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제로포커스'의 이누도 잇신 감독 ⓒ 뉴데일리
    ▲ 영화 '제로포커스'의 이누도 잇신 감독 ⓒ 뉴데일리

    빨간 트렌치 코드를 입은 세 여배우의 포스터 앞에 선 그는 청바지에 갈색 운동화를 신은 평범한 모습이었다. 조금전에 한국에 도착해 정신없이 인터뷰만 하고 있다는 그는 한국에 온 소감에 대해 "옆에 있는 통역이 말을 많이 해야 해서 힘들 것 같다"며 웃는다.

    일본에서 만큼은 셜록홈즈의 코난 도일 보다 더 유명하다는 추리소설 작가 마츠모토 세이치로. 영화 '제로포커스'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영화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구구는 고양이다' 등 국내에도 수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이누도 잇신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미스테리에 도전했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서스펜스를 너무 좋아했었어서 순수하게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번 작업이 굉장히 즐거웠다"고 말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특히 연기자들의 감정표현에 중점을 두고 촬영했다. 특히, 범인을 알고부터 마지막을 향해 영화가 달려가는 느낌을 살려내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번 작품에 대한 그의 선택권은 없었다. 영화사가 기획했고, 그는 거기에 따랐다. 하지만 그는 "만일 내가 스스로 작가의 한 작품을 선택해야 했다고 해도 이 작품이 가장 영화화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로포커스'의 배경은 오랜 자민당 정권이 민주당으로 50년 만에 변화된 현대 일본의 시대상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일본이 막 경제성장을 이룰 시기였다. 당시 소설은 일본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전후 새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과거에 얽혀 파멸해 나가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어쩌면 내 이야기일 수도..."라는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 ▲ 영화 '제로포커스' 포스터 ⓒ 뉴데일리
    ▲ 영화 '제로포커스' 포스터 ⓒ 뉴데일리

    히로스에 료코, 나카타니 미키, 기무라 타에. 일본 최고의 세 여배우와의 작업에 대해 그는 "모두들 프로고 훌륭하다. 신뢰할 수 있는 배우들이다"라고 말했다. 세 배우와는 모두 CM이나 드라마, 영화 등으로 호흡을 마췄던 경험이 있는 그는 그들의 실력을 어떻게 화면에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번 영화 안에서 히로스에 료코에게는 내면을 누르는 연기를 나카타니 미키에게는 자유롭게 뛰어다니기를, 기무라 타에에게는 종교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순수한 모습을 요구했다.

    영화 '제로포커스'는 사치코의 동생과 남편의 성격 등 원작 소설과 다른 부분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감독은 그 변형의 이유에 대해 세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3년동안 연재된 소설이었기에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 둘째, 50년대의 문화 예를들어 영화 안에서의 맞선이나 팡팡걸 등에 대해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셋째, 남성중심의 사회에 대한 여성의 복수를 크게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에대한 일본 관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작품이 변형된 것에 대해 싫어하는 의견과 마음에 걸리던 부분이 깔끔해져서 좋다는 반응으로 갈렸다. 하지만 반응은 굉장했다. 영화 '제로포커스'는 2010년 일본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주요 11개 부분의 우수상을 수상했고, 최우수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진기록을 달성하며 문학계에 이어 영화계에도 한 획을 긋은 작품이 됐다.

    50년대 대유행한 '온니 유'등의 음악 사용도 돋보인다. '메종 드 히미코'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음악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던 반면, 이번 영화는 감독이 가장 많은 음악을 사용한 작품이다. 음악감독은 우에노 코지. 그의 팬으로 최근 그를 기용하는 사람이 많이 없지만 다시 그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짓게 만들었다.

    한국 부천판타스틱스튜디오에서의 로케이션도 즐거웠다. 설경을 만들기 위해 소금과 씨름했다. 일본과 한국의 촬영 속도가 다르다보니 한국 스탭들이 많이 불안해 하기도 했는데, 일본은 그렇게 찍지 않으면 영화를 찍을 수 없는 구조라 한편에서는 한국 감독들이 부럽다고 느꼈다. 그는 "꼭 한국에서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고 몇번이고 반복하며 말했다.

    감독의 추천장면은 인물들간의 대립장면. 절벽위와 마지막 광장에서 나카타니 미키와 기무라 타에, 히로스에 료코가 각각 마주 선 모습에서 배우들의 얼굴이 만족스럽게 잘 나왔다.

    강렬한 빨간 트렌치 코트. 영화 안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이 코트를 입은 세 여배우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에 대해 그는 "이 사진을 포스터로 한다고 가져왔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놀랐다"고 답한다.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역할만큼이나 스탭들의 역할에 대한 신뢰가 느껴졌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회적 배경이 다른 한국에서 이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흥미롭다고 말하며 영화 후반 범인의 얼굴을 알고 난 후부터의 시간을 관객들이 충분히 즐겨주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