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기자(記者)의 사회 
      
    안철수, 박원순에 불리한 사안들을 덮어주는 기자들.
    조갑제닷컴   
     
    <유명성명학자, 안철수 이름 풀이 해보니/'이름의 엄청난 비밀' 저자 "결국 정치할 것, 박근혜는…"> 
    이게 중앙일보 인터넷판의 머리 기사 제목이다. 한국 신문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안철수, 박원순에 대하여는 유달리 우호적인 게 한국 언론이다. 두 사람은 공인(公人)이 되었으니 언론이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하여 반드시 따져야 할 사안들이 많은 데도 덮고 넘어간다.

    언론이 아니라 좌파 선전 기관 같다. 안철수씨의 말바꾸기, 단일화 쇼의 문제점, 박원순씨의 북한인권(人權)문제 무시, 참여연대의 수많은 불법(不法)집회 및 불법행위 가담, 특히 천안함 폭침 관련 매국(賣國) 행위(작년에 유엔 안보리에 북한 소행이 아니란 편지 보낸 사실) 등은 기자가 직접 해명을 들어야 할 것들인데, 성명풀이 기사를 쓰고 있다.

    기자는 신념보다 사실을 중시해야 하는 직업이다. 안철수와 박원순을 좋아하는 마음이 신념화하여 두 사람에게 불리한 사실들을 덮게 만든다면 기자를 그만둬야 한다.
    한국은 지금 '죽은 기자의 사회'이다. 그런 기자들이 정치와 국회를 나무라는 것은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다. '죽은 시인(詩人)의 사회'는 감성이 마비된 사회이고, '죽은 기자(記者)의 사회'는 이성이 마비된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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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기자(記者)의 사회
     2002년 8월20일 사회부 기자들은 「집단자살」하기로 결의했는가?
     조갑제(趙甲濟) 월간조선(月刊朝鮮) 편집장(mongol@chosun.com)
        
      기자가 기사를 쓰기 시작한 그날부터 가장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은 「…라고 한다」와 「…이다」의 구별입니다. 「경찰은 A씨가 강도라고 한다」와 「A씨는 강도이다」는 천당과 지옥의 차이, 사실보도와 誤報(오보)의 차이랍니다. 「A씨는 강도이다」라고 기사를 썼을 때는 기자가 그 사실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실이 아닌 경우에는 감옥에 갈 수도 있고, 거액의 손해배상을 물어야 합니다. 「…이다」라고 쓰기 위해서는 기자의 확신만으로는 안 되고 물증이나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따라야 합니다. 그런 확정 판단에 도달하려면 기자는 엄청난 취재를 해야 합니다. 「…라고 한다」고 쓰는 것은 발표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족하지만 「…이다」라고 쓰려면 수사식 취재와 입체적 검증을 해야 합니다.
     
      지난 8월20일 신문과 방송은 흥분된 표현으로써 허원근 육군 일병이 상관의 총에 맞아죽었는데 자살로 은폐 조작되었던 사실이 18년 만에 밝혀졌다고 단정하는 보도를 했습니다. 제가 차중(車中)에서 들은 MBC TV의 아홉 시 뉴스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앵커:군복무 중이던 사병이 술 취한 상관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을 군부대가 조직적으로 자살인 것처럼 은폐했던 사실이 18년 만에 밝혀졌습니다.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서 사체에다가 추가로 총질까지 해댔습니다. 철저하게 진상이 밝혀져야 할 것이고 또 책임을 져야 할 줄로 압니다>
     
      「총질까지 해댔습니다」란 표현은 보도문에서 쓰지 않아야 할 감정적 단어들입니다. 앵커는 이 은폐사실을 확신하고 자신의 분노를 집어넣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앵커의 소개에 이어 기자의 보도가 이어졌는데 이런 표현도 있었습니다. 「군헌병대는 (유가족들에게) 몸조심하라며 오히려 협박했습니다」, 「군당국의 주장은 완전한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보도 중간에 기자는 이 사실의 근거를 이렇게 내놓았습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오늘 허(許)일병이 부대내(內) 모 하사관이 쏜 실탄에 가슴을 맞고 숨졌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중략) 의문사위원회는 이번 사건이 권력과 돈이 없으면 자살로 은폐되기 쉬운 군(軍) 의문사의 전형이라고 말하고… (하략)>
     
      거의 모든 오보(誤報)에는 그 기사 안에 오보(誤報)라는 자백이 들어 있습니다. 이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토록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게 만든 근거는 너무나 허술합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뿐입니다. 그 발표를 근거로 기자가 만나 인터뷰로 내보낸 사람은 총을 쏘았다는 상관이 아니고 허(許)일병의 아버지입니다. 이 기사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허(許)일병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직하게 「…라고 한다」고 해야 하는데, 「…이다」라고 단정했습니다.
     
      즉, 일방적 주장을 진실로 승격시킨 것입니다. 이 승격에 의도가 들어갔다면 造作(조작)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의문사위원회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현재로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기사가 오보(誤報)라는 점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요행으로 맞는 것은 도박이지 정보(正報)가 아닙니다.
     
      우연히 차중(車中)에서 제가 듣게 된 MBC를 예로 들었을 뿐 KBS, SBS, 한겨레신문, 문화일보, 경향신문 등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허(許)일병 아버지의 주장을 진실이라고 보도하는 형식의 오보(誤報)를 했습니다. 조선일보와 국민일보 및 연합뉴스는 기자가 단정하지 않고 「의문사위원회가 밝혔다」는 식으로 보도함으로써 오보(誤報)를 면했습니다.
     
      이날 지옥 문턱에 가는 공포를 느꼈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으로부터 범인으로 지목된 모 하사관, 타살을 자살로 은폐했다는 군(軍) 간부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의 법적 신분은 현재 무죄인들입니다. 그런데도 방송과 신문들이 확인 사살, 조직적 은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집중 보도를 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무고한 사람이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의심을 받아보면 그런 심리적 고통이 육체적 고문에 못지않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1975년에 등산 중 失足死(실족사)한 장준하(張俊河)씨(전 思想界 발행인)와 사고 당시 같이 있었던 김용환(金龍煥)씨(고교 교사)가 그런 사람입니다. 장준하(張俊河)씨를 국가기관이 죽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단체, 그리고 이들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여 의혹을 제기한 방송·잡지·신문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한 그는 1993년 6월호 월간조선(月刊朝鮮)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김(金)씨는 장준하(張俊河)씨의 장례 직후 잠적했고 최초의 진술 외엔 아직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적고 있었다. 이 초라한 사람이 갈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나 슬플 때나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도 잠적인가>
     
      <나는 할 말을 다했는데 나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았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없었던 일을 지어서 말하라는 것인가.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없는 말도, 없는 것도 마음대로 만들어 한 방향으로만 몰아가고 있는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란 말인가. 나는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에 서서 갈 곳을 잃은 거리의 고아가 되어 버렸다. 신문, 잡지, 텔레비전, 정치권에서 나를 향해 공격해 오고 있다. 유일한 등산 동반자이며 목격자의 증언도 부정한다면 그곳에서 어떤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한방에 같이 있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자식이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했다고 말할 것인가>
     
      장준하(張俊河)씨를 국가기관이 죽였다면 실족사 장소까지 그를 동행했던 유일한 인물 김용환(金龍煥)씨가 하수인이 됩니다. 金씨의 주장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면 張俊河씨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억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방송과 신문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공격적으로 정치적으로 의문이 제기될 때 한 개인이 결백증명을 해보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지만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선동가들은 기술적으로 의혹을 제기만 해놓으면 상대방은 수세(守勢)에 몰리고 회복이 불가능한 손해를 본다는 점을 이용합니다. 여기에 말려들지 않아야 할 의무를 지닌 직업인이 바로 기자와 검사입니다. 요사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기자들은 선동가들의 선전원으로 전락하고, 검사들은 선동가의 비호자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기자들이 「허(許)일병 사건은 은폐되었다」고 단정하려면 대강 다음과 같은 노력이 따라야 했습니다. 許일병을 쏘았다는 하사관에 대한 면접 취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담당자들에 대한 면접 취재, 剖檢(부검)한 의사들에 대한 다각적인 취재, 현장확인·은폐하는 데 가담했다는 軍 간부들에 대한 직접 취재, 수사 전문가들의 견해, 許일병 주변과 가족들에 대한 취재 등.
     
      이런 노력을 하나도 하지 않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가족의 말만 전하면서 「은폐했다」고 단정한 것은 게으름을 억지로 덮으려는 거의 범죄적 행동입니다. 언론이 許일병을 사살한 범인으로 단정한 당사자의 입장에 서 보십시오. 사석에서 「당신은 살인범이오」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데도 굉장한 고민과 조사가 필요할 터인데 방송과 신문이 수천만 독자 및 시청자들 앞에서 「저 자는 살인자요」라고 공개 고발을 하는 데 있어서 아무 노력도 고민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반론도 듣지 않고 발표문만 그대로 베꼈다면 이는 한 힘 없는 사람을 상대로 물고문, 전기고문을 한 것보다 훨씬 악질적인 태만입니다.
     
      장준하(張俊河)씨 실족사 사건의 목격자 김용환(金龍煥)씨의 고통을 들어보십시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녹화해 둔 것(편집자 注:SBS가 의문을 제기하기 위하여 만든 프로그램)을 보았으나 머리만 아프고 잠도 오지 않고 마음에 괴로움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음날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해 머리는 무거웠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저의 기억으로는 거의 모든 언론이 판에 박힌 틀의 기사문을 통해서 이렇게 집중적으로, 이렇게 치명적으로(언론 자신과 피해자에 똑같이) 오보를 집단적으로 한 경우는 저의 32년 기자 생활 중 처음입니다. 오보 언론들은 그 뒤 조선일보(朝鮮日報) 사회부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최초의 오보(誤報)를 고치지도 않고서 계속 「은폐와 조작」이라고 확정된 사실처럼 밀고나갔습니다. 배짱을 부릴 때가 따로 있습니다. 한국의 사회부 기자들이 「집단자살」하기로 결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2002년의 한국, 정보화 수준이 세계적이란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백주(白晝)의 암흑입니다.
     
      기자는 직업적 윤리에 입각하여 모든 발표문을 의심해야 합니다. 왜 전문 수사 능력이 없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를 의심하지 않았습니까. 살해 현장의 목격자가 열 명을 넘는다는데, 어느 군(軍) 수사관도 그들에게 거짓증언을 하라고 압력을 넣지 않았다는데(오히려 바른 말 하라고 닦달을 했다는데), 그 목격자들이 힘 없는 하사관을 위해 자신들은 신세 망칠 것을 각오하고 입을 맞추어 타살을 자살이라고 위증한다는 것이 우리 군대에서 가능했겠느냐, 하는 의심을 왜 하지 않았습니까. 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를 「소설쓰기」라고 부정하는 당사자들의 반론을 싣지 않았습니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구성과 수사행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왜 쓰지 않습니까.
     
      기자들에게 오보를 추궁하면 『시간이 없어서』라고 답합니다. 분, 초를 다투는 사건 기사에서 확인할 여유가 없어 의도성이 없는 오보를 하는 수가 많습니다. 오보는 오진(誤診)이나 오판(誤判)처럼 줄일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오보를 수정하는 태도입니다. 이번처럼 첫 보도가 나간 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많이 나왔으면 최초의 단정보도에서 후퇴하여 반론을 실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 신문은 조선일보(朝鮮日報) 정도였습니다.
     
      오보에도 갑을병이 있습니다. 피해가 구체적이지 않은 오보가 있고, 호랑이 출현 오보처럼 웃음거리를 제공하는 오보도 있습니다. 이번 오보는 한 인간을 살인범으로 몬 것입니다. 저는 제1보에서 오보를 했던 기자들도 이제는 오보였음을 자인(自認)하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오보를 수정하지 않고 고집하고 있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의문사위(委)가 대통령 직속이라고 해서 김대중(金大中) 정권을 믿든지, 오보(誤報)를 해도 힘 없는 하사관이 어쩔 것이냐 하는 자신의 비열함을 믿든지, 요사이 사회 분위기가 이런 종류의 오보에는 항의하는 목소리가 별 것 아니더라는 과신(過信)에 차 있든지, 군대는 아무리 공격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든지, 본인은 고치고 싶어도 회사에서 밀고나가라고 했다든지…. 이유야 여러 가지이겠지만 주의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의 집단 오보 기사에는 기명(記名)이 있습니다. 말한 기자, 쓴 기자의 이름이 밝혀져 있습니다. 고소나 소송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두고 두고 오보를 추궁당할 수밖에 없도록 그 이름 석 자가 인터넷에도 올라 있습니다.
     
      기자들이 선동가의 선전원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사례는 너무나 많지만 최근 진행 중인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회창(李會昌)씨의 아들 이정연씨와 관련된 고소·고발사건을 한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사회부는 이 사건을 「이정연씨 병역시비 맞고소·고발사건」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표현이 가장 정확하고 공평하다고 판단됩니다.
     
      언론사에 따라 「병역비리 의혹」, 「병역면제 의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이정연씨한테 불리하고 의혹을 주장한 김대업(金大業)씨한테 유리한, 공정하지 못한 단어 선택입니다. 지금 단계는 이정연씨가 불법적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확증이 없는 상태입니다. 「병역비리 의혹」 속에는 비리와 의혹이란 부정적인 두 단어가 들어 있어 이정연씨가 범법자(犯法者)라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뒤에 근거 없는 의혹이었음이 밝혀진다면 의혹과 비리라는 말만큼 이정연씨는 피해를 본 셈이 됩니다.
     
      우리 언론은 기소도 되지 않은 사람, 경찰·검찰 같은 수사기관의 수사도 들어가지 않은 상태의 사람에 대해 수사 전문 능력이 의심스러운 한 위원회의 주장을 비판 없이 수용하여 스스로 유죄를 확정선고한 셈입니다. 기자가 보도도 하고 재판도 한 격입니다.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무지막지한 오보가 나오도록 방치, 권장했을 부장, 국장들의 양식입니다. 그 기사는 우선 문법에 맞지 않습니다. 도대체 40代, 50代 부장, 국장들은 어떻게 교정을 보았다는 것인가. 오보 기사 문장 안에 이미 이 보도는 오보(誤報)라는 자백이 들어 있는데도(부장이 달리 확인을 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20년, 30년 경력을 가진 부장, 국장들이 이런 기사를 통과시켰을까요.
     
      젊은 기자들에게 영합한 것인가, 시류(時流)에 아부한 것인가, 아니면 좋은 게 좋다는 무사안일인가. 2002년 8월20일은 상당수 고참 기자들도 「동반자살」한 날입니다.
     
      우리 국군의 소신 없는 대응은 또 무엇입니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를 인용한 보도는 국군 지휘부의 명예에 거의 치명적인 손상을 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타살을 자살로 은폐하는 데 군(軍) 지휘계통과 수사기능이 조직적으로 가담했다면 누가 아들 딸들을 군대에 보내려 하겠습니까. 장교들의 명예는 정직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전장에서 허위 보고는 사형감이자 국가의 패망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의문사위원회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만들어진 대통령 직속 기관이기 때문에 軍당국이 억지라는 판단을 하면서도 조심하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국군은 그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시절이니 지금의 우리 軍과는 관계 없다는 생각입니까. 그보다 사소한 비판 기사에 대해서도 법적대응을 서슴지 않던 국군 당국이 왜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하여 마치 「許일병 사건 은폐·조작」을 자인(自認)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조직의 명예를 자력(自力)으로 수호하지 못하는 조직은 무너집니다.
     
      저는 사회부 기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고문에 의한 조작사건을 많이 취재하였습니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란 책도 썼습니다. 제가 쓴 한 기사는 「신화 1900」이란 연극과 MBC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고문과 조작 사건을 취재하다가 내린 결론은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즉 엉터리 수사관들에게는 반드시 엉터리 기자들이 공범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는 점이었습니다. 언론의 집중보도로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진범이 되어 버린 사람은 무죄선고를 받더라도 최초의 보도가 만들어 낸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망가진 일생을 살다가 끝나는 경우를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 김기철이란 청년이었습니다. 부산 김근하군 유괴사건의 범인으로 발표되고, 보도되었으나 좋은 변호사와 판사를 만나 무죄로 풀려났던 그는, 고문 후유증과 대인(對人) 기피증으로 폐인이 되다시피하여 지내다가 1980년 42세에 요절했습니다. 그는 혼자 살면서 항상 머리맡에 재판기록 보따리를 두고 잤다고 합니다. 이웃사람들은 말이 없는 이 늙은 총각을 「형무소에 갔다온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의심에 찬, 때로는 싸늘한 시각에 그가 답할 수 있는 방법은 재판자료를 보여주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검찰이 한 재소자의 엉터리 제보(提報)에 속아 김기철씨를 범인이라고 구속하던 날 신문들은 그를 「살인귀」, 「해병대의 특수교육 경험을 살려 하수인에게 살인방법을 가르쳐 준 국졸(國卒)의 실업자」라고 사진을 곁들여 대서특필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이념에 사실을 종속시킵니다. 좌익은 언론을 계급혁명의 중요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언론자유를 악용하여 사실의 왜곡·조작·과장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합니다. 좌익이념에 물든 기자들은 기자가 아니라 선동가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적(敵)이 됩니다. 기자는 자신의 신념이 사실과 어긋날 때는 신념을 버려야 합니다. 신념과 이념 과잉의 한국 사회에서 사실 추구를 직업으로 하여 여러 면에서 특권을 누리는 기자들에게는 특권에 따른 의무와 냉철한 자기 비판의 자세가 요구됩니다. 권력과 맞서기만 했던 과거보다는 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권력남용에 못지않는, 언론자유에 대한 위협은 「좌파적 선동 분위기의 득세」입니다.
     
      민주주의의 두 실질(實質)인 법치와 언론자유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억울한 사람들을 최소화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호소할 수 있는 지면과 화면을 제공하자는 뜻이 아닐까요. 기자들이 나서서 억울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 가는 사회는 「죽은 기자의 사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