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공교육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교육 문제는 그 당사자에 따라 너무나 상이한 이해와 해법이 얽혀 있어 교육 정책 당국마저도 때로는 자포자기 상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다소 엉뚱하게 보일지는 모르나 한국 교육에 있어서 법 정의라는 잣대가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이라는 백년대계의 문제를, 법원이 임용 평등이라는 밥그릇 다툼의 문제로 정의하면서 한국의 공교육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공교육 문제의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구는 한국 사회의 지나친 교육열이 문제라고도 하지만, 그 교육열이야말로 6.25 전쟁 후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한국을 세계 10위권 경제로 일으켜 세웠다는 데는 다들 공감하는 바다. 그 교육열이라는 것이 소위 명문대에 가기 위해 수능 점수 올리는 데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로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거기에 맞추게 되면 그 해법이라는 것은 필경 수능 없이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게 하는, 경쟁 없는 입시정책을 추구하는 방향이 될 터인데, 오늘날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그런 식의 하향 평준화는 이만큼이나마 성장시킨 나라를 퇴보시키자는 말이나 다름 없다. 물론 좀 더 장기적으로 보면 이 문제는 아마도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되지 않는 세월을 좀 더 겪은 후에 우리 사회가 대학 졸업장보다 자신만의 특별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더 낫다는 인식에 따라 서서히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좋은 대학에 많이 보내면 명문 고등학교라고 박수를 보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며 가까운 장래에 바뀔 것 같지도 않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대학 간판 위주의 교육열을 탓해 보았자 대개 그 해법은 탁상공론이나 다름 없게 될 뿐이다.
     
    필자는 현재의 공교육 문제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공교육이 학원이라는 사교육에게 경쟁에서 밀리는 현상으로 본다. 공교육이 경쟁력을 잃으니 학생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믿지 못하고 학원을 더 믿으며, 학부모는 비싼 학원비 대느라고 고생이고, 또 학생들은 밤이 깊도록 학교공부와 학원공부로 고생이다. 물론 공교육의 목적이 단지 지식교육이 아니고 전인교육인데 학원과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반론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과거의 공교육은 지식교육에서도 학원에 밀리지 않았고, 인성 교육 측면도 지금보다 나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날 공교육의 붕괴 현상은 학생들이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모습으로도 나타나고, 교사들이 자긍심을 갖고 있지 못한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필자는 어느 고교 수업 현장에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안 듣고 자신의 학원 진도에 맞는 책을 펴 놓고 공부를 하지만 선생님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30, 40년 전의 고교 수업에서 이런 일은 상상이 안 되는 일일뿐더러, 만약 이런 일 발생했다면 그 학생은 체벌을 포함하여 엄한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교육이란 거의 훈육(discipline)과 같은 말이다. 그러려면 교육자는 스승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이 있어야 한다. 이 차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오늘의 교사들은 예전에 비해 교사로서의 자부심이나 사명감이 떨어짐에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학생의 행동에 대해 사명감이 있는 교사라면 당연히 그런 학생의 태도를 바로 잡아주어야 하고, 그러려면 스스로 학원 수업을 능가하는 교육을 하겠다는 투지를 보여야 할 것인데, 위의 예는 실망스런 것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가 이런 상태라면 지식교육뿐 아니라 공교육이 주장하는 바 중요한 목적의 하나인 전인교육인들 잘 될 리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문제에 대해서 복잡한 인과관계의 수 많은 논의들이 있겠지만, 필자는 문제의 일단에는 공교육을 책임지는 주체인 교사가 천직의식을 잃었다는 점, 그리고 이렇게 되는데 법조계가 일익을 담당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원래 공교육의 주체인 교사의 임용은 국립 사범대학에서 임용고사 없이 교원을 우선 채우고, 부족한 인력을 임용고사에 의해 충원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을 1990년도 어느 땐가 국립 사범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우선 채용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누구나 평등하게 임용고사를 치르도록 되었다. 또 2004년도에는 사범대학을 나온 사람들에게 임용고사에 가산점을 주는 것이 위헌이라 하여 또 헌법소원이 제기되었고, 역시 위헌 판결로 가산점이 없어졌다.
     
    필자는 사범대학 출신을 옹호할 마음은 없다. 다만 원래 사범대학은 대학 진학 시에 이미 교육자로서 뜻을 세운 사람이 가는 대학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이런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 공교육의 가치관을 잘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법리 상의 평등이 교육의 틀을 굳건히 하는 백년대계보다 중요한 가치를 갖는지 모르겠지만, 이 법적 조치가 한국의 공교육이 피폐해지게 한 단초를 제공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두 번의 헌법소원으로 교육자로서 일종의 사관학교라는 자부심으로 사범대학에 진학했던 우수한 인력들이 더 이상 사범대에 갈 인센티브를 잃었다. 설사 사범대학에 가더라도 일년에 한 번 보는 임용고사라는 수십 대 일의 암기시험을 통과할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기 때문이다. 군대도 사관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군대로서의 핵심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킨다. 헌법소원의 판결은 그런 역할을 해야 할 교사 사관학교를 평등 원칙에 위배 된다며 무력화 시킨 것이었다. 이 조치는 평생의 천직으로 교사가 되려던 사람들을 좌절시키고, 교사라는 직업을 사회의 중요한 기관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되는 직능 집단으로 인식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천직으로서의 가치와 사명이 아니라 단지 직업의 안정을 추구하는 집단에게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필요가 생기는데, 그 결과 생긴 것이 바로 전국교원노조일 것이다.  
     
    우리사회에는 언제부턴가 온갖 문제를 법적으로 판단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기관들이 법의 잣대에 의해 원래의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왜곡될 우려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법원도 국가기관이지만 교육계도 그런 점은 마찬가지다. 과연 법원이 국가의 백년대계의 하나인 교육기관의 구도를 법 정의라는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타당했었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