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로 좋다는 가짜 보수들 
      
     멍에는 깨지고 빙하는 녹는다. 
    金成昱    
      
     1.
     김정일 죽음 이후 한국의 자칭 ‘保守(보수)’는 역사의 시계를 거슬러 간다.
    더 이상 숨길 것 없다. 북한의 세습독재를 정리하라! 2400만 동족의 의사가 반영되는 ‘자유선거’를 실시하라! ‘강제수용소 해체’를 해체하라! 헌법에 입각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의한 평화통일’을 이뤄내자! 保守에게 이것보다 더 절박한 구호가 있는가?
     
     자칭 保守의 시각은 휴전선 이북을 넘지 못한다.
    反逆(반역)·利敵(이적)에 단호한 입장도 취하지 못하고 부패·반칙·특권을 없애겠다는 공허한 선언과 좌파식 복지포퓰리즘만 난무한다. 낙심한 청년과 낙망한 대중에 “기득권을 줄일 테니 표를 달라”고 구걸할 뿐이다. 모든 시각이 휴전선 아래 좁은 땅에 고착돼 있다.
     

  •  2.
     한나라당이 경제정책 기조를 확 바꿨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붕어빵 경제’를 내세워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챙기는 일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장경제주의와 산업화 정신 승계’ ‘반포퓰리즘’ ‘큰 시장 작은 정부’ 등을 명시한 정강정책도 公正경쟁과 친서민 기조로 바뀐다 한다. 성장에서 복지와 상생에 무게가 실린다는 말도 쏟아져 나온다.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챙기는 것이 리더의 절대적 과제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공정경쟁’과 ‘친서민’의 현란한 구호가 사람을 살리는 건 아니다.
     
     적어도 歷史(역사)는 웅변한다. 시장경제와 산업화, 포퓰리즘이 아닌 ‘큰 시장 작은 정부’의 우파적 흐름이 빈곤을 없애고 빈자도 없앴다고.
     
     다만 市場메커니즘이 효과를 내는 데는 끓는 시간(boiling time)이 필요한 법이다.
    이것을 인내할 겨를이 없는 나라들은 제국주의나 공산주의로 변혁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앞의 길이 ‘공간의 확대와 길의 연결’이라는 外向的(외향적) 발산이라면 뒤의 길은 주어진 공간과 길을 잘 닦자는 內向的(내향적) 수렴이었다. 그러나 외향적 발산-자유의 길이 아닌 내향적 수렴-평등의 길은 지난 수천 년 동안 국가의 쇠락을 불렀을 뿐이다. 신바람 나는 자유의 확장이 평등의 보장도 초래한 것이다.
     
     침략(aggression)이 법적으로 금지된 2차 대전 이후도 정글의 법칙은 바뀌지 않았다.
    외향적 발산-자유의 길을 걸을 때 나라는 발전하고 내향적 수렴-평등의 길을 걸을 때 쇠락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신명 나게 돌아다녀야 사는 법이다. 집안에서 식구끼리 싸움이 나면 만사 불통이다.
    한국의 근대화 기적 역시 輸入代替(수입대체)가 아닌 輸出指向(수출지향), 內向的 수렴이 아닌 外向的 발산에 기인한다. 조선의 멸망, 북한의 쇠망은 그 반례이다.
     
     3.
     이승만·박정희 이후 국가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한 지도자가 없었다.
    어려운 게 아니다. 명쾌한 것이다. 내향이 아닌 외향, 망해 가는 북한에 자유를 북진시켜 統一强國(통일강국)으로 가야 한다. 서민과 중산층 퍽퍽한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유일한 해법은 파이를 나누는 게 아니라 키우는 자유통일 뿐이다. 성장이 아닌 분배, 수출이 아닌 內需(내수), 자유가 아닌 평등을 떠드는 작금의 흐름은 그래서 불길하다. 나라 전체가 안으로 썩는 형국, 북한은 없고 남한만 이렇게 살자는 생각인 탓이다.
     
     중앙일보 김수길 주필은 1월4일 자 칼럼에서 94년 김일성 사망 당시를 적으며 “그때 조깅이든(김영삼이 방북해 평양에서 조깅하려 했던 것을 비유한 것) 조문이든 이뤄졌다면 남북관계는 크게 달려졌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남남 상황이 많이 변했다. 정부가 조의를 표하고 제한적이지만 조문단 반북을 허용했다. 남북관계도 오늘 우리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남북관계를 정립하는 데 남남의 지혜를 모을 때다”라며 이를 위해 “박정희 손바닥을 벗어나자”고 적었다.
     
     칼럼은 “수출만이 아닌 내수를 키워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등 최근 이명박 정권이나 한나라당 기조를 그대로 읊어 놓았다. 북한에 민족의 정통성 일부를 떼 주고 적당히 잘해 보자는 것이다. 남한 국민의 불평·불만도 커지니 평등·분배의 좌파적 마약을 쓰자는 처방도 같은 맥락이다.
     
     남한은 남한, 북한은 북한, 이대로 있자는 시각은 자칭 보수의 지배적 흐름이 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북한 2400만 동족을 노예상태로 내버려 두자는 것이요, 아우성치는 남한 대중의 절망을 외면한 것이니 正義(정의)에 반한다. 무엇보다 길을 열고 공간을 넓혀서 함께 잘 살아 보자는 민족의 통일 의지를 외면한 것이다. 자연스러운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니 이북에는 달러를 바치고 이남에선 조삼모사式 포퓰리즘으로 깨져 가는 한반도 현상을 막아야 한다. 결국 7천만 전체를 절망에 내모는 뻔뻔한 일이다. 지켜지는 것은 자칭 보수의 기득권뿐이다.
     
     20대 청년과 기회주의자들을 앞세워 개혁을 하자는 한나라당은 녹고 있는 빙하 위의 북극곰이다.
    이미 부서진 한반도 분단의 멍에를 보지 못하는 둔치들이다.
    멍에는 깨지고 빙하는 녹고 있다. 이 땅의 청년이 진정한 비전의 통로가 자유통일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변화는 훨씬 더 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