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러 곳간'을 더 열기로 한 미국의 경기 부양책이 신흥국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6천억달러에 이르는 2차 양적 완화(유동성 공급) 계획을 발표하자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며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푸는 달러화가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에 흘러들어 자산가격에 거품이 끼게 하고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이들 국가의 물가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에 이들 국가는 더욱 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는 최근 기준금리를 인상했거나 올릴 채비를 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다.

    ◇`달러 살포'에 인플레 우려 확산

    5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뉴욕 상업거래소(NYMEX)에서 4일(현지시간) 거래된 1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86.49달러로 전날보다 1.80달러(2.13%) 오르며 지난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투자은행(IB)인 JP모건과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는 국제 유가가 내년 중에 배럴당 100달러대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 금값은 온스당 1,392.50달러로 43.95달러(3.26%) 급등해 1,400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동(3.44%)과 알루미늄(1.71%), 밀(3.40%), 옥수수(1.55%) 등 다른 원자재 가격도 급등했다.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시중에 달러화가 넘칠 것으로 예상되고 이에 따라 달러화 가치가 주요국 통화에 대해 일제히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달러 자금이 미국 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제 원자재 시장과 신흥국 증시에도 유입돼 자산가격과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추가 양적 완화가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적인 물가 하락 속에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는 것을 뜻하는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미국으로서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다.

    특히 선진국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신흥국으로서는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등과 외국인 자금의 대거 유입이 달갑지 않은 실정이다.

    연준 의장을 역임한 폴 볼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은 이날 서울에서 열린 세계경제연구원 초청 강연 및 대담에서 연준의 통화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미국은 이미 저금리 상태여서 양적 완화가 정작 자국 경제에 대한 경기부양 효과는 제한적이고 인플레 기대심리만 자극하는 데 그칠 것"이라며 "오히려 다른 국가들이 (미국 유동성 팽창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흥국 `긴장'..금리 인상.자본 유입 규제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에 대해 신흥국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샤빈(夏斌) 중국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은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이라고 비판했고 태국은 이웃나라들과 달러 자금의 유입에 대해 공동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빠른 경기 회복 속에 물가 불안으로 골치를 앓는 신흥국으로서는 미국발 대형 변수가 생긴 셈이다.

    중국의 경우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9월 3.6%로 2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10월에는 4%를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기준금리를 지난달 0.25%포인트에 이어 추가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호주와 인도는 지난 2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10월 소비자물가가 한국은행의 관리 목표치(3.0±1.0%)를 넘는 4.1% 급등해 오는 16일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커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은 4일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미국처럼 추가 양적 완화 정책은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물가 안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의 과도한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외국인 채권투자에 대한 과세 제도 부활을 검토하는 등 아시아 국가들은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자본 유출입 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경기 회복이 더딘 선진국은 문제가 안 되겠지만, 회복 속도가 빠른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경제국은 자산 가격과 인플레이션 압력 상승이 부담되기 때문에 정책적 대응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