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석산은 여러 갈래의 지맥이 이리저리 갈라져 있어 방향을 잃기가 쉬웠다. 달이 구름 위에 있어 두터운 구름이 비를 뿌리면서 지나가고 나면, 구름층이 엷어지면서 어스름 달밤처럼 앞이 훤히 내다보였다. 그러나 별은 보이지 않아 동서남북을 구별할 수는 없었다.

    계곡을 내려가다가 굵고 짧은 독사를 밟을 뻔 하기도 했다. 그 계곡을 내려가니 큰 마을이 나타났다. 38선에 있는 어떤 마을이라 짐작했다. 방향을 전혀 알 수가 없어 마을 사람에게 길을 물어야 겠는데, 잘못하면 붙들린다. 생각 끝에 변두리에 있는 집을 골라서 조심조심 접근했다. 미운개가 짖어댔다.

     

    ◆ 기적같은 우연. "형님, 여기가 38선이 아니라 양합입니까?"

    헴. 헴. 헴. 헛기침을 세번 한뒤 사랑방 창문에 대고 “주인장 계십니까? 길 가는 손인데 말씀 좀 묻겠습니다” 하였더니, 개 짖는 소리에 잠이 깬 주인이 문을 닫은 채 방안에서 “뉘십니까?”하고 물었다. “지나가는 손인데 길을 좀 물으러 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어디에 사시는 분이신데요?”하고 그가 다시 물었다. "예, 금천군 우봉면 우봉리에 사는 사람입니다.” 나는 말을 끝내면서 아차 실수했구나 싶었다. 진짜 고향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것이다.

    붙잡히는 것이 아닐까 초긴장을 했다. 그러나 정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방문이 열리면서 “아, 그렇습니까. 내가 거기 살다가 여기로 이사온 사람입니다. 나는 평창 이씨인데, 그럼 댁도 평창이씨 입니까? 나보다 항렬이 하나 위신 이중식 어르신네를 아십니까?” 어렸을 때 양합(兩合) 형님이라는 분이 우리 동네에 몇번 찾아오셔서 뵌 일이 있는데 바로 그 형님인것 같았다.

    “아, 형님. 그 어른이 저의 백부님 이십니다. 형님, 여기가 38선이 아니라 양합입니까?” 했더니, "그럼 여기가 양합이지. 자네가 원끼미 아저씨의 아들이란 말이지. 어서 신 벗고 들어오게나”하였다. 세상에 이런 기적같은 우연이 있을까.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우연이 연극이나 영화가 아닌 현실의 장면으로 펼쳐진 것이다. 양합마을은 제석산 동쪽에 있는 큰 마을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제석산에서 남으로 간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잘못잡아 동으로 온 것이었다.

    나는 친척형님에게 “형님, 아버님으로부터 형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아버님이 걸어서 개성 가실 때면 양합 형님의 집에 꼭 들르셔서 신세를 지신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고 했다. 친척형님은 나를 극진히 대해주셨다. 나는 지금 38선 이남으로 탈출중이라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친척형님은 걱정하시면서 양합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말씀해 주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금천에서 악질 반동분자가 탈출하여 38선 쪽으로 가고 있다면서 이를 체포하기 위해 내무서·38보안대·민청맹원들이 동원되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양합과 원당(元堂) 사이의 신작로 옆 움막에서 지키던 보안대원과 민청맹원들은 움막에 비가 많이 새서 옷이 흠뻑 젖어 춥다면서 옷을 말리기 위해 모두 어젯밤 11시 경양합으로 철수했고, 날이 밝아야 움막수리를 한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친척형님은 그들과 이야기 하다가 밤 12시경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며, 지금 그 중요한 초소는 텅 비어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씀하셨다.

    여기 양합에서 지금부터 달려가면 날이 밝기 전에 원당까지 갈 수 있고, 원당 오른쪽에 있는 제석산으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산줄기를 타고 나가면 38선 부근에 도달 할 수 있을거라고 했다. 친척 형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일러주신 대로 큰길로 나가서 원당 쪽을 향해 장거리 육상선수처럼 달렸다.

     

    ◆ '마늘 서리'에 민청맹원에 적발..."거기 서라"

    원당에 도착하니 2~3백미터 앞을 내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날이 훤하게 밝아왔다. 오른편에는 제석산이 솟아 있고,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방향을 오른쪽으로 꺾어 산을 향해 달리다 보니 길옆에 마늘밭이 있었다. 그저께 점심때부터 굶어 마늘이라도 좋으니 요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늘을 대여섯 뿌리 캤다. 그 순간 일찍 일어나 마당에 나온 마을 사람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 사람은 어디론가 황급히 뛰어갔으며, 나도 마늘을 호주머니에 넣고 산으로 달려갔다.

    내가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보고 “거기 서라”는 민청맹원들의 고함이었다. 북조선에는 14세부터 30세까지의 모든 젊은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북조선민주청년 동맹(民靑)에 가입되어 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빨리 산으로 올라갔다. 그렇지만 여섯끼니를 굶고 옷은 무겁게 젖어 있었다. 그런 상태로 양합에서 원당까지 뛰어왔으니 지칠대로 지쳐서 그들만큼 빠를 수가 없었다. 양자간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산은 경사가 가팔랐다. 이러다가는 잡히고 만다. 나는 갑자기 몸을 뒤로 돌려 축구공만한 돌덩이를 머리 위까지 치켜들고 밑으로 내던졌다. 돌덩이는 소리를 내며 굴러 내려갔다. 밑에 있다가 머리나 가슴을 맞으면 죽는다. 돌덩이가 많아서 나에게는 참 좋았다. 그들은 추격을 포기했다.

    한 시간쯤 산을 올라가니 양합내무서의 사이렌이 열 번 울렸다. 원당민청맹원들의 보고를 받고 나를 잡으려 비상을 거는 모양이었다. 나는 사이렌 소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어떻게 하면 최후의 장벽인 38선을 성공적으로 돌파하느냐를 궁리하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 꼭대기에 올라선 나는 길 옆에 숨어서 38선을 왕래하는 남북교역암거래 장사꾼을 기다렸다. 그들은 석유 초롱이나 고무신 같은 것을 짊어지고 남북을 왕래하고 있었다. 38선의 지리나, 보안대·소련군·민청맹원들의 배치에 대해서도 박사들이었다.

    네 시간쯤 기다리니 과연 장사꾼 일행이 짐짝을 걸머지고 지팡이를 짚고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지나간 다음 약 50미터 뒤에서 따라갔다. 어떤 골짜기에 가더니 그들은 밤을 기다리느라 짐짝을 내려놓고 쉬고 있었다. 나도 옆에 앉아 쉬고 있으려니까 짐짝을 지니지 않은 청년 세 명이 내가 있는 쪽으로 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생이었는데, 평양에 있는 김일성대학으로 가서 공부하다가 다시 서울로 도망치는 학생들이었다.

    밤이되니 장사꾼들은 짐짝을 짊어지고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38선 일대의 경비는 나날이 강화되고 있었다. 그 바람에 38선에 도통한 박사들이라고 알려진 장사꾼들의 대열도 여러번 보안대원과 민청원들이 새로 설치한 경비망에 걸려 자주 분산됐다. 더러는 붙들리는 것 같았다. 몇 번 흩어지고 다시 만나고 하다보니 내가 따라가는 장사꾼들의 수는 반 정도로 줄고, 세 명의 대학생들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장사꾼들을 따라 솔밭 고개를 넘고 있었다. 약 200미터 쯤만 더 가면 38선이라면서 긴장 속에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도서 출판 기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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