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은 壽命이 다하였다." 
      
     '강하지도 못하고 약하지도 못하여' 곱게 망해주지도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수명이 다한 한나라당을 해체하여 싸울 줄 아는 政黨으로 재조직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8월24일에 투표장으로 나간 215만9095명의 서울시민들이 아닐까?

    趙甲濟   
     
     역사는 더럽게 망하는 나라가 대부분이고, 베니스와 新羅처럼 아름답게 망하는 나라는 例外(예외)임을 보여준다. 북한정권과 카다피 정권도 지저분하게 망해가고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 敬順王(경순왕)은 백제의 견훤이 경주로 쳐들어와 신라의 경애왕을 죽인 뒤 王으로 세운 사람이다. 경순왕 9년(서기 935년) 王은 나라를 고려 王建(왕건)에게 바치려고 회의에 붙였다. 마의태자는 이렇게 말했다(三國史記).
     
      "나라의 존망에는 반드시 天命(천명)이 있는 것입니다. 다만 충신, 義士와 함께 民心을 수습하고 스스로 굳게 하다가 힘이 다한 후에 포기할 것인데 어찌 1000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경솔히 남에게 줄 수 있습니까."
     
      이에 경순왕이 말했다.
     
      "이와 같이 외롭고 위태로운 형세로는 保全(보전)할 수 없다. 강하지도 못하고 또 약하지도 못하여 무고한 백성만 간과 뇌를 땅에 바르는 것이니, 나는 차마 할 수 없다."
     
      '간과 뇌를 땅에 바른다'는 말은 原文에 '肝腦塗地(간뇌도지)'라고 적혀 있다. 무고한 백성들이 전쟁에 휘말려 거리에서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절실하게 그린 것이다. 경순왕의 말에서 '강하지도 못하고 약하지도 못하다'는 말이 흥미롭다. 나라를 지킬 만큼 강하지도 못하고 나라가 폭싹 망해버릴 정도로 약하지도 못하니 王族(왕족)들이 구차한 목숨을 근근히 이어가면서 백성들만 고생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경순왕은 후계자인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시하고 고려 王建에게 항복할 뜻을 전했다. 그해 11월에 王은 백관을 거느리고 경주를 떠나 송도(개성)의 태조에게 귀순한다. 마차, 牛車, 말이 30여리에 잇달아 도로가 막히고 구경꾼이 담장과 같았다. 경순왕은 王建으로부터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경주를 食邑(식읍)으로 받았고 경순왕 백부의 딸을 王建에게 시집 보냈다. 여기서 난 사람은 고려 현종의 아버지가 된다.
     
      신라의 귀족들도 고려에서 重用(중용)되었다. 경순왕이 싸워서 망하지 않고 스스로 귀순함으로써 백성과 귀족들이 亡國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삼국사기의 著者 金富軾(김부식)은 이렇게 평했다.
     
      <경순왕이 태조(왕건)에게 귀순한 것은 비록 마지 못한 일이나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때 만약 죽음으로써 힘껏 싸워 항거하다가 힘이 꺾이고 형세만 궁급함에 이르렀다면 반드시 그 종족은 멸망되고 무고한 백성에게 해만 끼쳤을 것이다. 현종은 신라의 外孫(외손)으로 寶位(보위)에 올랐고 그 후 大統(대통)을 이은 자가 모두 그 자손이었다. 어찌 음덕의 보답이 아니겠는가>
     
      金富軾 또한 신라 귀족의 후예였다.
     
      나라가 망하면 왕족과 백성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동서고금의 사례에서 보는 바이다. 신라처럼 싸우지 않고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왕이 스스로 결단하여 귀순함으로써 그 스스로는 물론이고 귀족과 백성들을 살린 예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고구려는 지배층의 自中之亂(자중지란), 백제는 지배층의 부패가 심각했다. 두 나라가 싸워서 망한 것은 一見 장렬하게 보이지만 그 후유증은 當代의 사람들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싸워서 망하든지 끝장을 확인할 때까지 가서 망하면 망하는 쪽에서 남는 것이 없다. 따라서 접수하는 쪽에서는 물건과 노예를 줍듯이 하니 예우해줄 이유가 없다. 신라 경순왕은 군사적, 경제적 餘力(여력)이 있을 때 귀순하니 王建으로서도 대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신라 지배층이 고려의 지배층으로 轉入함으로써 신라사람들은 고려시대에도 대접을 받으면서 살았다. 邊太燮(변태섭) 교수는 '韓國史通論'에서 고려 성종期 국가체제가 확립되었을 때의 지배세력은 "지방호족 출신으로 중앙관료가 된 계열과 신라 6頭品 계통의 유학자들이었다"고 썼다. 成宗 때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데 主役이었던 유학자 崔承老(최승로)는 신라 6두품 출신 귀족이었다. 그는 28개조의 개혁안을 成宗에게 제시하여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와 유교 정치이념을 확립했다.
     
      북한 金正日은 이런 경순왕에게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북한체제가 망하고 김정일 집단이 斷罪(단죄)되는 것은 어차피 시간문제이다. 여력이 있을 때 손을 들 것인가,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게 되었을 때 항복할 것인가의 선택만 남았다. 김정일이 대오각성하여 대한민국에 귀순한다면 적어도 그와 親族, 그리고 측근들의 안전은 보장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가는 그의 운명이 의자왕이나 차우세스쿠보다 나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인간이든 조직이든 헤어질 때, 죽을 때, 해산할 때, 망할 때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삼국통일로써 韓民族이란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이 공동체의 활동공간을 한반도에 설정했던 신라는 망하는 것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신라정신 속에 있는 실용정신, 자존심, 그리고 관용과 지혜 덕분일 것이다. 에밀레鐘에 새겨진 銘文(명문)에 나오는 '圓空神體(원공신체)'란 말이 새삼 생각난다. "둥글고 속이 빈 것이 하나님의 本性"이라는 의미이다. 원만하고 겸허하면서도 강력한 존재가 新羅였다.
     
     
      "강하지도 못하고 또 약하지도 못하여 무고한 백성만 간과 뇌를 땅에 바르는 것이니, 나는 차마 할 수 없다." 는 경순왕의 한탄이 적용되는 단체가 하나 더 있다.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壽命이 다하였다"는 말이 유행이다. 내년 두 차례 선거를 통하여 소멸될 것이란 예측을 하는 이들도 많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지지층을 배신하였다.
      2. 헌법의 대원칙인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 수호 의무를 사실상 포기하였다(홍준표 대표는 "대기업 하면 착취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 오른다"는 인물이다). 도심이 수시로 反국가세력의 난동장이 되는 것을 구경꾼처럼 바라본다.
      3. 한국 현대사의 정통성에 뿌리를 박아야 진짜 보수정당인데, 李承晩-朴正熙 노선을 사실상 부정하니, 역사관이 의심스럽다. 한나라당이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에 대하여 침묵한 것은 당의 역사관 또한 좌편향되었다는 추리를 가능하게 한다.
      4. 이념戰場의 사령탑 역할을 맡겼는데, 이념을 버리고 싸움을 포기하였다. 절대 다수 의석을 갖고도 명분 있는 북한인권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한다.
      5. 지난 4년간 애국세력을 약화시키고 從北세력을 강화시켰다.
      6. 汎우파 연합전선을 조직하는 핵심 고리 역할을 싫어한다.
      7. 從北척결뿐 아니라 부패척결에도 실패하였다.
      8. 한나라당은 從北의 터전인 대학교에 조직을 심지 않는다. 청년들을 反국가 세력에 내어주고 미래를 포기한 셈이다.
      9.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개인적으론 뛰어난 이들이 많지만 그런 능력이 조직으로 엮이지 않는다. 조직원들을 한 덩어리로 묶을 이념이 없기 때문이다.
      10. 한나라당은 스스로를 개혁할 수 없는, 따라서 정권을 재창출할 수 없는 不姙(불임) 정당이다. 문제는 "강하지도 못하고 약하지도 못하여 무고한 국민들만 괴롭히고 있다"는 점이다. 체제의 생존이 아니라 자신들의 당선만 생각하는, 利權집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경순왕 같은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한나라당을 국민들 앞에 바치면서, "우리로선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니 여러분들 손으로 수술을 하든지 해체를 하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라고 할 터인데...
      수명이 다한 한나라당을 해체하여 싸울 줄 아는 政黨으로 재조직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8월24일에 투표장으로 나간 215만9095명의 서울시민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