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주영 전 문공부 장관. ⓒ 뉴데일리
    ▲ 윤주영 전 문공부 장관. ⓒ 뉴데일리

    지난해 10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지금도 기록에 목 마르다”라고.
    그 목마름이여서일까?
    지난해 10월 15일 세종문화회관 갤러리에서 우리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 50인의 모습을 담은 개인전을 연 지 1년이 채 안 돼 같은 장소에서 윤주영(81) 전(前) 문화공보부 장관이 개인전을 갖는다.
    13일부터 1주일간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사진전 '百人百想'(백인백상)이 그것이다.
    '百人百想'(백인백상)이라. 100사람의 100가지 생각이라는 얘기다.
    전시회를 코앞에 앞두고 바쁜 그를 조선일보 옆 찻집에서 만났다.
    “20세기 대한민국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50분의 인물사진을 찍어 지난해에 열었었지요. 대부분 현직에서 물러나신 분이었는데 이번엔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각 분야의 선각자 100분을 주제로 사진전을 열게 됐습니다.”
    올해 3월 말부터 8월 말까지 144일간을 이번 전시에 전념을 했다고 한다.
    100명? 말이 쉽지, 6개월간 대상을 선정하고 촬영 약속을 잡고 촬영과 인화 등 모든 작업을 마쳤다면 엄청난 일과를 소화해냈다는 얘기다.
    게다가 대상인 100명이 평범한 ‘갑남을녀’가 아니지 않는가?
    “워낙 저명한 인사들이다 보니 일일이 승낙을 얻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주위 분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윤 아무개가 전화를 할 테니 어지간하면 촬영에 응해달라’고 부탁을 해주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윤 전 장관은 그래도 끝내 응하지 않은 분들이 몇 분 계시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국악계 원로 이혜구 선생이며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소설가 이문열씨, 탤런트 최불암씨, 정운찬 국무총리 등의 모습이 보인다. 이혜구 선생은 올해 100세를 맞았다.
    “이번엔 모든 분들에게 600자 씩의 에세이를 받느라고 조금 더 애를 먹은 갓 같아요.”
    아닌게 아니라 100명의 명사들의 사진 옆엔 자신들의 소신이며 철학을 담은 600자 내외의 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글들 하나 하나가 21세기의 우리 한국을 위한 충고이자 제언이어서 의미가 깊어요.”
    윤 전 장관은 “바쁜 속에서도 흔쾌히 글을 써준 분들에게 짐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실린 글들엔 100명의 진솔한 마음이 담겨 있다.
    도편수 신응수씨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장인으로 50여 년을 살아오면서 빠르고 편리한 최첨단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성실하게 책임질 줄 아는 우리의 장인정신에 대해 말입니다. 그것은 곧, 최고의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묵묵히 일하는 자세,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추고 꾸준히 연구하고 배우는 자세, 옳다고 믿는 일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추진력과 고집, 항상 하는 일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질 줄 아는 자세입니다.”
    어렵지 않지만 그만큼 가슴을 찔러오는 충고이자 채찍질이다.
    이들의 이야기에 예외 없는 공통점이 있다면 '희망'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우리는 할 수 있는 충분한 자질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속삭인다.
    그래서 극복하라고 이겨 나가라고 얘기한다. 이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속삭여 이 시대의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밝은 내일을 맞이하라고 등 두드려준다.
    화제는 다시 사진 작업으로 돌아갔다.
    윤 전 장관의 이번 개인전은 29회째이다. 포트레이트 사진전으론 두 번째이다.
    그간 그는 주제가 확실한 다큐멘터리 사진만을 고집해왔다.
    “지금도 사진은 ‘기록’이며 ‘만드는 사진(make photo)’ 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윤 전 장관은 “앞으로 진실을 기록한 사진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4 ․ 19 때 사진들을 제대로 보관하고 있는 신문사가 없습니다. 그 때의 결정적인 장면을 보도하려고 해도 그 원판들을 제대로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관리가 매우 허술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기록하는 사진들이 더욱더 중시되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포트레이트 역시 ‘기록 사진’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얼굴의 주름 하나, 얼핏 스치기 쉬운 표정 하나 하나가 그 분들의 삶의 기록입니다. 게다가 그 분들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사회적 위치나 무게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평론가들은  윤 전 장관의 포트레이트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숙성시킨 인생의 깊은 향기와 그들이 갖춘 위엄이나 확고한 태도, 존재감을 충분히 끌어내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윤 전 장관은 대상의 마음을 찍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어디든 시간과 장소는 편하게 선택하시라고 말해요. 그래서 배경이 다양하지요. 편한 장소, 편한 시간이라야 그 사람의 내면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거든요.” 
    그는 “인물을 찍을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그 사람의 '마음'을 담고자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공직에서 물러나던 해인 1979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올해로 꼭 30년째이다. 카메라를 들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화유적과 인간문화재들 사진을 찍기 시작해 안데스 산중 원주민들이나 중국·베트남·아프리카 등 세계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90년엔 네팔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을 찍은 '내세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제15회 이나노부오상을 받기도 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일본 사진작가들과 교분이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 전시회를 한다니까 모두들 한국으로 오겠다고 해요. ‘한국 사람들만 찍었으니 올 것 없다. 내가 책을 보내주마’라고 말해도 막무가내예요. 기어이 오겠다고 합니다.”
    전시가 끝나면 그는 네팔이며 사할린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일제시대 사할린 탄광에 강제 연행되어 50여 년 동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동포들을 촬영한 작품 ‘동토의 민들레’로 한국현대사진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결혼이주여성, 귀화인, 사할린 동포, 중국 동포 등을 비롯한 ‘신(新)한국인’이 그가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렌즈의 대상들이다.
    "다문화 국가 속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일을 렌즈에 담고 싶은데 힘이 부쳐요.“
    윤 전 장관은 “그래서 일단 국토를 종횡하면서 길가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가 사는 고장을 들여다보려고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최북단 마을부터 최남단 마을까지 국토를 종단하면서 그 길가에서 마주쳤던 사람들과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사진에 담아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윤 전 장관의 사진 작업은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는 피사체인 사람을 통해서 지상의 삶과 역사와 미래를 그려낸다. 이 번 전시회에 등장하는 흑백사진 속 100인의 얼굴들은 그러므로 곧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며 우리의 현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