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첫 왕도 멤피스

글-사진 이태원 | 최종편집 2010.03.26 13:27:21

▲ 아멘호테프 2세 스핑크스.(조각공원, 멤피스) 

 

흰 성벽의 도시 멤피스Memphis, 상·하 이집트의 경계선에 세운 왕조시대의 첫 왕도로
초기왕조와 고왕국 시대의 정치·경제·문화·종교의 중심지였다.

4천 1백여 년 전, 고왕국이 끝나고 중왕국이 시작되면서 왕도는 멤피스에서
테베지금의 룩소르로 옮아갔다. 그 후에도 멤피스는 파라오의 대관식을 거행하는 등
고대 이집트 왕조의 정신적 왕도로서 그 지위를 유지했다.

멤피스의 옛 이름은 고대 이집트어로 「피라미드의 아름다움은 영원하다」라는 뜻으로
사카라의 남부에 있는 고왕국 제6왕조의 페피 1세의 피라미드의 이름인 멘네페르Mennefer에서
유래되었다. 그 밖에도 「흰 성벽」이라는 뜻의 이넵헤즈Inebhedj , 상·하 두 이집트의
지배를 상징한 「두 땅의 생명」이라는 뜻의 앙크 타위Ankh Taui라고도 불리었다.
멤피스는 그리스인들이 붙인 이름이며 지금의 이름은 아랍어로 미트 라히나Mit Rahina이다.

우주의 건설자 프타, 태양신의 눈물로 인간 창조

멤피스는 창조신 프타Ptah 신앙의 중심지였다.
프타는 고대 이집트어로 「우주의 건설 자」라는 뜻이다.
그는 등에 육체적인 안녕을 상징하는 메나트Menat를 메고 손에는 삶과 안정을 상징하는 제드Djed장식의 지팡이를 들고 머리를 깎은 미라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멤피스의 신수神獸는 황소 아피스Apis였다.
멤피스에는 헬리오폴리스와 별도로 프타를 중심으로 한 천지창조 신화가 있었다.

이 신화에 따르면 프타가 그의 혀와 말로 아툼을 비롯하여 헬리오폴리스의 아홉 신을 만들어 천지를 창조했으며 태양신 라의 눈물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왕도 멤피스에는 왕궁과 프타 신전이 있었다.
지금은 대추야자나무 숲 속에 그 흔적만 남아 있지만, 룩소르 동안에 있는 카르나크의 아멘 대신전에 버금가는 큰 규모의 신전이 있었다.
람세스 2세의 넷째 왕자로 대사제였던 카엠와세트Khaemwaset가 아버지 람세스 2세를 위해 세운 것이다.
로마 황제 기독교외 종교 금지, 멤피스 신전 파괴

4세기 초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로마 국교로 공인밀라노 칙령한데 이어 4세기 말 황제 데오도시우스 1세가 그리스도교 이외의 모든 종교의 신앙을 금지시켰다.

이때 멤피스의 프타 신전도 파괴되었다.
그나마 일부 남아 있던 신전과 왕궁은 13세기에 있었던 심한 홍수로 나일 강의 둑이 무너져 진흙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그 뒤로 멤피스는 농촌으로 변했고 지금은 프타 신전의 빈터만이 쓸쓸히 남아있다.
그런데도 멤피스에 많은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아 오는 이유는 오직 하나,
신왕국의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의 거상을 보기 위해서이다.

람세스 2세의 거상 보러 온다

이 거상은 프타 신전 유적의 입구에 있는 조그마한 조각 박물관에 누워있다.
3천 4백여 년 전에 람세스 2세가 프타 신전을 확장하면서 만든 것으로 신전 앞에 두 개의 거상이 있었는데 하나가 이곳에 누워있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의 람세스 중앙역 앞 광장에 서 있었다.
역 앞의 거상은 높이 11.5m, 무게 83t으로 1954년 나세르 대통령이 이민족의 침략을 극복하고 영광스러운 이집트를 다시 찾은 기념으로 옮겨 갔다. 그러나 2006년에 이 거상은 대기오염으로 파손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역 광장에서 기자의 피라미드 근처에 현재 건설 중에 있는 대이집트 박물관Great Egyptian Museum으로 다시 옮겨갔다.

조각 박물관 안에 누워있는 람세스 2세의 거상은 왕관의 일부와 무릎 이하의 한쪽 다리와 한쪽 팔꿈치가 떨어져나간 채 늪에 쳐 박혀 있던 것을 1820년에 발굴하여 이곳에 옮겨다 놓았다.
한 개의 큰 석회암을 깎아서 만든 이 석상은 원래 그 길이가 15m였다.
지금은 파손되어 12m만 남아 있으며 그 무게가 80t이나 된다. 단정한 표정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거상의 얼굴은 마치 누워있는 불상과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선조 파라오의 이름을 횡령

매우 흥미로운 것은 석상의 어깨에 새겨져 있는 카르투시이다.
놀랍게도 람세스 2세의 석상에 람세스 3세의 카르투시가 새겨져 있다.
람세스 3세가 람세스 2세의 이름을 깎아 내고 자기 이름을 새겨놓은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집트 유적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선조 파라오의 이름을 횡령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횡령을 가장 많이 한 것이 람세스 2세로 알려져 있다.


▲ 멤피스의 스핑크스. 



▲ 상이집트의 흰 왕관을 쓴 람세스2세 입상.(조각공원,멤피스)



박물관의 2층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이 거상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
박물관 안마당의 맨 안쪽에 높이 7m의 람세스 2세의 입상이 늠름하게 서 있다.
상 이집트의 상징인 흰 왕관을 쓰고 왼발을 한 발자국 앞으로 내밀고 서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것은 고대 이집트의 전형적인 입상 양식이다. 그리고 마당의 중앙에 연한 붉은 색의 앨러배스터로 만든 아름다운 모습의 스핑크스가 앉아있다. 사자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가진 이 스핑크스는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2세 때 만든 것으로 프타 신전에 있었던 것을 이곳에 옮겨 놓았다.

길이 8m, 높이 4m, 무게 80t의 이 스핑크스는 그 크기가 기자의 대스핑크스 다음으로 크다.
대스핑크스는 얼굴이 망가져 있으나 아멘호테프 2세의 얼굴로 추정되는 이 스핑크스의 얼굴은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으며 단정한 모습이 친근감을 준다.

그밖에 프타 신전에서 길렀던 신우神牛 황소가 죽으면 그 미라를 만들 때 사용했던 앨러베스터로 만든 해부대解剖臺가 이곳에 남아있다. 황소의 미라는 사카라에 있는 아피스의 무덤 세라페움에 묻혔다.

투탕카멘이 천도...화려한 파라오 대관식 어디에?

멤피스는 신왕국 제18왕조의 투트메스 3세 시대에는 서남아시아 원정의 거점으로서 매우 중요시 되었다. 또한 제18왕조의 파라오 투탕카멘은 아텐 신앙의 중심지였던 종교개혁의 땅 아마르나를 버리고 멤피스로 옮아왔다.

멤피스를 떠나 사카라로 향하면서도 고대 이집트 왕조의 첫 왕도였고 파라오의 대관식이 열렸던 화려했던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지금은 대추야자나무가 우거져 있는 농촌 마을로 변해 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쓸쓸하고 초라했다.

기파랑(02-763-8996)의 <이집트의 유혹> www.guipar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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