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등 사건 뒤엔 언제나 설(說)-설(說)-설(說)유언비어 하나가 나라 전체 뒤흔들며 사회혼란 조장"오도된 공포와 분노로 촉발된 사회운동 정당할까?"
  • 한국 사회가 허무맹랑한 유언비어와 음모론에 춤추고 있다.

    전에 없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데도 유언비어가 줄기는커녕 그 영향력은 오히려 커지는 이상한 상황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최진실 자살, 신종플루 괴담, 천안함 사태 등 사회를 뒤흔든 사건 뒤에는 언제나 유언비어가 있었다.

    유언비어는 나중에 거짓임이 밝혀지고 나서도 대중의 뇌리에 남아 소통과 통합을 방해하고 개인과 국가의 공신력을 훼손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응할 뾰족한 수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는 것이 실정이다.

    ◇ 촛불시위 루머가 기폭제 역할

    2008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당시 전국적으로 광우병과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신뢰 있는 정보인양 유통됐다.

    당시에는 "광우병은 수돗물이나 공기로도 전염된다", "정부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했다"는 등 상식 수준을 크게 벗어나는 루머도 널리 퍼져 나갔다.

    "한국인의 유전자형은 인간광우병 발생에 취약하다" 또는 "소를 이용해 만드는 화장품, 생리대, 기저귀 등 600가지 제품을 사용해도 광우병에 전염된다"는 등 위험성이 극도로 과장된 주장은 인터넷 여론몰이를 타고 더 빨리 퍼졌다.

    그러나 정부는 정확한 과학적 증거나 위험치를 알려주는 대신 '위험이 없다' 또는 '안전하다'는 답변으로 일관했고 그럴수록 괴담은 더욱 확대 재생산됐다.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주부 민지영(41)씨는 "그때는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뭔가에 홀린 듯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믿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괴담 수준의 이야기였는데 광우병에 대한 공포 때문에 다들 진위를 따져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언비어가 판치는 가운데 촛불집회는 3개월간 지속됐다.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긍정적 평가와는 별도로 매일같이 시위대와 경찰 간의 극렬한 물리적 충돌이 빚어져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정치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2008년도 촛불시위는 오도된 공포와 분노에 의해 촉발된 사회운동이 과연 정당하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말했다.

    ◇ 루머가 개인.기업.국가 숨통 옥좨

    이후에도 유언비어는 각종 이슈를 타고 전파되면서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탤런트 안재환씨의 자살 이후 자금난을 겪던 안씨에게 사채를 빌려줬다는 괴담에 시달린 최진실씨는 괴담 유포자를 잡아달라고 호소하다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종플루가 확산하자 '백신접종을 통해 신종플루에 감염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 접종 대기자들이 혼란에 휩싸였고, 천안함이 침몰하자 '천안함이 미군 핵 잠수함과 충돌했다'는 등 갖가지 황당한 유언비어가 급속도로 번지기도 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유언비어가 사회 혼란을 조장하거나 키우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지만, 사태의 진상을 정리하는 작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계에서도 인터넷 메신저를 타고 각종 루머가 돌면서 대기업들까지 자금 악화에 시달리는 등 유언비어에 의한 피해가 극심하다.

    파리바게뜨가 특정종교에 인수됐다는 루머에 시달려온 식품전문그룹 SPC의 이준무 홍보팀장은 "아무리 설득해도 2000년부터 시작된 소문이 없어지지 않았다"며 "인터넷을 뒤져 항의 메일을 보내고 종교 단체를 찾아가 설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회사가 치러야 할 비용은 너무 크다"고 말했다.

    ◇ "루머 줄여야 사회적 낭비도 준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낭비를 줄이려면 유언비어에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언비어를 그대로 놔두다가는 사회 전체적으로 '신뢰'라는 자본이 약화되면서 국민은 정부의 말을 믿지 못하고, 정부도 그 불신 때문에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구성원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면 어떻게 사회적 합의나 양보를 이룰 수 있겠느냐"며 "신뢰가 깨진 사회는 발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아주 민감해서 뜬소문에 쉽게 휩쓸린다"며 "루머가 국가 중대사나 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는 일이 지속된다면 미래가 암울하다"고 말했다.

    더욱 속수무책인 것은 유언비어를 막을 마땅한 방법이 딱히 없다는 데 있다.

    오히려 각종 미디어의 등장은 유언비어 유포를 돕는 형국이다.

    노기영 한림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콘텐츠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어 사실 여부를 검증할 시간이 없다"며 "전달 과정에서 불순한 목적이 개입되면 피해를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유언비어가 영향력을 얻는 현상을 근본적으로 진단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 교수는 "외국에서는 유언비어가 주류 언론 등 공론의 영역에서는 심각하게 취급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유언비어 하나가 나라 전체를 뒤흔들면서 극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진지한 대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루머를 쉽게 믿고 정부와 전문가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역사적으로 기득권층이 권리만 누리고 책임을 지지 않아 공적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사회의 불안정성을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