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치들아 큰물로 갔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오너라~”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한강 3공구 이포보 건설현장. 4번 가물막이에서 밤새도록 어둠을 가르던 양수기 소리가 잦아들고 물이 거의 다 빠진 오전 8시. 물고기 구조대원인 어부들과 현장 기술자, 관리직원 15명이 장화를 신고 손그물과 뜰통을 준비하느라 손길이 분주하다.

  • ▲ 이포보 현장 직원들이 치어들을 본류에 방생하고 있다. ⓒ 박지현 기자 
    ▲ 이포보 현장 직원들이 치어들을 본류에 방생하고 있다. ⓒ 박지현 기자 

    물고기 구조작전은 내수면 어업허가를 받은 어부5~6명과 보조원으로 나선 마을 아주머니들이 10여명 공식적으로 맡고 있지만 직원들 15명도 손을 보태기 위해서다.

    바로 앞에선 물고기들이 꼬리지느러미를 털며 퍼덕이자 포말이 일었고 힘찬 물보라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번엔 100마리도 안되겠네" 공사관계자가 얼마전 끝난 가물막이 구조작업과 비교해 물고기가 적다고 하자 "산란기가 지나 많이 떠난 것 같다"고 옆에 있던 한 어부의 설명이 이어졌다.

  • ▲ 이포보 현장 직원이 1인용 그물로 물고기를 찾고 있다. ⓒ 박지현 기자 
    ▲ 이포보 현장 직원이 1인용 그물로 물고기를 찾고 있다. ⓒ 박지현 기자 

    최근 한 공사장에 뜻밖에 물고기가 많이 몰려드는 바람에 몇 마리가 희생됐던 일이 언론에 보도됐던 터라 이 시간만큼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전문 기술자건 사무원이건  보고서에 씨름하고, 삽을 들었던 손으로 그물을 잡아야 한다.

    물고기 구조작전은 이렇게 이뤄진다. 강둑을 따라 길이 200미터 가량으로 막은 가물막이를 6개정도를 이어붙이고 상류쪽 물막이부터 물을 뺀다.
    하나의 가물막이 안의 물을 빼는 데는 약 12시간쯤 걸린다. 가물막이 안의 낮은 곳으로 물이 잘 모이도록 물길 유도로를 내고 줄어든 물을 이 수로를 따라 흐른다. 낮은 곳으로 모여든 물의 깊이가 40~50cm 정도로 낮아졌을 때 배수를 멈추고 구조작전이 시작된다.

    이곳에 살고 있는 물고기는 누치, 잉어, 붕어 등이 주류로 사람 팔뚝만큼 큰 것들이 많다.
    물고기 구조요원이 물 가장자리부터 뜰채, 1인용그물로 누치들을 건져 올려 이동용 통에 담았다. 여자 구조원들도 비늘 하나라도 다칠라 조심스레 쏟아 넣었다. 작업이 급해도 손으로 마구 옮기거나 던지지 못한다. 사람의 손을 타면 물고기에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큰물고기가 담긴 통은 10개씩 모아 트레일러에 실어  본류로 옮긴다.
    물고기가 몰려 있으면 투망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수가 적어 작은 그물을 쓰는 일이 많다. 수심이 얕아도 작은 그물로 날랜 물고기를 잡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 ▲ 한 여성 구조원 치어를 옮기고 있다. ⓒ 박지현 기자 
    ▲ 한 여성 구조원 치어를 옮기고 있다. ⓒ 박지현 기자 

    3공구 건설현장의 김진문 부장(대림산업)은 "그물로 물고기를 몰면 사람이 오는 반대방향으로 용케 빠져나갑니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습성이 있어 유도로를 따라 흐르는 물길을 거슬러 도망가기 때문에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고기 구출작전이 생각보다 수월해보이진 않았다. 장마가 오기 전 이 구간 공사를 끝내야하는데 물고기 복병을 만난 셈이다. 큰물고기는 전문어부가 관리하고, 작은 물고기는 여자 구조원이 돕는다. 심지어 다슬기까지 주워 본류로 옮긴다. 현장에선 물고기가 상전인 것이다. 대부분의 공구가 다 비슷한 처지이다.
     
    김진문 부장은 "자연을 살리자고 시작한 사업이니 물고기 한 마리라도 소홀히 할 수 없어요. 옛날 시골 개천을 생각해 '매운탕' 농담이라도 나올법한 장면이지만 현장에선 그런 농담조차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진지하지요”라고 구조작전의 분위기를 소개했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시작된 구조작업은 오후 2시가 되어 끝났다. 큰 물로 옮겨준 물고기는 80여 마리. 4월말쯤 산란기였다면 엄청나게 모였을 물고기가 그나마 적어 작업이 빨리 끝난 것이다. 80마리 구조하는데 30여 명이 구슬땀을 흘린 것이다.

    이 구간 공사를 지휘하는 윤효창 공사부장은 "6월 우기가 오기 전 공사를 마쳐야 하지만 생태를 보호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어 전직원이 날마다 긴장하고 있다"라며 "구조작업 때마다 물고기를 황제처럼 모시는데 강바닥을 마구 파헤치며 다 죽인다고 오해하는 기사를 보면 힘이 빠진다"고 안타까워했다. 하도 물고기에 신경 써야하니 어떤 날은 구조한 물고기보다 사람이 더 많은 적도 있다고 전해줬다.

    이 구간 공사를 관리하는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추정호 계장도 "시급한 공사일정에 발길이 급해도 생태보전 만큼은 시공사와 공무원이 한마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