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각국의 기 싸움이 치열하다.

    회의의 주요 의제를 놓고 실무진이 모여 물밑에서 줄다리기하는 가운데 정상과 고위 관리들이 겉에서 `장외 설전'을 벌이는 것.

    특히 경상수지 문제와 관련해서는 서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 정상회의에서 오갈 격론을 예고했다.

    ◇獨.日.中 연합군, 美 압박에 반발

    10일 G20 준비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상회의 날짜가 다가오면서 언론을 통한 G20 주요 참가국 정상과 고위 관리들의 발언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의 발언은 정상회의의 주 관심사인 경상수지 불균형 문제에 맞춰져 있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중국, 독일, 일본 등의 반발이 거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9일 "경상수지는 각국의 경쟁력에 상응하는 결과물"이라고 강조하면서 미국이 주장하는 `경상수지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거론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같은 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재무상도 "각국의 상황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경상수지 목표제에 특정 수치까지 합의는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추이톈카이(崔天凱)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지난 5일 미국의 주장을 두고 "요점을 놓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이 한가지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은 경상수지의 국제적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G20이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압박의 강도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 일부 국가가 막대한 무역 흑자나 적자를 쌓는 상황에서는 세계 경제가 지속할 수 없다고 지적, 중국과 독일 등을 겨냥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수행한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도 경상수지 불균형을 감시하는 방안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매우 현실적이며 다각적인 접근"이라고 주장했다.

    ◇양적완화.환율 놓고 한판 대결

    이달 초 미국이 6천억달러 상당의 국채를 사들여 돈을 풀겠다는 2차 양적완화(유동성 공급) 조치를 놓고도 신흥국과 미국 간 거친 설전이 전개됐다.

    미국의 유동성 공급 조치는 달러화 가치를 낮추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흥시장국으로 자금 유입을 촉발해 이들 국가의 환율 하락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미국의 환율 절상 압박에 시달리는 중국은 매우 거칠고 노골적으로 양적완화 조치를 공격했다.

    주광야오(朱光耀) 중국 재정부 부부장은 지난 8일 "미국이 취한 2차 양적완화 정책은 주요 화폐 발행국이 짊어져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일 뿐 아니라 과도한 유동성이 신흥 국가에 몰고 올 충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과 더불어 신흥국 진영의 `좌장' 격인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지난 9일 "특정 국가(미국)가 다른 국가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국내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치를 내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하루 뒤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연준(연방준비제도.Fed)의 임무이자 곧 대통령의 임무"라면서 "(연준의 양적완화 조치가) 미국에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맞섰다.

    그는 "미국이 저성장 기조로 굳어지는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가장 나쁜 시나리오"라고 말해 미국이 양적완화 조치가 신흥국의 환율을 낮추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 애썼다.

    ◇美.中 `우군 만들기' 합종연횡 활발

    정상회의를 앞두고 우군을 만들기 위한 미국과 중국 등 `양강'의 행보도 분주하다. G20이 형식상 20개국의 합의체인 만큼 회의 결과에 자국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하려면 `내 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가이드라인과 양적완화 조치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워야 하는 미국이 가장 바쁘다.

    오바마 대통령은 서울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잇달아 방문,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 및 인도네시아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G20 회원국인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배경에는 중국과 유럽 국가들을 견제하기 위한 `세 모으기' 의도로 읽힐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를 도는 사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유럽을 찾았다.

    후 주석은 역시 G20 회원국인 프랑스를 방문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포르투갈을 방문해 카바코 실바 대통령을 만났다.

    미국과 중국 두 정상의 잇따른 G20 회원국 방문은 환율과 경상수지 등 양국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는 정상회의 의제가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하려는 주도권 확보 경쟁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G20 준비위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뿐 아니라 자국 내 정치적 입지 등을 고려한 행보로 이해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