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돌풍에서 지구촌의 쓰나미로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비교되는 코리언 인베이전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은 한류의 날개
  • <방민준칼럼> ‘한류 칭기스칸’ 꿈이 아니다

    ◇동아시아 돌풍에서 지구촌의 쓰나미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 몽골제국 같은 국가는 두 번 다시 등장할 수 없다. 핵과 첨단무기가 동원되는 시대에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은 바로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촌이 거미줄처럼 촘촘한 인터넷망으로 뒤덮이면서 새로운 형태의 ‘영토 확장’을 가능케 해주고 있다.

    가히 ‘지구촌적(地球村的)’이라 할 만큼 강하게 일고 있는 한류 열풍에서 인류가 경험한 적 없는 진기한 형태의 ‘문화영토’ 확장의 생생한 현장을 체험하고 있다. 한류 열풍은 일과적 유행이 아니라 도도한 시대 흐름의 양상을 띠며 그 자체로 지구촌 역사의 한 장으로 해석될 정도가 되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의 드라마와 가수들의 노래가 대만 홍콩에서 인기를 끌면서 현지 언론이 ‘한류(韓流)’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때 만해도 지금과 같은 한류 열풍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한류 문화상품을 만든 쪽이나, 받아들인 쪽이나 일과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대만에서 일기 시작한 한류 바람이 2000년대로 접어들어 중국으로 옮겨 붙고 이어 일본으로 번지고, 대상도 드라마에서 영화, 노래, 게임, 음식, 패션, 상품 등으로 확산되면서 한류는 동아시아의 특별한 ‘문화아이콘’이 되었다.

    이때만 해도 한류라는 ‘문화아이콘’이 갖는 위력을 우리 스스로 읽어내지 못했다. 동아시아의 한류 열풍만으로도 ‘문화 수출’을 국책으로 정한 정부나 이에 편승한 관련 업계는 자축의 잔을 들만큼 성공적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도 동아시아의 돌풍처럼 일어난 한류가 지구촌적 쓰나미가 되리라 내다보지 못했다. 한류 열풍을 계속 살려 확산시켜야 한다는 정책 입안자들의 사명감과 더 좋은 수익성을 좇는 관련업계의 사업의욕은 있었지만 미국, 유럽이나 이슬람권, 아프리카, 남미에까지 한류가 파고들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비교되는 코리언 인베이전

    위키디피아는 한류를 설명하는데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코리언 웨이브(Korean Wave)', '코리아 피버(Korea Fever)', '코리아너파일(Koreanophile)'이란 용어가 통용되고 최근에는 1964년 비틀즈의 미국 상륙 때 만들어진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란 용어를 차용한 ‘코리언 인베이전(Korean Invasion)’이라는 사뭇 공격적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위키디피아는 초기 중화권에서의 한류 발생에서부터, ‘겨울연가’로 일기 시작된 일본에서의 1차 한류 붐, ‘대장금’ ‘주몽’으로 대표되는 2차 한류 붐을 거쳐 동방신기와 빅뱅 등을 비롯한 한국출신 그룹의 활약으로 일본 한류 팬에 젊은이들까지 합류하는 ‘네오한류(ネオ韓流)’ 혹은 ‘신한류(新韓流)’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위키디피아가 제시하는 한류 상륙지역을 보면 ‘지구촌적 쓰나미’란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싱가폴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영어권인 미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권인 멕시코 칠레 페루 아르헨티나 브라질, 유럽권의 스페인 프랑스 영국 독일 헝가리 노르웨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이집트 케냐 가나 알제리 등 아프리카 국가들, 중동지역 이슬람권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 지구촌의 거의 전 지역을 망라하고 있다. 그린랜드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한류의 영향권에 있다는 말이다.

    ◇ 한류의 원동력은 어디서

    중앙일보의 [K-POP 인베이전] 특집(1월16일자)을 보면 세계 곳곳의 한류 현장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파리스호텔에서 열린 초대형 콘서트에서 5인조 걸그룹 ‘원더걸스’가 ‘노바디’ ‘텔미’를 불러 3000여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추게 하는가 하면, 미국 LA의 한 극장에선 ‘소시파이드(Soshified)’라고 인쇄된 티를 입은 소녀시대의 여성팬 500여명이 모여 소녀시대의 히트곡 ‘지(Gee)’를 한국말로 부르며 춤을 추었다. ‘Soshified’는 소녀시대의 약자인 ‘Soshi’와 ‘만족하다(Satisfied)'를 합친 조어라고. 12만 명에 달하는 팬 커뮤니티의 회원들은 한국어는 잘 몰라도 한국어 발음을 영어로 옮겨 적어 가사를 외울 정도로 열광적이라고 한다.

    지난달엔 남성 아이돌그룹 빅뱅의 지 드래곤 열성팬인 20대 미국여성이 무작정 한국을 찾아 지 드래곤을 만나 감격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국영 프랑스2TV는 최근 ‘세계를 향한 시선’이란 프로그램에서 소녀시대 샤이니 보아 등 한국의 대표적 아이돌 스타들을 소개했다.

    방콕에선 ‘제2의 닉쿤’을 꿈꾸는 태국의 청소년들이 한국의 댄스그룹을 흉내 내 만든 그룹 30여개가 주말마다 열띤 경연을 벌인다고 한다.

    왜 유독 한류 열풍이냐?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문화의 흐름이 왜 ‘중류(中流)’나 ‘일류(日流)’가 아닌 한류인가.

    세계가 K-POP과 우리 아이돌그룹의 댄스에 빠지는 것은 한류를 만들어낸 우리의 문화 지층(地層) 때문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노래와 춤을 사랑하는 민족성, 매사에 신나게 달려드는 신명정신, 하늘과 땅과 사람을 아우르는 천지인(天地人)사상, 온갖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독특하게 재창조하는 능력, 한글의 철학 등 이루 열거할 수 없는 역사·문화적 토양이 한류의 샘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민족의 저류에 도도히 흐르는 심층수가 바로 우리의 귀중한 보배였던 것이다.

    ◇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은 한류의 날개

    여기에 인터넷 시대의 개화와 맞물리면서 한류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으로 대표되는 쇼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지구촌을 동시간대로 촘촘히 연결해주면서 한류는 동아시아의 문화아이콘을 넘어 지구촌의 문화아이콘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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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가 지난 한해 유튜브에 등록된 한국가수의 동영상 조회수를 분석한 결과 전세계 229개국에서 7억9,357만여 건으로 나타났다. 한국가수 동영상 조회수로 본 한류열풍지도(그림)을 보면 한류가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을 능가하는 문화 영토를 차지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좋은 컨텐츠가 SNS라는 훌륭한 수송수단을 만난 결과다. 

    무력으로 광활한 영토를 차지한 칭기스칸의 후예들은 동토와 사막의 몽골을 물려받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무역의 칭기스칸’을 꿈꾸었던 김우중은 미련을 못 버린 무력한 노인이 되었다.

    한류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본다. 풍부한 문화지층에서 생성된 다양한 형태의 한류는 SNS의 날개를 타고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한류 칭기스칸’은 결코 꿈이 아니다. 

    <본사 부사장/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