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 설명한 ‘음란물 백화점’ 웹하드-P2P업체만 정부 인증 제도를 이용하는 게 아니다. 이들은 다른 ‘벤처’들이 하는 ‘불법사업’을 이미 거친 끝에 웹하드-P2P 사업에 정착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자칭 벤처기업’들 중 다수가 다양한 불법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이면서도 정부 인증제 뒤에 숨어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벤처기업’인양 대접받는 경우가 많다. 

    미팅알선, 악성코드, 개인정보유출 

    1998년 경 나라 전체가 IT 붐에 빠져 있을 때는 ‘인터넷 기반 기업’ 모두가 ‘벤처’라고 불렸다. 당시에는 웹 기반 메일 서비스, 커뮤니티 환경제공 등 웹 서비스 업체들도 모두 ‘엄청난 잠재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인정받았고, 여기에 솔루션 기술까지 있으면 수십수백 배의 투자를 받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심지어 ‘찜질방 벤처기업’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 ‘벤처’의 ‘모럴 헤저드’가 문제로 부각되고, 그들의 서비스가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예상과는 달리 크지 않다는 게 밝혀지면서 ‘벤처’의 거품도 꺼져갔다. 투자자와 일반인들 또한 ‘벤처’를 더 이상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기지 않게 됐다. IT 업계는 투자자금의 부족, 평범한 저급인력은 많지만 고급인력은 부족한, IT산업 특유의 인력난 등으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그 중심이 옮겨갔다.

    이런 변화에서도 살아남은 ‘벤처’들이 있었다. 그들 중 ‘양지’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은 우수한 기술을 내세워 우리나라 시장은 물론 세계 유수 업체들과도 당당히 경쟁하는 ‘기술중심 혁신기업’이었다. 반면 ‘음지’에서 활동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았는데 이들 다수는 ‘불법사업’을 자신들의 주력 사업으로 삼았다. 

    이 같은 ‘음지’에서 활동하는 ‘벤처’를 운영하던 이들에 따르면, 미팅 알선, 무료 백신프로그램을 빙자한 악성코드, 악성코드 업체와의 제휴를 통한 ‘툴바(Toolbar)’ 사업, 개인정보수집 및 판매 등이 주력 사업이라고 한다. 

    미팅 알선 사이트는 겉으로는 건전한 남녀 간의 만남, 동호회 결성 등을 도와주는 커뮤니티지만 그 실상은 성매매와 각종 일탈을 부추기면서 그 알선의 대가로 돈을 챙기는 것이었다. 이런 사이트는 성매매나 이성을 유혹하려는 의도를 가진 남성들을 타깃으로 삼는다. 이들은 남성이 유료 결제를 하기 전에는 마치 수많은 매력적인 여성들이 남성을 유혹하려는 것처럼 해놓지만 막상 결제를 하고 나면 여성이 거의 없는 방식으로 남성들의 주머니를 턴다. 여기다 한 번 결제를 하고 나면 자동으로 결제가 연장되는 사이트도 많다. 탈퇴하는 절차가 까다로워 피해자는 계속 늘고 있다. 

    무료 백신프로그램을 빙자한 악성코드의 경우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무료 백신프로그램을 설치할까요’라는 안내창을 띄운 후 ‘예’를 누르면 자동적으로 프로그램을 설치, 멀쩡한 파일을 마치 바이러스나 악성코드처럼 위장시킨 뒤 ‘치료하시려면 유료 결제하세요’라고 해 사람들의 주머니를 턴다. 좀 더 악랄한 업체들은 이렇게 유료결제를 한 뒤 매달 자동적으로 결제하는 것에 동의한 것처럼 위장해 수익을 올린다. 결제 금액이 1인당 보통 2~3000원에 불과하기에 피해자는 본인들이 피해를 입는지도 모를 정도다. 하지만 이런 일이 수천수만 건이 넘기에 업체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월 평균 수억 원에 이른다. 

    무료백신프로그램이나 악성코드 업체와 연계해 활동하는 ‘툴바(Toolbar)’ 업체도 있다. 이 업체들은 스스로를 ‘제휴 마케팅 업체’라 주장한다. 동영상 재생 프로그램이나 ‘자칭 무료백신’ 프로그램을 설치할 경우 귀찮다는 이유로 모두 ‘예’라고 대답하면 이런 ‘툴바’ 프로그램도 자동으로 설치된다. 설치된 ‘툴바’는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특정 사이트에 접속하려고 할 때마다 ‘추천 검색’이라는 말을 빙자해 윈도우 창 왼쪽에 나타난다. 

    호기심에 이런 ‘추천 검색’을 누르거나 해당 사이트에서 물품을 구매하게 되면 그 액수의 일부를 ‘툴바’ 업체가 받아 챙긴다. 이런 것을 통해 챙기는 금액이 높아지자 최근에는 대형 오픈마켓이나 포털, 유명 백신업체까지도 이 같은 ‘툴바’ 사업에 진출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툴바’ 사업은 사용자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임에도 국내에서는 법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아무런 제재 없이 활동한다. 

    개인정보수집 및 판매 사업은 사용자가 그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한다. 사용자들이 회원가입 때 기입하는 각종 개인정보를 건당 300~3000원까지 판매한다. 이렇게 판매되는 개인정보는 보험, 자동차, 대출, 금융 등의 각종 영업조직에 판매되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060업체, 스팸문자 업체 등에도 제공된다고 한다. 이는 명백한 불법임에도 이런 업체들은 현재 ‘벤처’ 기업을 자처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무늬만 벤처’들은 또한 탈세를 위해 허위 영수증 발급 업체를 이용하거나 유령회사를 차려 매출을 축소하거나 배당금을 매달 지급하거나 도입한 장비금액을 부풀려 수익을 빼돌린다. 또한 실제 소유주를 이사로 선임, 그에게 법인카드를 지급하는 것도 관례다. 

    이런 것 이외에도 해외 복권 판매 대행을 빙자해 각종 불법을 저지른 업체, 불법 도박 사이트와 포르노 사이트를 실제 운영해주는 업체, 사기분양에 끼어든 업체들도 적발 당시 ‘벤처기업’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늬만 벤처’의 또 다른 문제, 노동착취 

    이런 ‘무늬만 벤처’에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노동 착취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노동착취’라는 말이 맞느냐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존재한다. 대졸 신입사원임에도 입사와 동시에 개발에 투입되고, 그럼에도 100~150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하루 12시간 일하는 곳이 있다는 걸 아는가. 그런 곳이 바로 이런 ‘무늬만 벤처’들인 경우가 많다. 

    웹하드-P2P업체는 물론 온갖 불법사업을 영위하는 ‘무늬만 벤처’들의 경우 해당 직원들 또한 상당한 돈을 받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런 업체들일수록 직원들의 이직율이 높고 충성도가 낮다. 이유는 간단하다. 업주들 다수가 사람 소중한 줄 모르기 때문이다. 

    ‘무늬만 벤처’를 운영하는 업주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들은 “누가 지한테 월급 주는지 모르나, 어디 감히 대들어” “그런 것들 나가도 아무 문제없어. 다른 애들 뽑아 쓰면 돼” “그 애(명의사장) 잡혀 들어가면 잠깐은 힘들겠지만 다른 애 뽑으면 돼. 그 친구한테는 용돈 좀 주고.” 등과 같은 말을 쉽게 내뱉는다. ‘사업의 성공은 사람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업가들과는 달리 이들에게 사업은 오직 ‘돈’일 뿐이다. 사람은 사업의 수단 그것도 잠깐 쓰고 버리는 수준의 ‘소모품’에 불과하다. 

    때문에 이런 곳에서 일한 IT 기술자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없고, 나중에 독립해 유사한 업체를 차리려는 계획을 많이 갖고 있다. 기술개발기업은 국내 산업구조 상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기술개발보다는 불법·탈법 사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무늬만 벤처’ 사라지지 않는 이유  

    이처럼 IT벤처를 가장한 사기업체들이 꾸준히 나타나고, 그들이 ‘벤처기업’이니 ‘기술혁신기업’이니 하는 정부 관련 인증을 받으려 애를 쓰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업체 설립자의 개인적인 도덕성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런 ‘정부 인증’ 사업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탓에 있다고 ‘불법 벤처기업’ 운영자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 관련 업계에서는 ‘이노비즈나 벤처인증 받고 싶으면, 컨설팅 업체에 500만 원만 주면 알아서 모든 걸 다 해준다’고 입을 모은다.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정부 인증제 도입을 도와준다는 ‘자칭 컨설팅 업체들’을 무수히 찾을 수 있다. 

    이들은 과거 ‘IT 붐’ 당시 사업계획서 작성대행, 심사관련 서류작성 대행 등 ‘대행 서비스’만 해주면서 돈을 받아 챙겼던 업체들로 경영 컨설팅 능력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곳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돈만 주면 정부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인증제 관리가 소홀하다는 반증이다. 

    여기다 정부자금을 지원하고 대출하는 각종 기금의 경우에도 현장 실사나 사업 아이템의 현실성 등을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되질 않기에 업체가 제출한 서류로만 모든 걸 평가하려 하기 때문에 서류작업에 능한 ‘자칭 컨설팅 업체’들이 제출한 ‘사기 벤처’들에게도 정부 인증을 쉽게 해준다는 지적도 많다(최근 1인 창조기업에 대해서도 유사한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사기 벤처 기업’들은 왜 돈까지 들여가며 ‘정부 인증’을 받으려는 걸까. 물론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 인증’을 받으면 다른 투자자나 개인들로부터 투자를 받기도 쉽고 사법당국의 의심도 피하기 좋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바로 각종 정부혜택이다. 

    정부로부터 ‘벤처 기업’ 인증을 받으면 스톡옵션 행사 시 이익 연간 3000만 원까지 공제, 창업 후 2년 이내 법인세와 소득세 50% 감면, 벤처 인증 후 2년 동안 등록세, 취득세 면제, 창업 후 5년 동안 재산세, 종합토지세 50% 감면, 정책자금 지원 우대, 수출입 금융자금, 시설자금 융자 우대 등의 온갖 혜택을 받게 된다. 

    즉 ‘무늬만 벤처’라도 ‘벤처 인증’ 한 번 받으면 아무리 불법적인 사업을 한다 하더라도 법망이나 국세청의 조사가 있기 전까지는 정부의 각종 우대정책 혜택을 받으면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인증을 받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