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위의 안방에서 권력의 정글로 나 앉아 보면...

    명분에 봉사를 더하여,
    박원순은,
    대기업을 뒷돈 대 주는 마름으로 부리고,
    대중매체를 희망가 부르는 기생으로 만들었다

    최성재

    한국은 명분 사회다. 명분을 선점하면 여론을 장악할 수 있고 민심을 확보할 수 있다. 명분이 권위(authority)이고 권위가 명분이다.

    그러나 권력(power)은 명분이 아니다. 대체로 권력은 명분과 원수지간이다. 아래에서 위로 자발적으로 바치는 권위는 아름다운 명분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명분의 소지자에게 감동하는 것이 민심이고, 그에게 씌워 주는 영혼의 왕관이 권위이다. 명분이 약한 권력은 권위의 왕관이 없기 때문에 낮에는 가시방석에 앉아 있고 밤에는 가위눌린다.

    아름다운 명분을 전매특허 낸 자는 권력의 바위에 침을 뱉고 오줌을 싸서 탄압의 빌미를 제공한다. 미끼에 덜컥 걸려들어 권력이 산위에서 아름다운 명분을 향해 무시무시 바위를 굴리면, 우두머리는 수증기가 증발하듯이 훌훌 어디론가 날아가고 우직한 졸개 몇 명이 희생된다. 그러면 여론이 들끓고 민심이 요동친다. 이때! 명분의 우두머리가 팔에 붕대를 감거나 목발을 짚고 나타난다.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기도 한다. 권력이 그의 눈앞에 어른거린다. 
     
    명분이 약하면 미다스의 손으로 황금을 빚고 솔로몬의 지혜로 정의를 실현하고 양만춘의 화살로 마왕을 물리쳐도, 권력은 이 입에서 저 입으로 핀란드산 자작나무즙, 자일리톨 씹히듯 질겅질겅 씹힌다.
    반면에 명분이 강하면, 뇌물도 기부가 되고, 노동착취도 자원봉사가 되고, 거짓말도 비유가 되고, 불륜도 낭만이 된다.

    한국에서 명분은 실천과 무관하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명분은 머릿속과 입술 위에서만 실현될 가능성이 다분하므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명분의 황금 패물을 치렁치렁 달고 다니는 자는 십중십(十中十) 위선자이다. 낮과 밤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

    한결같은 것은 입에 발린 명분뿐이다. 심지어 자기들끼리도 속는다. 명분의 일관성만 유지하면 그들끼리는 어떤 행위도 용납되고 어떤 죄도 용서되고 어떤 불법도 장려된다. 
     
    한국의 명분지상주의자는 시대의 유행을 읽는 눈이 밝아 늘 한 발 앞서 명분을 선점한다. 민주에서 통일로, 통일에서 민족으로, 민족에서 평화로, 평화에서 진보로, 진보에서 환경으로, 환경에서 복지로 마침맞게 명분을 선점하여 여론을 들쑤시고 민심을 흔든다. 
     
    마침내 명분이 권력을 잡자, 그들의 위선과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명분의 실권은 여전히 재야에 있었고 그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권력의 비호를 받아 무법천지의 깽판을 조성했다. 권력의 비호가 사라진 후에도 재야의 명분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새로운 권력을 철저히 무시하고, 촛불 백만 개로 천만 개로 단번에 허수아비로 만들고, 시시때때로 어깨띠만 바꿔 매고 광란의 치외법권 무대 위에서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다. 
     
    명분의 정체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고개를 외로 꼬고 그들의 말에 더 이상 속지 않자, 조용히 착한 행동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낮은 곳으로 임하여 쌀을 나눠 주고 연탄을 배달해 주고 장학금을 쥐어 주고 어깨를 주물러 주고 파스를 붙여 주고 눈물을 닦아 주었다. 명분에 기부와 봉사라는 실천을 더한 것이다.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왼쪽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작은 기부와 작은 봉사가 이어졌다. 통 큰 화끈 기부도 줄을 이었다.

    '아름다운 조폭' 박원순이 그 대표주자였다. 지방정부든 중앙정부든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고 그는 10여년 간 약 900억 원을 모아서 누구도 부인 못할 좋은 일에 많이 썼다.

    그러나 아름다운 가게의 회계는 수입과 지출 모두 하수도처럼 불투명했다. 이전에 몸 담았던 명분 게릴라 부대를 비롯하여 양심이 무법의 지상낙원이고 직업이 불법 폭력시위인 단체들의 가장 큰 돈줄이 되었다. 이번에는 아름다운 행동의 미끼로 사람들을 속인 것이다!

    대기업은 그들의 밥이었다. 마름이었다. 얼굴 없는 천사였다. 통 큰 기부도 하고, 연봉 짭짤한 감투도 주고, 물 좋은 일거리도 뚝뚝 떼어 주었다.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지방단체장은 4년 연봉을 몽땅 기부하기도 했다. 기부했다고 봐 주는 것도 아니다. 공(公)은 공, 사(私)는 사!

    대기업과 정부와 미국은 이들에게 악의 화신이다. 타도의 대상이다. 단 악의 화신 김정일 집단은 어떤 경우든 증거 불충분의 원칙에 따라 열렬 변호의 대상이다. 
     
    '아름다운 조폭' 박원순은 그들의 세계 밖에서는 여전히 무명의 인사였다. 그러나 그에게 관운장의 청룡도가 있었으니, 그것은 아름다운 이름으로 어린이에서 노인에까지 널리 알려진 안철수의 후광이었다.

    박원순이 첫 번째 큰 권력으로 은근히 유혹하자 똑똑하고 착한 안철수가 수십 개의 마이크 앞에서 서슴없이 그와 어깨동무했고, 바로 그 순간 명분과 봉사와 복지를 신흥종교로 신봉하는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과 트위터가 하루아침에 '철수 형님, 원순 오빠'를 서울의 태양으로 떠올렸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큰 권력이 그의 눈앞에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