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탄에 박살이 난 왼쪽 차창 너머에 한강이 보였다.
    “한강다리를 건너 조금만 가면 청와대야!”
    누군가 속삭였다.
    “그래, 꼭 가서 따져야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 뒤 서울로 향하면서 벌써 한차례 전투 아닌 전투를 벌였다. 인천에서였다.
    두 번째 버스를 탈취해 겨우 서울에 다다른 지금, 눈앞에는 철벽같은 바리게이트와 수많은 총구들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었다.
    영등포구 대방동 유한양행 앞이었다.
    총알은 연신 이들을 향해 우박처럼 쏟아졌다.
    “개죽음 당하느니 차라리 자폭하자!”
    대답은 없었지만 모두들 소총을 스르르 내렸다. 그리고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이 버스 바닥을 굴렀다.
    “쾅!”
    그것이 끝이었다. 버스에서 발견된 시계는 2시 15분에 멈춰서 있었다.
    1971년 8월 23일 오후 2시15분. 실미도 부대로 알려진 684부대원들은 자폭으로 사연 많은 생을 마감했다.

    지난 2003년 강우석 감독의 영화 ‘실미도’의 소재가 된 실미도 사건은 1968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 1월 북한의 124군 부대의 청와대 습격 기도(1.21사태)에 자극을 받은 군은 육해공군별로 북파 특수부대를 조직한다. 실미도부대 역시 이 해 4월 같은 동기로 공군에 의해 창설됐다.
    당시 실미도는 인천광역시 중구 용유동에 딸린 무인도였다.
    실미도부대원들은 이 섬에서 혹독한 훈련을 쌓으며 인간병기로 만들어졌다. 3년 4개월 동안 출동만을 기다리던 이들은 1970년대 초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차츰 불필요하고 거북한 존재가 됐다.
    당시 정부가 이들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청와대에 가서 따지겠다’며 1971년 8월 23일 섬을 탈출, 서울로 향하다 자폭한다. 수류탄 자폭에도 살아남았던 4명은 1972년 3월 10일 사형에 처해졌다.

  • ▲ 실미도부대원들의 시신이 보관된 00부대 컨테이너 막사 ⓒ 장재균 기자 제공
    ▲ 실미도부대원들의 시신이 보관된 00부대 컨테이너 막사 ⓒ 장재균 기자 제공

    30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 당시 자폭으로 생을 마감한 실미도 부대원들이 아직 냉동상태로 보관되어 영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의 시신이 불편하게 누워있는 곳은 경기도 송추 인근의 육군 00부대. 이 부대는 인근 군부대의 사망자를 잠시 안치하는 임시 영안소를 운영하는 부대로 사망한 실미도 부대원들의 시신은 이곳에 본의 아닌 ‘장기 투숙객’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왜 화장이나 묘지도 쓰지 못한 채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지난 2005년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는 실미도사건의 진상 재조사와 함께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 가매장되었던 실미도 부대원들의 시신을 발굴했다.
    시신 발굴은 증언에 따라 경기도 파주군 용미리며 서울 중랑구 상봉동 등에서 이뤄졌고, 발굴된 시신들은 00부대로 옮겨졌다.
    이들 시신 중에서 DNA검사 등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부대원은 19명. 나머지 8명은 아직 신원조차 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과거사위는 2008년 11월 임무를 마치고 해체됐다.
    한 군 관계자는 “유족들은 시신을 발굴할 때까지 가족이 실미도부대원이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신분이 확인된 시신이라도 유족과 군 당국의 입장이 확연히 엇갈렸다.
    군번도 없고 영장도 없이 소집된  실미도부대원들의 신분을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첨예한 대립 안건이었다.
    이 같은 공방이 이어지면서 실미도부대원들은 꼼짝없이 00부대의 컨테이너 냉동막사에 머물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김인겸)는 실미도 부대원이었던 김모씨의 유족 등 2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유족에게 2억 53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유족들은 “사건이 발생한 지 35년이 지나도록 사망했다는 사실조차 통보받지 못했다”면서  6억 7600여만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바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는 부대원이 사망한 지 10년이 지나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 소멸했다고 주장하지만 34년이 지나도록 실미도 부대의 진상을 밝히지 않고 사망사실조차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사법부가 유족들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멀지않은 장래에 이들은 컨테이너 막사를 떠나 몸을 누일 곳을 찾을 전망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 잠들지 못한 세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