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만 노렸던 ‘서울 재건축 무더기 지정’ 때부터 전·월세 대란문제는 ‘전세 시스템의 붕괴’에서 시작된 점 인정해야 대책 나와
  • 지난 몇 달 동안 ‘전세대란’만 떠들어대던 언론과 정부가 이제야 ‘반전세’와 ‘월세’ 대란의 고통이 더 크다는 걸 깨달은 눈치다. 하지만 ‘현실적 대안’은 아직 없다. 언론, 정부, 정치권 ‘핵심 인사’들은 ‘월세’나 ‘반전세’의 현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재건축 무더기 지정’ 때부터 시작된 전·월세 대란

    작년 10월부터 12월까지 서울과 경기 남부지역 신도시 일대의 부동산 중개업자들에게 월세 추이를 물어봤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서울에서만 10여 군데 넘는 곳에 재건축 허가가 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답했다. 최근 이들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전세는커녕 요즘은 괜찮은 월세도 50만 원 이하의 저렴한 건 찾기 어렵다’고 답했다.

    서울 용산구와 구로구 등에서 재건축 사업으로 수익을 올렸다는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어떤 이들은 '대통령 때문에 월세 급등이 시작됐다'고 현 정부를 비난하기도 하는데 사실은 대선 즈음 재건축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허가가 나고, 기존 주택에 전·월세로 살던 사람들이 내몰리면서부터 전·월세급등이 시작된 겁니다. 기존의 주택은 지은 지가 보통 2~30년이 넘은 연립주택이나 단독주택인데 거기 전·월세가 얼마였겠어요? 여기에 이주보상비 준다고 해도 몇 천만 원에 못 미치는 금액이 대부분이니 서울 시내에서는 전세를 얻기 어렵죠.”

    그는 말을 이었다. “이런 분들이 기존 전세금과 보상금에 맞는 전세를 찾으면서 저가 전세수요가 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입자들의 선택이 나뉘게 됩니다. 신용도 좋고 자금력이 되는 분들은 대출받아서 가격 오른 전세로 들어가고, 거기에 들어갈 형편이 안 되는 분들은 서울 밖으로 나가거나 아니면 월세로 살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저가 전세에 살던 분들이 월세로 들어오니 월세에 살던 서민층이나 젊은이들은 밀려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 또한 전세 세입자들처럼 둘로 나뉘게 됩니다. 전·월세 거주자의 양극화가 이렇게 시작된 거라고 봅니다.” 

    다른 부동산 중개업체의 설명도 비슷했다. 몇몇 중개업체는 서울 재건축의 영향이 수도권 전체로 확산됐다고 평가했다. 서울의 재건축 지역은 소위 ‘서민주거지’로 불리는 곳들이 많은데 이 지역 세입자들이 서울 내에서 전·월세를 찾지 못해 수도권 일대로 빠져나가면서 수요가 급증했다는 설명이었다. 이 중에서 안정적인 소득이 없던 사람들은 고시텔, 무보증 월세방 등으로 주거지를 옮기게 된다는 것이었다.

    정부 대책은 전세 보증금 대출한도 늘리는 것 뿐

    한편 정부가 내놓은 서민대책이라는 건 기껏해야 지난 11일 발표한 전세금 대출한도를 기존의 6,000만 원에서 8,000만 원으로 늘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시중 은행에 문의한 결과 개인의 직업과 재산, 신용도, 거주지역 등에 따라 한도는 제각각이라고 한다. 여기다 대출한도가 늘었다고 해도 현재 시중은행들이 대출이자를 조금씩 높이고 있는 상황이라 자칫 월세보다 많은 이자를 낼 가능성도 있다.

    월세에 대한 정부정책은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 2010년 국세청이 서민 봉급생활자들을 위해 월세를 소득공제 항목에 포함시켰지만 이는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는 평가다. 월세 소득공제의 한도는 연간 월세 40%까지의 금액 중 300만 원. 무주택 가구주에 연소득 3,000만 원 이하에 한한다. 하지만 실제 세입자들이 내는 월세의 대부분은 40~60만 원. 보증금이 높을수록 월세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러려면 보증금이 5,000만 원은 넘어야 한다.

    여기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월세 소득공제를 허용하는 집주인이 ‘극소수’라고 입을 모은다. 노후생활을 위해 ‘월세를 놓는 노년층’ 집주인이 많기는 하지만 이들의 자녀들은 부모의 소득이 드러나지 않는 점을 활용해 부모를 부양한다는 식으로 신고해 소득공제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 상황에서 ‘월세 소득공제’를 요구하면 집주인의 자녀들이 부모의 소득노출을 우려해 반대한다는 것이다.

    ‘전문 임대사업자’는 더 큰 문제다. 월세 급등이 심한 지역의 집주인은 대부분 다른 곳에 거주하며 세를 놓은 집 인근 부동산 업체에 부탁해 관리하는 ‘전문 업자’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월세 임대사업을 하면 수입이 투명하게 노출되지 않고 탈세하기가 좋아 임대사업을 하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소득공제’를 요구하는 건 ‘계약은 필요 없으니 국세청에 신고하겠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부동산 중개업체들은 전했다. 이들 ‘전문 업자’들을 필두로 다주택 소유자들이 일명 ‘반전세’ 물건 급등세도 이끌고 있으니 지금과 같은 소득공제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게 부동산 중개업체들의 설명이다.

    전·월세대란 대책, 정말 없을까?

    현실이 이럼에도 정부나 정치권, 언론은 전·월세대란 상황에 관심가지는 ‘척’만 할뿐 문제의 원인, 대응책, 시급한 현안 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몇몇 국책기관에서 미국이나 유럽시장과 우리나라를 비교한 방안을 거론하는 정도다. 하지만 지금 전·월세대란은 단순한 임대료 상승이 아니라 한국에만 있는 ‘전세 시스템’의 붕괴라는 점에서 외국과 비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정부나 정치권이 대책을 내놓기 전에 ‘전세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전세 시스템을 살릴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일단 지금 금융상황으로 보면 ‘전세 시스템’을 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앞으로도 ‘전세’로는 임대소득자들이 원하는 소득을 얻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면 방법은 나온다.

    바로 ▲월세 소득공제 제도의 현실화 ▲월세 임대사업자 제도정비 ▲월세 보증금 대출제도 신설 유도 ▲미분양 아파트의 월세전환 유도해 건설사 부실채권 회수 ▲재건축 제도 보완으로 아파트 건축 지양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은 월세 소득공제의 현실화. 서울 시내에서 거주할만한 10평 내외의 원룸이나 다세대, 단독주택의 월세는 보통 40~70만 원 선에 달한다. 여기다 난방비, 전기요금 등 공과금, 통신비 등을 합하면 가구 당 월 평균 고정 지출액은 70~100만 원 가까이에 달한다. 이를 감당할 수 있으려면 연 소득이 4,000만 원은 돼야 한다. 이런 부분들까지 고려한 소득공제가 필요하다.

    또한 ‘사업자’가 아닌 집주인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집 한 채에서 아래층이나 윗층을 세놓는 노년층에 대해서는 2가구 임대까지는 자녀 소득공제를 인정해주거나 본인에 대한 소득 과세를 면제해주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금융기관들도 생각을 전환하도록 정부 등에서 유도할 필요도 있다. 금융기관들이 전세대출을 해주는 건 ‘전세권’ 등기설정이 가능하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이와 유사한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고, 장기저리 금융이 가능하다면 금융기관들이 월세 보증금 대출상품을 내놓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외에도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월세대책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더 이상 ‘전세’로 이익을 볼 수 없고 세입자 입장에서도 '재형저축'도 없는 상황에서 주택구입은 커녕 수억 원이 넘는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는 게 불가능한 현실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지 않으면 지금의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영영 나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