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가 검찰에 의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횡령, 생명윤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활동 지원에 나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기도는 26일 황우석 박사가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과 ‘형질 전환 복제돼지 생산에 관한 공동연구 협약’을 체결했다.

    김 지사는 “경기도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황 박사 연구팀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며 공공의 이익 차원에서 황 박사 팀의 생명공학 연구를 지원하고 나중의 성과에 대해 분명히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황 박사는 “연구 성과로 사죄하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김 지사에게 화답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경기도는 실험용 어미돼지를 무상 공급하는 것을 비롯 연간 4,100만원의 실험재료를 제공하기로 했으며, 황 박사는 연구팀과 함께 매년 150여두의 어미돼지에 형질전환 복제배아를 이식해 당뇨병 질환 모델 복제돼지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이진찬 경기도 농적국장은 한 발 더 나가 황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으로 2005년 12월 기공식 뒤 전면 중단된 '황우석 장기바이오연구센터' 사업 재개도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이 국장은 "무균돼지 사육실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되면 바이오연구센터 건립도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 ▲ 환하게 웃으며 함께 회의장으로 입장하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황우석 박사 ⓒ 연합뉴스
    ▲ 환하게 웃으며 함께 회의장으로 입장하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황우석 박사 ⓒ 연합뉴스

    이에 대해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논문조작에 대한 사법부의 결정이 내려지기도 전에 경기도가 도민들의 혈세로 황 박사를 지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문수 지사는 왜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며 황우석 박사 연구 지원에 나섰을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2006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줄기세포 논문조작’파문에도 불구 황우석 박사 연구팀의 성과 그 자체에 대한 학문적 평가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황우석 박사는 지난 6월 8일 열린 ‘2009년 장영실상’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다시 한 번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조직위원회는 줄기세포 개발과 개 복제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낸 점을 이유로 꼽았다.

    황우석 박사팀 연구원들도 속속 실무로 복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체세포 복제방식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승인을 받은 차병원은 정형민 박사가 이끄는 통합줄기세포치료연구소에 황우석 박사팀 핵심인물 중 하나인 박종혁 전 미즈메디병원 연구원을 ‘포스트닥’형태로 영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현민 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박씨에게는) 큰 문제가 없다는 주변의 권유를 받고 채용했다”고 밝혔다.

    논문조작과 관련된 진실게임도 학계를 중심으로 재연되고 있다.

    월간조선 4월호는 충북대 수의과대 정의배 교수의 증언을 인용, “황 박사의 줄기세포를 재검증한 결과 1번 줄기세포는 사실상 체세포 핵이식 유래의 줄기세포임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황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을 조사한 정명희 전 서울대조사위원회 위원장도 올해 초 재판 진술을 통해 “2005년 말 맞춤형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식으로 단정해 말한 것을 사과한다”며 자신의 기존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검찰이 논문조작과 관련된 부분을 기소 내용에서 제외한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법정에서 논문조작 여부에 대해 세계적으로 형사처벌 사례가 없다는 점과 학계 논쟁을 통해 자율 검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검찰 주변에서는 서울대조사위원장의 진술이 바뀌고, 황 교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증언들이 잇따라 나오고, 황 박사가 출원한 특허가 ‘하자가 없다’는 쪽으로 기류가 바뀌는 것 등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둘째, ‘논문조작’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박사 연구팀의 결속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도 경기도의 연구지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황 박사는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배기열)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장상식, 강성근, 윤현수 등 논문 공동저자로 등재된 교수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감사와 사죄의 뜻을 전했다. 특히, 자신을 곤경에 빠트리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줄기세포 바꿔치기의 당사자 김선종 박사에 대해서도 변함없는 신뢰와 애정을 보냈다.

    황 박사는 김 박사에 대해 “살아오면서 김선종 박사처럼 성실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며 “이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범죄행위에 가담했거나 실행에 옮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만일에 김 박사가 그 성실성을 더욱 배가시켜 참회의 여생을 살아가겠다고 한다면 그를 연구팀에 합류시키고 싶다. 국민들이 꿈꿨던 그 과학의 열매를 김 박사와 함께 따고 싶다”며 재판부를 향해 선처를 호소했다.

    실제로 지난 6월 8일 ‘2009년 장영실상’시상식에는 이른바 ‘황우석 사단’이라고 불리우는 인물들이 총출동했다. 이병천 서울대 교수, 강성근 전 서울대 교수, 윤현수 한양대 교수, 김선종 박사 등이 참석하여 황우석 연구팀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이들은 황 박사가 자신이 이끄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2007년 9월 보건복지부에 체세포복제배아연구기관으로 등록한 후 지난 해에는 ‘에이치바인온’이라는 바이오 기업을 설립하여 주주겸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등 연구 재개를 위한 꾸준한 행보를 하고 있는 것에 상당히 고무되어 있고,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고 있다.

    ‘에이치바이온’은 법인 설립 목적을 ▲바이오 신소재 연구 ▲바이오 장기 연구 ▲동물 복제 연구 ▲핵이식 기법을 이용한 바이오 리액터 연구 ▲난치병 및 유전적 질환 모델 동풀 세포주 연구 등으로 명시했으며, 이들 연구와 관련된 제품의 제조/판매 및 수출입업을 병행하는 것으로 돼있다.
      
    국민여론도 황 박사의 연구 재개에 대해 우호적인 상황이다. 최근 이와 관련된 여론조사가 발표된 것은 없지만 작년 7월 리서치회사 ‘메트릭스’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제작팀 의뢰를 받아 실시한 온라인 패널조사(7월4일 1,000명, 95%신뢰도 3.1% 오차)에서 응답자의 88.4%가 황 박사가 연구를 “다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또한 그 이유에 대해“줄기세포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과학자이기 때문”(57.7%),“충분히 자숙했기 때문”(9.2%),“논문조작 잘못이 없기 때문”(9.0%) 등 의견을 나타내며 논문조작 여부에 상관없이 황 박사의 브랜드와 존재감에 상당한 기대를 표명했다.

  • ▲ 김문수 경기도지사 ⓒ 뉴데일리
    ▲ 김문수 경기도지사 ⓒ 뉴데일리

    김문수 지사의 황 박사 연구팀 지원 결정은 이 같은 여론의 물밑 흐름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기도의회의 발 빠른 움직임이 김 지사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23일  경기도 도의원 15명은 “황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여부를 떠나 관련 기술을 선점해야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며 무균돼지 등 사업을 적극 지원해 경기도가 입지를 선점하라는 내용의 건의안을 도의회에 제출했다. 충북도청, 부산시청, 서울 구로구청 등이 황 박사 연구팀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도가 먼저 치고나가야 한다는 도의회의 압박을 김 지사가 고려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정우택 충북지사는 26일 한 지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달 황 박사로부터 복제견 트래크 2마리를 받기로 약속했다"며 "우선 청주동물원에서 기르다 나중에는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등에 전시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허남식 부산시장도 지난 달 13일 부산에서 황 박사와 만나 연구지원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청 안팎에서는 ‘실용’을 중시하는 김 지사의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국제요트대회 유치를 통한 요트산업 육성 이야기를 김 지사가 처음 꺼냈을 때에 “우리 경제수준으로는 시기상조”라고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음에도 끝까지 밀어붙여 국제요트대회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무후무한 흥행성공으로 이어지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요트라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 수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 조건과 문화적 독창성에 크게 영향을 받는 점에 착안하여 지속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결과였다.

    이번 황 박사 연구팀 지원 결정도 논문 자체는 논란에 휘말려있지만 황 박사 연구팀의 실체 및 그 성과는 분명 과학의 현실 속에서 사실로 존재한다는 쪽에 김 지사가 무게중심을 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계 과학계에서의 황우석 박사의 '브랜드'가 여전히 막강하다는 것에 착안했을 것이다. 논문조작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황 박사와 논문의 공동저자였던 미국의 제럴드 새튼 박사가 관련 특허 출원을 취하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점에서 황 박사의 '브랜드 파워'를 실감할 수 있다.

    바로 이 같은 점 때문에 김 지사는 법의 심판은 법에게 맡기고. 국가 및 지역 경제 입장에서 황 박사를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실용적 접근’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학 발전에 획기적으로 기여한 것이 해부학인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해부학의 존립을 가능케 했던 토대가 바로 전쟁 중에 이루어진 사체 해부와 생체실험이었다. 지금의 인권상황을 놓고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참혹한 행위임이 분명하나 그로 인한 성과 자체는 부정당하지 않고 그대로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황우석 박사팀이 저지른 과오가 있다고 해서 그들이 이룩한 연구 성과를 모조리 부정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발등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김 지사가 “나중의 성과에 대해 분명히 책임지겠다”고 강조한 대목이야말로 앞으로 황우석 박사팀이 내놓게 될 연구 성과물에 대해 스스로의 정치생명을 걸만큼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문수 지사의 ‘실용’과 황우석 박사의 ‘브랜드’가 향후 국가경제 및 지역경제에 어떠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이제는 조용히 지켜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