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째 Lucy 이야기 ③ 

     저녁을 마친 테드가 시청 앞 광장의 조문소로 떠난 후에 나는 스티브의 전화를 받았다.

    「루시, 지금 회사에 나가 의뢰인을 만나기로 했으니까 세시간쯤 후에 보고를 할수 있겠네요.」
    스티브가 차분하게 말했다.
    오후 8시 반이었으니 11시 반쯤에 다시 연락을 한다는 말이었다.

    「좋아요, 스티브. 기다릴께요.」

    조금 전에 한국 시장조사를 위임한 고영훈을 불러냈으니 그동안 얼마쯤은 「예습」을 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예습」이란 조선과 대한민국에 대한 역사공부를 말한다. 

    이승만의 수기 2장까지를 읽고 나서 조선 왕국의 부패와 혼란 등은 이해하게 되었지만 주변 상황과 앞뒤를 어느 정도 알아 놓아야 스티브의 자료를 받게 되었을 때 이해가 빠를테니까.

    이제 나에겐 한국 시장 조사나 테드가 바랐던 전(前) 대통령에 대한 관심 따위는 안중에 없다.
    오직 이승만에 대한 호기심 뿐이다.
    의혹이라고 표현해도 맞을 것 같다.

    왜 나에게 이 수기가 전해져 왔는가?
    나는 이승만과 어떤 관계인가?

    이미 테드 김태수의 증조부가 제 2장에 자주 등장하는 이승만의 경호원 「재석」일 가능성이 높아져있는 상황이다.

    기막힌 사연 아닌가?
    1백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목숨을 걸고 이승만을 경호했던 경호원의 증손이 이승만을 민족 분단의 원흉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 조상은?
    거기에다 나에게 이 수기를 보낸 Dr.K는 누구인가?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고영훈이 다가왔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고영훈이 앞쪽 자리에 앉으면서 웃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아, 죄송해요.」
    정신을 차린 내가 따라 웃었다.

    「네, 한국에 대해서 생각을 하느라고.」
    「그렇습니까?」

    세상에 제 나라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는 외국인(그렇다. 나는 아직 고영훈에게는 미국인 행세를 했다.)에게 감동을 받지 않는 인간은 없다.

    고영훈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어떤 것에 대해서 생각하셨습니까?」
    「어제 어떤 남자를 만났더니 이승만을 비판하더군요.」

    그 순간 고영훈의 얼굴이 금방 굳어졌다.
    「누굽니까?」
    「광장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었어요.」
    「그래요? 뭐라고 했는데요?」
    「남북 분단의 원흉이라고, 미국의 앞잡이였고 독재자라고.」

    나는 테드가 말한대로 한 단어씩 기억해내어 말했다. 그러자 고영훈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런 인간들 대부분이 친북, 종북세력이죠.」

    고영훈이 내 눈치를 보더니 자세하게 설명했다.
    「북한과 동조 세력이란 말씀입니다. 아직도 한국은 북한과 비무장지대를 경계로 휴전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휴전이란 말입니다. 같은 민족이지만 남북한은 지금도 총을 겨누는 적이죠. 언제든지 상대를 정복할 기회를 노리는 상태란 말씀입니다. 그 적의 동조자들을 종북, 친북세력이라 부르고 바로 그자들이 이승만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왜요?」
    「1945년 일본이 패망했을 때 식민지였던 조선이 남북으로 미국, 소련에 의해 분할되었거든요. 그때 남북한 통일을 이승만이 방해하고 남쪽만 따로 대한민국으로 분리하여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나? 나는 입만 벌리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