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언더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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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여느 때처럼 아침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한 다음, 아침을 먹고 옷을 입고 역으로 간다. 그리고 늘 그렇듯 붐비는 전차를 타고 회사를 향한다.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아침이었다…변장한 남자가 그라인더로 뾰족하게 간 우산 끝으로, 묘한 액체가 든 비닐봉지를 콕 찌르기 전까지는....." '언더그라운드 中'

    지하철 구내에 사린가스를 살포해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옴진리교 사건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경, 도쿄 중심부를 통과하는 지하철 마로누우치선, 히비야선, 지요다 선의 총 5개의 차량에서 중추신경계를 손상시키는 치명적인 화학물질 사린이 살포된다.

    이 사건으로 12명이 사망했고 5천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불리던 일본에서 그것도 평일 출근시간 도쿄 한복판에서 화학병기를 사용한 테러사건이 일어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으며, 더욱이 불특정 다수의 일반시민이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했다는 사실은 당시 일본인은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건 이틀 후 경찰은 신흥종교 단체 옴진리교에 강제수색을 실시해 용의자들을 체포했고, 사건의 진상은 이미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족 살해사건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는 옴진리교 고단이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대형 테러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판명됐다.

    후에 옛 신도들과 사린사건에 과연했던 이들의 진술을 통해 옴진리교 교단 내의 생활과 각종 범죄 계획들이 밝혀지면서 다시 한번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1990년대 일본을 뒤흔든 옴진리교의 진실

    지난 2006년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게 최종 사형판결이 내려졌고, 끝내 체포되지 않은 두 명의 용의자는 지금도 여전히 지명수배가 내려져 있는 상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당시 미국 생활중이었고 잠시 일본에 귀국했을때 이 사건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한 잡지에 실린 피해자 가족의 인터뷰를 읽은 것을 계기로 지하철 사린사건을 다룬 책을 쓸 결심을 한다.

    그는 '언더그라운드'를 완성하기 위해 1996년1월 부터 12말까지 일년여동안 인터뷰와 취재작업을 실행한다. 하루키는 우선 신문이나 잡지상에 이름이 밝혀진 700여명의 피해자 리스트 중 신원이 파악된 140여명에게 연락을 취해 인터뷰 요청했다. 하지만 사건의 상처가 낫기 전 이미 각종 매스컴에 시달린 피해자들은 인터뷰에 응하려 하지 않았고 응한 후에도 내용변경이나 삭제 요청 등 여러 애로사항이 꼬리를 문다.

    결국 피해자의 가족, 의료관계자 등을 포함한 62명의 증언으로 이 책은 만들어졌다.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우유를 샀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 사카타 고이치(당시50세)

    책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 사린사건의 구체적인 배경, 사회적인 영향을 분석적으로 파헤치는 책이 아니다. 대신 피해자 한사람 한사람의 일상에 초점을 맞춰, 사건이 일어난 시각 전까지는 여느 때와 다를바 없었던 그날 아침 정경 속으로 읽는 이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본격적으로 사린사건을 회상하기 전까지 길고 자세히 이어지는 피해자들의 성장배경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여타 보도에서 단순히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명사화 되었던 그들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고 원래의 인격을 되살려낸다.

    거의 날것 그대로 활자화한 인터뷰 내용은 때때로 동어반복으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을 떠올리며 내볕는 한미디 한마디는 퍼즐 조각처럼 한데 모여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그린다.

    얼굴없던 존재였던 그들이 하나 둘씩 모여 만들어내는 묵직하고도 호소력 있는 울림은 하루키가 왜 전문소설분야가 아닌 인터뷰라는 낯선 형식으로 옴진리교 사건을 그려냈는지 알수 있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스로 이 책이 하루키 문학의 터닝 포인트라 할만큼 커다란 의미를 가졌다 말한다.

    아무 예고 없이 닥친 재앙에 갑자기 노출되어버린 보통사람들이 전하는 회상과 고백은 압도적인 책의 분량만큼이나 독자에게 거대한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