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무기는 불량 덩어리…기강해이 절정, 각종 범죄까지군사 커뮤니티 “軍과 산하 기관에 숨은 ‘적’ 찾아야” 한 목소리
  • ‘총체적 부실’ 군대

    국정감사가 시작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유독 ‘얻어터지는 기관’이 있다. 바로 국방부다. 언론은 물론 의원들도 국방부 감사에 전례 없는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3월 천안함 사태와 그 후 드러난 일련의 무기 불량 사건, 범죄 등이 그 이유다.

    집중적인 관심 탓인지 드러난 국방부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명품’이라던 육군 K계열 무기들은 여기저기서 고장과 사고가 잇달아 일어났다. 인명사고까지 있었다. 해군은 서해교전의 희생자를 기린다며 만든 신형 미사일 고속함이 ‘엉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 장병들에게 보급된 전투화는 말도 안 되는 규격 변경으로 밑창이 떨어지고 물이 샜다. 마지막까지 문제가 없는 듯 했던 K-11 복합소총도 결국 문제가 드러났다. 20mm 공중폭발탄을 쏘면 5.56mm 총탄도 함께 나가는 ‘신기한 무기’였던 것이다. 이 정도가 되니 국민들은 이제 신형 무기에서 어떤 불량이 나타나도 놀라지 않을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런 문제에 대해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린 경우가 드물다. K1 전차의 포신 파열 사건은 9건 일어났으나 1건에 대해서만 책임추궁이 있었다. 신형 전투화의 불량 문제 또한 규격이 변경되고 공정한 시험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관계자 5명을 징계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K-21 신형 보병전투차는 인명사고까지 발생했음에도 국방부는 물론 생산업체에도 책임진 사람이 없다.  

    무기만이 아니라 사람도 문제였다. 상급자인 여성 과장에게 “너 몇 살이야? 이런 XXX없는 X”이라고 말한 초급장교, “너, 오늘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는 대대장은 오히려 양반이다. 성범죄에 폭행, 사기 등 온갖 범죄행위가 군 내부에서 매년 수백 건 이상 발생하고 있었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도 지난 5년 간 210건이나 됐다.

    이런 군의 총체적 부실에 대해 일부 언론은 현 정부의 ‘면제 내각’만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군이 이렇게 변하리라는 건 이미 6~7년 전부터 예견돼 오던 일이었다.

    ‘전투태세 확립’ → ‘안전제일’

    우리 군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김정일과의 6.15공동선언 때부터다. 처음에는 6.15남북공동선언의 의미 등에 대해서만 강조되던 것이 2003년부터는 ‘남북상호비방금지합의’라는 명목으로 대북심리전 중단과 함께 스피커를 철거했다. 북한을 ‘또 하나의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자들이 국방부 고위직에 ‘낙하산’으로 내려오면서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국방개혁 2020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정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력 강화도 그랬다. 군 전력강화에 시급한 NCW(네트워크 중심전쟁) 관련 시스템, 정보수집 장비, 기존 공군력을 강화시켜줄 공중급유기, 해군의 활동영역을 넓혀줄 군수지원함 등보다는 겉으로 보기에 멋있고 위력적인 전투장비가 더욱 시급한 과제처럼 다뤄졌다.

    지원장비는 ‘대충 끼워맞추려는 시도’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4년 조기경보통제기 사업이었다. 사업 검토 당시에는 브라질制 중형 항공기 G550에다 이스라엘制 조기경보레이더를 탑재한 기종이 유력한 후보에 올랐다. 이 기종은 해안경계 또는 중남미 마약 밀매범 추적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결국엔 경쟁에서 탈락했지만 당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반면 미국제 무기들에 대한 폄하는 줄기차게 이뤄졌다. F-15K 슬램 이글은 ‘종이비행기’가 됐고, 대공방어 시스템인 이지스 구축함과 감시체계인 조기경보통제기는 주변국에 위협을 주는 MD용 공격무기로 둔갑했다. 이런 문제들이 무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에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이때 사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더 큰 문제도 있었다. 바로 군 기강과 정신전력 문제였다. 지난 정권 당시 초급 지휘관이었던 複數의 장교들은 “어찌 된 게 날이 갈수록 기강이 흐트러진다”며 걱정했다. 지휘관들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던 건 병사들의 군기가 아니라 부대의 지휘방침이었다. 예전에는 ‘전투태세 확립’이었던 부대 지휘방침이 언제부턴가 건설현장 구호 같은 ‘안전제일’로 변했다는 것이다.

    두리 뭉실 나긋나긋한 군인↑, 용맹한 군인↓

    실제 90년대 말 육군 수색대가 천리행군을 폐지한 것부터 지난 정권에서 실탄사격훈련이 줄어든 것, 행군 거리가 짧아진 것, 위수지역이 유명무실하게 된 것 등이 모두 병사들의 자살 또는 사고를 우려한 지휘부의 방침이었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지휘관의 진급에 전투태세확립 보다는 무사고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병사들 간의 지시를 없앤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병사들 간에 지시를 할 수 있게 되면 인권유린이 일어난다는 게 군 최고 지휘부의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내무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하려 만들었다는 ‘웃음벨(내무반에 설치한 벨을 누르면 무조건 일정 시간 웃어야 한다는 규정이 시험적으로 적용된 바 있다)’이라는 것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군은 ‘유사시 국가와 국민을 지킬 준비를 하는 곳’이 아니라 ‘국민들의 귀한 자제분들이 무사히, 안전하게 지내다 가는 곳’으로 변해갔다. 오죽하면 현역으로 입대한 병사들이 “선배님, 요즘 군대 정말 편해요”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할까.

    병사들은 2년 남짓 근무하다 전역하니 그나마 낫다. 군 생활이 곧 직업인 장교들의 경우에는 심각한 상황이다.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정치적 행동’을 잘 하는 장교들이 진급도 빠르고 주요 지위를 차지했다. 반면 군의 임무는 국가수호이자 전쟁에서의 승리라고 생각하는 장교들은 대부분 중도에서 군복을 벗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영관급 장교들은 “지금 우리나라 군대에서는 군인처럼 행동하면 나갈 각오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말을 내뱉는다.

    안보 커뮤니티 회원들 “군 내부의 ‘적’ 찾아야”

    이런 분위기 탓인지 ‘지난 정권이 군을 입맛대로 뜯어고치려 노력할 때 당시 청와대와 권력층에 줄을 대던 장교들은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고, 군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힘쓴 장교들은 오히려 지난 정권에 부역한 자로 낙인찍혀 한직을 전전하거나 전역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이 소문은 민간으로까지 퍼지고 있다.

    이런 소식이 들려오자, 지난 정권에서 군을 지지하며, 안보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발 벗고 나서 여론몰이를 했던 안보 커뮤니티 회원들조차 최근에는 “군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지만, 이건 어디서부터 비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총체적 부실”이라며 입을 닫고 있다. 유명 안보커뮤니티의 대표를 지냈던 K씨는 “이런 문제를 보면 군에 아직도 내부의 ‘적’들이 꽤 있다는 반증”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보 커뮤니티, 민간 군사연구가는 물론 일반 국민들조차도 지금 군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군대로 나라를 지킨다고”라며 걱정한다. 현 정부가 안보 문제에 관해 앞으로 뭘 해도 못 믿겠다는 눈치다. 군과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다시 신뢰를 얻고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군대'로 변신시키기 위해서는 군 내부 개혁과 함께 대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경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