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바타'를 보며 3D에 주목할게 아니라 생명을 경외시하는 ‘생명 자본주의’에 주목해야 한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23일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선진화포럼 제 42차 월례토론회에서 2010년 키워드는 ‘생명 자본주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아바타를 보고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며 “아바타는 콘텐츠 혁명”이라고 전했다.

    그는 영화 아바타에서 인간이 지하자원은 차지하기 위해 나비족의 터전을 파괴하는 것을 두고 “관객들은 어느새 같은 인간보다 오히려 꼬리달리 나비족의 편을 성원하게 된다”며 “이 같은 생명 자본주의는 자연 자본주의, 창조적 자본주의를 포괄한 개념”이라고 전했다.

  • ▲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 뉴데일리
    ▲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 뉴데일리

    그는 “지구에서 3억년이나 살아온 바퀴벌레는 배설물을 내뿜는 대신 몸 안에 있는 미생물을 이용해 몸 안에서 모든 것을 재사용하는 반면, 인간은 오렌지주스 1리터를 만드는데 1000리터의 물과 2리터의 휘발유를 필요로 한다”며 “기계기술과 정보지식기술을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생태모방)로 바꿔 생명의 순환과 생식을 이용해 자연에 재투자 가능한 생명자본주의 시스템을 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세계가 경쟁하고 있는 그린 테크놀로지(녹색기술)나 한국이 주도해가고 있는 그린 그로스(녹색성장)가 바로 그러한 전환의 한 보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 교수는 “산업혁명이 주도해온 산업자본주의와 지식정보 혁명이 이끌어온 금융자본주의가 유통기간이 다 했다”며 “약 200년 간 인간이 사용해온 발전 모델과 그 기술을 바꾸지 않으면 오늘날 같은 금융위기, 환경위기, 윤리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한국 선진화 포럼 2월 주제 '젊은이의 생몀의식' 이어령 교수 강연 전문이다.

    젊은이들의 생명의식
    -바이오미미크리(biomimucry, 생체모방)와 생명 자본주의-

    1. 산업화 민주와 다음은 생명화
    서울 올림픽때 태어난 오늘의 20대 젊은이들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보리고개 시절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밥을 먹는 것이 삶의 과제요 억압에서 자유를 찾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면, 오늘의 젊은이들은 밥이 아니라 '감동'을 먹고, 자유가 아니라 꿈을 쫓는다.
    실제로 젊은이들은 "감동을 먹었다"고 말하고 꿈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별표 모양으로 그린다.
    느낄 감(感) 움직일 동(動)의 감동은 글자 그대로 느껴야 행동하는 젊은 세대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더구나 그러한 느낌의 행동성은 물질감(物質感)이 아니라 신체의 운동과 소통에서 오는 생명감에서 나온다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해리포터나 컴퓨터 게임 그리고 가상현식의 꿈속에서 자라나 그것을 현실 속에 그대로 옮기려 한다.
    한마디로 생의 수단인 리빙(living)이 생의 목적(autotelic)인 라이프(life)로 옮겨 간 생활양식은 더 이상 절대시 해 오던 산업화의 경제원리와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화의 정치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2. 아바타 영화가 던진 충격은 무엇인가?

    "21세기의 한 자리수의 연대는 리먼 브라더즈의 금육 쓰나미로 상징되었다면 두 자리 수의 연대인 2010년은 3D영화의 '아바타' 현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바타의 글로벌 충격은 일반 상식과는 달리 3차원의 입체영상의 기술이 아니라, 카메론 감독이 보여준 그 컨텐츠의 혁명성에 있다. 지하자원을 얻기 위해 판도라 행성을 정복하고 그 숲을 파괴하려는 지구인과 그 영적인 생명의 숲과 소통하며 생활하는 나비 족 사지에서 벌어지는 입체영상의 드라마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당연시 해 오던 산업 자본주의 또는 금융자본주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한다.
    우주의 행성 '판도라'에 초전도물질의 희귀금속, 언옵타이움(unobtanirum)의 광맥을 발견한 미국의 자원개발 공사 RDA(Resources Development Administration)는 광석채굴을 위해 원주민 나비족들을 몰아낸다.  온갖 첨단기기와 무기를 내세워 인간들은 그들이 모신(母神)으로 섬겨온 성스러운 산을 파괴하고 수 몇 천 년동안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살아 온 영혼의 거목들을 일순간에 쓰러뜨린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느 새 같은 인간보다 오히려 꼬리달린 나비족 편을 성원하고 있는 관객들의 반응이다. 그것은 정보 수집차 밀명을 띠고 자신의 아바타(분신)을 침투시킨 전 해병대원 제이크가 원주민의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아름다운 생명의 숲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그들 편이 되는 것과 같은 변심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자신의 분신과 만나고, 자연의 생명을 영혼으로 소통해온 제이크와 감동을 나눔으로써 폴 호겐, 에이모리 로빈스, 그리고 헌터 로빈스등이 주장하는 자연 자본주의(natural capitalism)와 빌 게이츠가 제시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의 이론을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이 되어 배우게 된다.

    3. 왜 나비족의 숲을 뺐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에머리 시몬즌등 1999년의 조사를 보면 미국의 중산층 가족 네식구가 일년간 살기 위해서는 연간 약 1,800톤의 자원을 채취하여 가공처리하고 정제, 제조, 연소, 공급, 소비한다. 하루의 양을 계산해 보면 표준적인 인간의 체중의 약 20배에 달하는 자연자원을 소비하는 것이다.
    이 막대한 물자의 유 통량 가운데 실제로 최종제품이 되는 것은 겨우 7%에 지나지 않고 그 가운데 내구성 제품들은 1%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 재생, 재제품화 또는 재이용되는 것은 겨우 0.02% 밖에 되지 않는다. 선진국들의 자원 유통의 99.9%가 폐기물로 버려지는 셈이다.
    알기 쉽게 풀자면 캘리포니아 산 오렌지주스를 1리터 만드는데는 1,000리터의 물과 2리터의 휘발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주스를 운반하는 푸드 마일을 계산하면 엄청난 연료와 공해물질을 배출한다.
    (푸드마일: 식료품을 그 생산지에서 소비 장소까지 수송하는데 드는 주행마일 즉 연료소비량과 CO2배출)
    이렇게 산업, 금융자본주의는 "자연계의 모든 물질은 유한한 것인데 돈만은 무산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끝내 승복할 수 없었듯이 돈은 생물이 아닌데도 이자를 통해서 자기 증식을 한다. 그래서  금융 자본주의는 세계에서 유통하는 실태없는 300조 달러라는 돈이 불어나게 했다. 모든 나라의 실제의 GDP는 합계 30조 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 이 갭을 메우기 위해서 끝없이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이다.
    여기에 비해서 자연의 생물들은 일체 자원을 낭비하는 일이 없다. 어떤 종의 배설물은 다른 종의 식량이 된다. 모든 자원의 재 이용률은 100%이다. 리사이크링이나 에너지의 적절한 배분으로 폐기물을 발생시키는 일이 없다.
    예를 들자면 이 지구에서 3억년이나 살아 온 바퀴벌레는 일체 배설물을 내보내지 않고, 완전히 체내의 미생물을 이용하여 리사이클링을 한다. 산업시대의 기계기술, 정보시대의 정보기술을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의 생명기술로 바꾸어야 할 당위성을 아바타의 비극을 통해서 우리는 깊이 인식하게 된다.

    4. 바이오미미크리를 통해서 본 자연 자본주의

    레오날도 디카프리오가 54명의 전문가들과 인류멸망에 대해 의견을 청취하는 '11시'(임박한 상황)라는 다큐영화에서 유일한 구제의 탈출구는 바이오미미크리에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 200년도 채 안 되는 근대과학기술을 38억년을 살아 온 생명의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자연계의 생명 기술의 방향으로 돌려놓자는 것이다.
    자연을 본받는 바이오미미크리의 신기술의 세계에서는 모든 인식이 물구나무 선다.
    인간을 괴롭히는 대상인 모기가 첨단 나노기술의 선생이 된다. 벌써 일본에서는 모기의 침(針)을 모델로 하여 아픔 없이 주사를 놓을 수 있는 주사 바늘을 개발하기도 했다. 모기 바늘과 맞먹는 1㎜의 5분의 1만큼의 가느다란 주사 바늘에는 톱니 모양의 홈이 파져있고 그 바늘은 체내에서 분비되는 포리유산이라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다.
    신축율의 기존 나일론의 2배가 되고 같은 무게의 철강보다 10배 강하다는 거미줄에서 새로운 섬유기술을 발견하여 그것으로 방탄조끼나 안과 등 외과수술용 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 연구팀들은 벽에 달라 붙는 도마뱀류의 발바닥 모양을 분석 적용하여 100그램의 무게를 가진 물건도 너끈히 달아 맬 수 있는 강력 접착 테이프를 만들어낸 것도 마찬가지 성과다.
    벌써 열대의 건조지대인 사바나(Savannah)에서도 상온 30°C를 유지하고 있는 흰 개미(white ant: termite) 집을 본떠서 냉방장치가 필요 없는 빌딩을 짐바브웨(Zimbabwe)의 헤라레시에 세운 건설회사가 출현했다.
    막 시작된 바이오미미크리는 21세기의 환경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경제를 일으키는 요술지팡이 노릇을 하는 두 마리 토끼 사냥의 신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개개 자연계의 생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의 시스템을 기술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총체적 효력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발견한 산업기술은 기껏 300년 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38억년 지속되어 온 생명체의 생존기술에 비하여 턱 없이 불안전하고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폐기물을 배출하는 미숙한 산업기술을 배설물을 배출하지 않는 바퀴벌레의 생체기숨을 모방한 바이오미미크리로 바꾸면 생명의 순환과 생식을 이용하여 자연에 재투자가 가능한 생명자본주의 시스템을 창조할 수 있다. 지금 세계가 경쟁하고 있는 그린 테크놀로지(green technology, 녹색기술)이나 한국이 주도해 가고 있는 그린 그로스(green growth, 녹색성장)이 바로 그러한 전환의 한 보기가 될 것이다.
    산업혁명이 주도해 온 산업자본주의와 지식정보 혁명이 이끌어 온 금융자본주의는 그 유통 기간이 다 해 가고 있다. 그 발전 모델과 그 기술을 바꾸지 않으면 오늘 날 같은 금융위기, 환경위기, 윤리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 대하여 유해무해를 가리지 않고 돈이 되는 것이면 모두 GDP로 간주하는 통계숫자는, 생명감이 충일한 행복지수 GPI(Genuine Progress Indicator) 또는 GNH (Gross National Hapiness)로 바뀌어야 한다. 교육문화 전반에 젊은이의 생명의식을 올바르게 유도하는 교육, 문화의 소프트 파워 정책이 시급하다.
    1980년대를 기축으로 GDP 숫자는 올라가도 GPI의 실질적 성장숫자는 제걸음으로 하고 있다.
    암환자가 늘면 의료활동의 돈이 움직이고 공해로 천식환자가 그리고 교통사고가 많이 생길수록 인간의 행불행과 관계없이 GDP는 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공적인 자본 대 자연자본>

    1. 노동이나 지식 문화 조직등의 인적자본
    2. 금융자본---현금 주식 금융 증권
    3. 제조자본---인프라 시설을 포함하는 기계 도구 공장
    종래의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는 주로 이 세가지 자본이 주류를 이루어 온 셈이다.
    그러나 자연자본주의 (생명자본주의)는 생명 시스템, 생태계의 서비스를 자본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과 같은 원리에 입각해서 생산의 시스템을 생식의 순환적이고 재생산적인 경제활동으로 바꿔 나간다.
    a. 폐기물을 없앤다. 산업자본주의는 폐기물을 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원고갈을 한다. 자본 프로세스에서 생산물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폐기물도 나온다.
    b. 바이오미미크리(생명체의 모방, 생명기술-기계기술과 대립되는 것)
    c. 자연자본에의 재투자, 재생산이 가능한 순환경제
    22세기를 기다릴 것 없이 그리고 먼 우주의 행성으로 눈을 돌릴 것 없이 지금 지구상에는 희귀 금속등 지하자원을 확보하고 보전하고자 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가 전기 자동차를 만들어도 여전히 에너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지 연료에 없어서는 안되는 리티움은 동이 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TFT LCD를 만들어내는 인듐도 희귀금속의 하나로 중국 땅에 밀집되어 있다.
    바이오미미크리는 단순한 자원해결의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새로운 생명의식의 혁명으로 가치관, 자연관, 세계관의 변화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문명 혁명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