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층분석] 사회주의행 열차를 탄 대한민국 
    포퓰리즘 기저에 사회주의 노선 확산중 
     
    미래한국  futurekorea@futurekorea.co.kr  
     
    미국에서도 사회주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2008년 오바마 행정부가 천문학적인 금융구제법과 건강보험법을 추진하면서‘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미국인들의 오랜 격언이 무색해지고 있는 것.

    옛 소련 연방의 영문 약자인 ‘U.S.S.R’을 패러디한 ‘U.S.S.A’ (美사회주의 합중국)이란 단어는 인터넷에서 이미 낯설지 않다. “이제 걱정 마세요. 사업에 실패해도 (美)민주당이 구제해 드립니다.”이런 조롱을 담은 한 미국 사이트에 페이스북 유저들은 무려 3천 건이 넘는 추천을 날렸다.

    “지금은 도둑놈들의 전성시대다. 도둑놈들을 감옥에 쳐 넣는 것이 정의이지, 구제(bail out)해주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피터 비스클로스키 미 민주당 상원의원의 말이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가 파산한 금융기관들을 세금으로 구제(bail out)하는 법안에 대해 그렇게 비난했다.

    공화당의 존 매케인(McCain) 상원의원이 오바마의 정책을 두고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썼다면, 같은 당의 짐 드민트(Demint) 상원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세계 최고의 사회주의 세일즈맨”이라고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사회주의 이력을 추적해 책을 쓴 사람도 있다. 하버드대에서 사회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스탠리 쿠르츠(Stanley Kurtz). 그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미국의 사회주의’라는 제목의 두툼한 책에서 오바마가 청년 시절부터 이념적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해 왔고 스스로 사회주의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했다며 그 근거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미국의 사회주의화 논쟁

    2009년 2월 16일자 뉴스위크지가 커버스토리 제목으로 ‘이제 우리 모두는 사회주의자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던 것은 미국이 공산화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은 아니었다. 미국의 지식인들과 기업인들, 그리고 보수층이 우려하는 것은 미국을 발전시켜 온 프론티어 정신과 창발성이‘공짜’와 ‘복지’로 훼손되는 문제였고, 이에 길들여진 민주주의가 중우(衆愚)정치로 전락하는 것이었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실제 사회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지난 해 7월 한국경제연구원은 ‘대중영합주의의 경제정책에 대한 영향분석’(저자 송원근)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포퓰리즘정도로 알고 있던 무상급식과 증세, 그리고‘보편적 복지’정책들이 사실상 유럽에서 사회주의 정당과 세력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걸어왔던 길이라는 분석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는 달리, 시장친화적이고 성장 위주의 정책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에서 재분배를 지향하는 대중영합적 정책기조가 나타난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가 단순한 포퓰리즘을 넘어 사회주의 이념이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지요.”보고서의 저자 송원근 박사의 말이다.

         복지국가 유럽이 한국보다 사회 불만 높아

    이러한 결론의 배경에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크게 저하돼왔다는 점이 놓여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성공은 개인의 노력보다 소위 빽과 줄 그리고 운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실패를 사회와 남의 탓으로 돌리는 국민들이 지난 정권 하에서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사는 국내가 아닌 글로벌 사회학자들이 주축이 돼 조사하는 월드 밸류스 서베이(WVS)의 결과로 밝혀졌다. 2006년 WVS조사에 따르면‘자신의 노력이 성공을 가져다 준다’라고 믿는 국민은 1990년 응답자의 약 37%에 달했다가 2006년에는 약 절반에 이르는 18%로 감소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정말 그렇게 변한 것일까? 같은 해 WVS의 조사를 보면, 노력이 성공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독일과 이탈리아 국민의 응답자는 8% 수준이었고 프랑스는 12%를 밑돌았다. 우리 사회의 좌파가 꿈꾸어 마지않는 스웨덴의 경우도 노력이 성공을 부른다는 응답은 7%선에 불과했다. 이를 해석하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의 국민들은 우리 한국보다 자신들의 사회가 더 공정치 못하며 개인이 열심히 노력해 봐야 헛수고라는 생각이 더 팽배하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은 바로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통한 소득을 불신한다는 이야기죠. 유럽의 경우,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이념이 정치제도, 교육 등을 통해 20세기 전반에 걸쳐 정치적 영향력을 형성했고, 평등을 가치로 하는 복지개념을 확립시켰지요. 하지만 결과는 여전히 사회에 대해 불공정하다는 인식일 뿐입니다.”송원근 박사의 설명이다.

    개인적 노력이 성공을 가져온다는 믿음은 소득 불평등 정도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중국과 인도 국민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누군가가 우리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해 봐야 소용없다’는 인식을 지난 10년간 성공적으로 심어놓았다는 이야기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요구가 소득불평등 때문에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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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레시나(Alesiana)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소득 불평등이 유럽보다 심함에도 미국에서 대규모의 소득 재분배 정책이 시행되지 않는 이유를 조사했다. 그 원인은 단순한 소득 불평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과 사회이념에 자리하고 있었다. 즉 19세기 후반까지 미국과 유럽의 재분배 혹은 복지정책은 큰 차이가 없었으나 양쪽 모두 민주주의 정치체제로 전환하면서 다른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미국과는 달리, 유럽 각국은 대부분 왕정, 혹은 과두제로부터 민주적인 정치체제로 전환하면서 사회주의 좌파정치세력이 주축을 이뤘고 이들로부터  끊임없는 정치적 압력,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 위협에 크게 직면했다. 그 결과 유럽국가들의 경제 사회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좌편향돼 왔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유럽의 교원노조가 마르크스 공산주의 사상을 초급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철저하게 주입해온 점이 유로 코뮤니즘의 집권에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유럽의 사회주의 이론은 인문학과 교양, 그리고 사회철학의 근간을 이루었고 지식인들에게 사회주의 이론이 아닌 것은 천박한 것이라는 주술을 만들었다.

    포퓰리즘 복지 논쟁의 뿌리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복지논쟁의 뿌리도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것은 단순한 여당의 포퓰리즘을 넘어 지난 10여 년간, 민주노총 전교조 참여연대와 같은 좌파그룹의 합법화,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제도권 내 약진이 이루어낸 성과라고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기회가 아닌 결과적 평등을 주장하는 좌파의 보편 복지로는 지속가능한 경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유럽은 공공복지를 시행할 수 있을만한 누적된 경제력이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야 공공부문 지출비중을 유지할 수 있지요. 공공부문의 과다지출은 민간경제활동의‘구축’(crowding out)을 가져오게 돼 있습니다. 즉 공공지출이 결국에는 1인당 국민소득을 감소시킨다는 것이죠. 이는 보편적 복지와 같은 재정지출 확대가 장기적으로 정부지출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여력(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뜻입니다.”조동근에 하이에크 소사이어티 회장(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조동근 교수의 설명을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에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요소를 아무리 더 투입하더라도 성장할 수 없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이를 경제학이론에서는 잠재성장률(Potential)이라고 한다. 만일 정부가 공공지출을 늘리면 자원 확보비용과 요소비용이 올라간다. 그 결과 자원배분이 왜곡되는 현상이 오고 시장은 그러한 행위에 반드시 복수한다는 것을 경제학자들은 발견해왔다. 문제는 시장경제를 무시하는 사회주의 이념과 이들이 가진 정치세력 앞에 보수정권이 무릎을 꿇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사회주의의 트랙에 올랐다는 의견은 그래서 터져 나온다.

    “한국이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수구꼴통’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던 조중동 신문들조차도 복지를 가장 중요한 화두로 꺼내들었을 정도이니까요. 웬만해서는 이 추세를 막을 수 없다고 봅니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의 이야기다.

    무상급식은 사회주의 실험의 리트머스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경제학)는 본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DJ정부에서 MH정부를 거쳐 MB정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은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2차 대전 후의 유럽 선진국들의 발자취를 거울삼아 내다볼 때 대한민국은 앞으로 수십 년간 사회주의의 길로 갈 것이 뻔합니다. 아마도 그 결정적 기폭제(起爆劑)는 2012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일 것 같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거의 모든 여야 정치가들은 “대한민국을 지상천국으로 만들겠다”고 복지국가 건설을 목청껏 외쳐대고 있으니까요. "

    논란중인 무상급식이 이러한 사회주의 실험에 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공무원 노조, 전교조,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묘하게 좌경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어느 날 학교의 직영급식 조리종사원 등이 전교조 등과 결탁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으로 애들 밥 안 먹이고 굶겨 보십시오. 직영 다음에는 무상급식이고 무상급식 다음에는 국영급식이고 국영급식 다음에는 사회주의 국가가 오는 것입니다.”

    손범규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월, 무상급식과 관련한 포럼에서 그렇게 말했다. 현재의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발언이었다고 평가되지만 그의 목소리는 차기 권력의 유력한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좌장 유승민 당대표 후보에 의해 묵살됐다.

    유의원은 지난 달 당대표 출마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야당의 무상급식을 전면 수용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리 정치권이 단순한 포퓰리즘을 넘어 좌파의 사회주의 공세에 심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는 해석이 있다.

    민주당 내 종북세력이 사회주의 추동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주의는 대중과 소수 지배층(elites)을 대비시켜 지배층을 미워하고 대중의 이익을 위한다며 체제 변화를 추구하는 이념이죠. 그런 점에서 대중영합주의는 사회주의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현실에서 대중영합주의는 사회주의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한국경제연구원 송원근 박사의 말이다.

    이처럼 우리 안의 사회주의가 본격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과거 김대중 정권 시절 ‘젊은피’로 간택돼 민주당이라는 제도권 안에 안착한 386운동권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들은 노무현 정권을 거쳐 총선에서 승리, 다시 민주당 내 포진하고 있는 주사파 종북세력이다. 이들이 입법권을 가진 사회주의 정책세력의 주요 입안자라는 점이 제도권 밖에 있는 사회주의 세력과 차별화되는 요소다.

    유럽과는 달리 대한민국에서는 사회주의를 표방해서는 정치적 대중성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들이 독자정당이 아닌 제도권 정당을 이용해 사회주의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운동권 출신인 허현준 前 전북대 총학생회장의 고백은 현재 민주당 내 비전향 386운동권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당시 저를 포함한 운동권의 생각으로는 민주화란 사회주의 혁명으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수단이었고, 그 민주주의란 쁘띠부르주아 혁명의 단계였을 뿐입니다. 그것을 이용해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로 나아가는 것이 궁극적 목표였지요.”

    허 전 회장의 주장대로라면 민노당이나 진보신당과는 달리 민주당 내에 존재하는 비전향 사회주의 종북세력은 ‘중도’라는 이름으로 위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호남당이라는 민주당의 약점을 이용해 정책정당이라는 미끼를 걸고 지속적으로 민주당의 좌클릭을 유도하고 외부의 사회주의 종북단체들을 지지세력화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한나라당·민주당의 좌클릭 이유

    따라서 그들은 서민을 위하고 통일을 위한다지만 이들에게 민주당이란 허 전 회장의 증언대로 쁘띠부르주아 멘셰비키정당인 것이고 볼셰비키인 자신들이 접수해야 할 대상에 불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나라당에 포진하고 있는, 그것도 전향 여부를 알 수 없는 386운동권 정치인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또 그들과 한통속이 돼 ‘보수가 쪽팔린다’거나 ‘꼴통’이라고 폄하하는 의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그로부터 ‘중도실용’이라는 한국식 사회주의 이념이 이제 자리를 굳혀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포퓰리즘으로 시작했으나 결국은 사회주의로 결말을 맞고 추락한 남미국가는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좌파들이 좋아하는 말처럼‘변화’에는‘운명’이 따르기 때문이다.

    한정석 편집위원·前 KBS PD 
    kalito7@futur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