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한 ‘대남공작원’ 윤이상

    윤이상 평화재단, 신숙자 모녀 구출운동 나서야

    박동희 논설위원

    윤이상은 동백림 사건의 주인공이었으며 5.18 광주사태 후 ‘광주여! 영원하라’라는 작곡의 길도 걸은 사람이다.

    위의 두 행위 중 대남 공작행위를 제쳐버리고 작곡만을 부각시켜 세계적 작곡가의 반열에 단숨에 올려놓았다. 탈정치, 음악과 정치는 분리해야 한다는 논리의 업적이다. 탈정치를 근거로 작곡이 내포한 그의 정치이념도 뺏어버리면 그의 작곡은 일종의 소리에 불과함을 인식해야한다.

     음악이 소리에 불과하다면 작품 주제에 뜻이 없어 반음표를 합친 12개의 음표로 조합된 변화무쌍한 요술 품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그런 요술 품에 부여한 현 사회적 훈장은 “세계적 음악가요”, “윤이상 평화재단”, “윤이상 공원” 심지어 동백림 사건은 날조된 것이며 그는 공안정국의 희생자라고까지 말하는 주장들이다.

     음악이 소리에 불과했던 것은 600여년을 거슬러 아주 먼 고대로 기어올라 가야한다.
    음악은 언어를 소리로 표현하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자연을 창조주의 조화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인간유아기에서 1500년도 르네상스를 거처 계몽사상에 힘입어 지각한 인간은(칸트) 음악이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념, 생활철학, 저항 등 의미가 풍부한 예술품으로 진화시켰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란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음악에도 정치적 이념이 내포된 예술작곡이 가장 돋보인다.

    이래서 “음악의 역사는 정치의 역사”라고도 하지 않는가.

    ‘탈정치’ 또는 ‘음악과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윤이상 국제음악제, 각 지역 예술의 전당, 및 daum art hill의 어떤 음악전문가 등등) 는 논조는 그의 작품 속에 숨어있는 대남공작정치이념을 악의적으로 은폐시킨 결과를 뜻 할뿐이다.

     짧은 1악장으로 되어 있는 그의 교향곡 ‘님을 위한 교향시’ 및 5.18 민주화운동에 윤이상이불순하게 뛰어들어 만든 ‘광주여! 영원하라’는 곡은 김일성을 위한 정치이념이 가득한 대표적 작곡이려니와 기타 그의 작품 역시 작곡가 당사자가 은폐시킨 공작정치성이 있는 작곡 등이다. 이런 작품들에 대해 탈정치 하라고?

     정치적 이념이 내포된 음악은 당연히 과거와 현대음악에서만이 아니라 미래음악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거나 있을 것이다. 모든 음악에는 주제가 있고 주제가 정치적일 때가 무수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베토벤의 황제교향곡. 나폴레옹에게 헌정했다가 그가 독제자로 등장한 후 취소해버린 곡을 위시하여, 김일성, 스타린, 큐바의 카스토로 찬양곡 등, 프랑스 애국가 라 말세에즈( la marseillaise ), 히브리노예들의 합창, 인디안 체로키족이 강제이주 당하면서 부른 Amaizing Grace, 나치치하의 R.슈트라우스의 가곡. 일제하에 우리가곡, 현재 자주 공연되는 명성황후. 운동권의 노래 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가 베를린음대 교수가 된 것은 칭찬받을 만하다. 서양 음악계에 편승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은 아니다. 동백림 사건이 발생하기 전 까지는 독일에 알려져 있었던 음악인이 아니다.

     10여 명의 당시의 유학생이 강제로 한국으로 구인됨에 따라 서독이 서독정부의 승낙 없는 구인은 주권침해라고 강력히 반발하면서 즉시 귀환조치 할 것을 요청했을 때 그도 한 명의 유학생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음악인 윤이상 구출운동이 등장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동정도 수반됐다.

     그에 대한 국내 음악적 평가는 전문가들 간에 세계적이라고 하는가 하면 별로야 하는 것으로 나눠진다. 그의 작곡은 동양음악과 서양음악의 하이브리드다. 독일인들에게는 새로울 수밖에 없다. 재즈곡도 서양음악과 아프리카 음악의 혼합형이다. 동남아곡과 서양음악의 접목도 있다.

     윤이상의 작곡이 세계적이라면 당연히 독일 인접국가 프랑스, 이태리 및 영국에도 전파되었어야 하나 그 곳에서는 알지도 못하고 독일 평론역사음악책에는 한국계 독일인이라는 정도의 글 한 줄만이 있을 뿐이다.

     대남공작 정치인으로서의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다. 오길남 박사의 가족 ‘통영의 여인’ 신숙자씨 및 어린 자녀들이 요덕수용소 생활까지도 했으니 그의 공작활동은 극에 달한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김일성이 ‘윤이상 음악당’을 건립해 주었으며 월북 숙청당한 몇몇의 음악인이 그곳에 있게끔 했다. 독일에 가기 전에는 무명의 작곡가였던 그가 본인보다 훨씬 묵직한 대 작곡가로 모셔졌다고 어느 음악전문가는 말 한다.

     인간은 행동하는 생명체로서 자유의지 선택에 따라 자기 행동방향을 결정한다. 이를 금지하는 것은 반 인류행위이다. 예술의 자유, 행동의 자유 및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악의 선택권은 금지다.

     국가의 존립을 위해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국가존립을 위한 안보를 절대적으로 한다. 안보 없는 국가는 멸망할 뿐이다. 멸망한 국가는 반드시 안보무능이 있었음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여기에 자유의지 선택의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동서냉전이 심했던 50년대 공산당을 불법화시킨 서독 정부의 조치는 사상의 자유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말하고 있다. 구 형법 제 88조에 강한 규정을 보강하기도 했다. 윤이상은 작곡과 대남공작을 그의 자유스러운 의사에 따라 스스로 선택 결정했다.

     대남공작은 절대적 금지다.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다. 역시 그의 작품 속에 은폐된 공작정치도 이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이곳에서 논하고 싶지 않다. 윤이상 평화재단도 앞장서 통영인 들과 함께 요덕수용소에서 생사를 알 수 없는 윤이상의 동향인 신숙자 여사 구출운동에 참여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평화재단의 사명이다,

    박동희 논설위원<건국대 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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