증인이 자신들이 4.19, 혹은 독립군 후손 모임이라고 장황하게 설명했던 이유를 짐작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적활동단체와 유사한 곳에 가입된 사람들이라는 점이 두 번째 증인의 말로 확인된 것입니다.

    필자가 증인심문을 지켜보면서, 여의도 지구대에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의자에 수갑이 채인 사람을 폭행하려 한 여러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증인으로 신청한 세 명중에 한 명은 주소불명으로 송달이 되돌아 왔고, 결국은 그들 단체에서 신분이 확실한 나이 든 두 사람을 고소인으로 했던 정황이 들어난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떳떳하고, 그들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진다면 왜 고소를 하고는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필자는 '허위사실이 적시된 불법현수막'을 절단하고 경찰을 피해 도망가지도, 그들이 사진을 찍는 일에 방해는커녕 협조를 해줬습니다. 그들 단체, 그들과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약 1시간 가까이 증인심문이 끝나고, 필자는 준비한 '반성문'을 읽겠다고 했습니다. 근데 재판장은 다음 공판에서 말할 시간이 많다고 했습니다. 저는 1,2차 공판을 거치면서 제대로 발언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증인(고소인)들의 그런 황당한 모습을 보면서 단 2분만 시간을 달라고 재요청했습니다. 판사는 제출된 용지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3단락부터 읽으라고 했습니다. 3단락부터 빠른 시간에 읽었습니다. 그렇게 3차 공판은 끝이 났습니다.

    증인들은 일행들로 보이는 여러 사람들과 퇴정을 했고, 판사는 5분쯤 지나서 퇴정하라고 했습니다. 아마, 고소인과 피고소인 간에 불미스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보여 졌습니다. 법원로비에서 현장을 취재 온 기자에게 법정 모습이 어떤가에 대해 물어 봤습니다. "처음에 필자의 말을 들었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법정모습을 보니 제가 그동안 한 말을 확실히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황당한 증인, 황당한 법정의 모습을 보면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판결과 같은 '화성인 판사'가 또 다시 법정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허위사실이 적시된 불법현수막=재물>이라는 등식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며, 맞은 기억조차 희미한 사람의 고소를 이렇게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시킨 것도 의구심이 드는 부분입니다.

    무엇보다도 황당한 일은 본인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고, 술 취한 사람을 증인대에 세운 법정이 과연 제대로 된 판결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12.01.21.

    강재천

    <참고, 법원에 제출된 반성문>

    사 건 : 2011 ** ****

    피 고 : 강 재 천

    제 목 : 반 성 문

    2012년 1월 19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1심판결을 두고 '화성인 판결'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정상적인 법 상식에 어긋나서 요즘 유행하는 <화성인>이라는 별난 사람을 두고 김형두 판사에게 한 말일 것입니다. 저는 '이승만 학살자 현수막 절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고소인이나 피고인이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기대하며, 이 공판장에서도 화성인 판결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면서 반성문을 읽겠습니다.

    저는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 KBS 방송국 앞에 모 단체에서 <동성애 관련 드라마 방영을 저지>하는 학부모의 집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곳에 갔을 때 천막 두 동과 현수막을 너저분하게 걸쳐놓고 인도를 점령하다시피 노숙을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곳에 있는 경찰에게 <이것이 적법하냐?>고 물었습니다. <적법하지 않다면 공권력이 제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경찰은 관할 구청 소관이라고 했습니다. 구청(도로교통과로 기억남)에 전화를 했습니다. <알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불법현수막>이란 말을 들었고, 그곳에 게시된 내용은 <100만 명을 학살한 이승만>등 허위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사건 당일 모 의원과 SNS상의 친구들과 만찬이 있었습니다. 적정량보다 술을 과음했습니다. 6623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KBS 앞에 차가 정체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에서 며칠 전과 똑같은 현수박과 천막이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카터칼을 구입해서 <허위사실이 적시된 현수막>을 절단했습니다. 이후, 그곳에서 노숙집회를 하는 분들과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곳 현장을 벗어나지 않고 경찰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저를 폭행하기 위해 지구대를 찾았고, 나중에 어르신 남녀 각 한 분만이 조사를 받고 함께 경찰서로 갔습니다. 그 분 중에 한 분이 제가 폭행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날 조사를 받으면서 맞았다는 위치를 알고는 쓴웃음만 나왔습니다. 저는 오른손 검지에 자상을 입어서 119구조대의 응급조치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그분들과 실랑이 끝에 저에게 맞았다면 얼굴에 핏물이 튀었을 것입니다. 누가봐도 그분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을 쉽게 판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이 사건의 전말입니다. 어떻든 본의 아니게 사회에 물의를 빚은 것은 맞습니다. 이에 본 피고인은 아래와 같이 법정에 정중한 사과문을 제출합니다.

    첫째, 앞으로 과도한 음주를 삼가 하겠습니다. 그날 과음을 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노숙시위를 하는 곳에서 돈키호테와 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앞으로 불법을 보고도 못 본 척 하겠습니다. 성폭행을 당하는 현장, 강도를 당하는 현장,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보고도 앞으로는 못 본 척 하겠습니다.

    셋째, 유언비어 허위사실이 난무해도 모른 척 하겠습니다. <허위사실이 적시된 현수막>같은 것으로 대한민국이 유언비어 천국이 되어도 모른 척 하겠습니다.

    과음해서 우연히 그곳으로 지나다가 잘난 척 불법과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분들에게 민폐를 끼쳐서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립니다. 이점 참작하셔서 양형에 참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끝)

    2012.01.20.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3단독 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