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최초 모스크바 국립 오케스트라 지휘"정열과 기술 어우러진 훌륭한 지휘" 찬사 이어져
  • "한국의 작은 거인이 `러시아 클래식의 성지(聖地)'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홀을 사로 잡았다."

    1m70cm가 채 안 되는 동양 지휘자의 신들린 듯한 손놀림과 몸동작에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모스크바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90명이 하나같이 움직였고 공연장을 찾은 현지 관객 1천300여 명은 긴장한 듯 숨을 죽였다.

    동유럽에서 주로 활동해온 한국인 지휘자 이영칠(42) 씨가 21일 저녁 7시(현지시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콘서트홀에서 모스크바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음악적 자존심이 높아 객원 지휘자를 초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동양인이 잡은 것은 이 씨가 처음이라고 오케스트라 측은 밝혔다.

    1951년 지휘자 사무일 사모수드가 소련 문화성의 의뢰로 창단한 모스크바 필은 현재 세계 5대 교향악단의 반열에 드는 명문 오케스트라로 차이코프스키 콘서트홀이 주요 공연장이다.

    이영칠은 이날 공연에서 폴 뒤카스의 '마법사의 제자',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키호테 op.35', 드보르자크의 '카니발 서곡 op.92'와 '첼로 콘체르토 B 단조 op.104' 등을 지휘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질풍노도 같은 웅장한 화음과 아이 숨결처럼 가녀린 선율이 교차하는 감동적인 연주가 끝날 때마다관객들의 우레같은 박수와 '브라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영칠은 "슈트라우스의 작품은 어렵기로 정평이 나 웬만한 지휘자들은 손을 대지 않지만 '정면 승부'를 걸기 위해 일부러 택했다"며 "지휘를 성공적으로 끝내면서 러시아 음악인들이 한국의 수준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연주에는 특히 현존 첼리스트 거장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알렉산드르 크냐제프가 솔로와 협연으로 참여해 콘서트가 한층 빛이 났다.

    이영칠을 모스크바 필에 추천해 무대에 세운 장본인이기도 한 크냐제프는 슈트라우스 교향시 연주에서 첼로 솔로를 맡고, 드보르자크 첼로 콘체르토 연주에선 협연을 펼쳤다.

    크냐제프는 지난해 불가리아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당시 이 오케스트라 객원지휘자인 이영칠을 높이 평가해 그를 모스크바 필에 소개했다.

    크냐제프는 이날 연주 뒤 "소피아 무대에서 이영칠의 창조적 재능을 곧바로 알아보고 그를 추천했었다"며 "오늘 지휘도 아주 좋았고 만족스러우며, 더구나 슈트라우스 같은 어려운 작품을 잘 소화해 내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영칠의 넘치는 에너지와 적극성이 마음에 든다며 이런 면에서 나와 잘 통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호른을 전공한 이영칠은 미국 뉴욕 주립대에서 필 마이어를 사사하고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 음악아카데미에서 지휘를 전공한 뒤 전문 지휘자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현재 체코 프라하 보헤미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사라예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객원 상임지휘자,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종신 객원 지휘자 등 유럽 10개국 50여 개 오케스트라에서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모스크바 국립 필 하모닉 예술 디렉터인 안나 베트호바는 이날 "이영칠의 지휘는 아주 훌륭했다"며 "지휘 기술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다루는 기술도 탁월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미 내년 연주 프로그램이 다 정해져 당장은 어렵지만 2012~2013년 시즌에 반드시 그를 다시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