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대역죄인(大逆罪人) (28)

     「나리는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방이 안된답니다.」
    거침없이 말했지만 기석(奇石)이 힐끗 내 눈치를 보았다.
    감옥서의 면회실 안에는 둘 뿐이었고 입회 간수는 보이지 않는다.
    기석의 뇌물을 받고 비켜 준 것이다.

    쓴웃음을 지은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자들에게 나는 선동꾼이니까.」

    그자들이란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를 비롯하여 수구파 대신, 거기에다 황제까지 포함되었다. 그들은 5년 전 만민공동회 집회에 모인 군중들의 열기를 아직까지 잊지 못할 것이었다.

    더구나 나는 감옥서 안에서까지 제국신문을 통해 4년여 동안 백성들을 선동했다.
    석방시키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904년 3월 하순이다.
    2월에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는 바람에 조선 땅에는 일본군이 가득 차 있다.
    마치 일본군에 점령당한 것 같다는 것이다.

    기석이 말을 이었다.
    「알렌 공사가 일본 공사 하야시한테 부탁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조선 정치범의 석방도 일본공사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며칠 전에 유성준, 이상재 등 정치범 등이 대거 석방 되었지만 나는 제외되었다.

    「부끄럽군. 조선 땅에서 감옥에 갇힌 조선 백성을 출옥 시키려고 미국 공사가 일본 공사한테 청을 넣다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제 낯도 뜨겁소이다.」
    했지만 기석의 얼굴은 멀쩡하다. 이제 미국 공사관 고참 통역이 되어 있는데다 일본군 정보원 이시다 주우로(石田十郎)와도 아주 친숙한 관계인 것이다.

    더구나 나를 인연으로 제중원 원장 에비슨이나 배재학당의 선교사들과도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 있어서 이런 심부름에 아주 요긴했다. 기석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그리고 내 집안까지 포함한 모든 정보를 전달해준다.

    기석이 말을 이었다.
    「나리. 어르신께서 곧 이대감을 만나 결판을 내신다고 했습니다. 이대감이 알렌 공사와 함께 일본 공사 하야시를 만나도록 하시겠답니다.」
    「아이구, 아버님이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 폐하라도 되시는 것 같구나.」
    그렇게 말해놓고 목이 메인 내가 헛기침을 했다.

    감옥에 갇힌 지 5년 3개월이 되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먼 친척인 이지용(李址鎔)을 잡고 매달리는 중이었다.
    이지용은 법부대신이 되어 있었지만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황제와 하야시다.

    기석을 보내고 감옥으로 돌아오는데 사형수 독방에 앉아있던 장호익(張浩翼)이 지나는 나를 불렀다. 장호익이 다가선 나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보게, 우남. 내가 오늘 이곳을 나가게 되었네.」

    두꺼운 칼 위에 놓인 장호익의 얼굴이 밝았으므로 나도 따라 웃었다.
    「아이구, 잘 되었소. 이렇게 좋을수가.」

    장호익은 일본육사(陸士)를 졸업한 보병 참위(參尉)로 황제 폐위 음모에 가담한 반역죄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웃음 띤 얼굴로 장호익이 화답했다.
    「내가 나가면 자네를 보호 해줄테니 힘껏 일하게.」
    「고맙소. 장군.」

    감옥의 서적실로 들어선 나는 들뜬 가슴을 가라앉히고 다시 「독립정신」 집필을 시작했다.
    서적실 안에는 나 혼자 뿐이다. 얼마 후 주위가 조용해진 느낌이 들어서 머리를 들었을 때였다.

    「만세!」
    만세 소리에 이어서 무언가 내려치는 소음이 일어났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부릅떴다.
    장호익이다.
    만세 소리는 두 번 더 울렸고 내려치는 소리도 두 번 더 났다.

    참수(斬首)를 당하는 것이다.
    무장(武將) 장호익은 그렇게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