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재철 월드피스자유연합 대표 ⓒ 조선일보
    ▲ 안재철 월드피스자유연합 대표 ⓒ 조선일보

    인생은 때로 아주 우연치 않은 기회에 바뀐다. 그것도 확!
    로또 맞은 것처럼 ‘인생 한 방’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1983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로 유학을 갔다. 석사 학위도 그 곳에서 받았다.
    미국 영주권 받아 뉴저지에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컴퓨터공학박사. 아이들도 공부를 잘하고 속 안 썩이는, 그야말로 여유로운 삶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발걸음 한 장례미사에서 인생이 바뀌었다. 확! 

    2001년 10월 14일. 안재철씨는 뉴저지주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벌어진 마리너스(Marinus) 수사(修士) 장례미사에 부인의 권유로 참석했다. 한인성당 성가대장을 맡고 있던 부인이 참석하게 돼 ‘수행’한 것. 그 장례미사에서 그는 고인 마리너스 수사의 젊은 날 행적을 듣게 됐다.

  • ▲ 마리너스 수사 ⓒ 뉴데일리
    ▲ 마리너스 수사 ⓒ 뉴데일리

    1950년 12월 21~23일 흥남부두에서 피란민 1만4000명을 부산으로 수송한 미군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Meredith Victory). 피란민들에게 생명과 자유를 찾아준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이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였고, 그가 바로 장례미사의 주인공 마리너스 수사였다.
    레너드 라루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1954년 뉴저지주 수도원의 수사가 되었고, 2001년 10월 사망할 때까지 수사로 근무했다.

    장례미사 참석을 계기로 안 씨는 그간 관심도 없었던 한국전쟁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흥남 철수 실화를 엮은 ‘기적의 배(Ship of Miracle)’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안씨도 한국전쟁을 연구하면서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 작전을 다룬 1117쪽 분량의 ‘생명의 항해’를 펴냈다. 그는 “흥남 철수를 ‘흥남 생명 구출작전’으로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을 알수록 한국전쟁의 의미를 널리 알려야 하겠다는 의지가 굳어졌다. 남의 나라는 기억하고 정작 한국 국민들에겐 잊혀져가는 전쟁. 과거에서,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민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움이 그를 끝없이 발품을 팔게 했다.    

    한국전쟁 동안 전투병을 파병한 나라는 미국·영국·터키·호주·캐나다·프랑스·그리스·콜롬비아·태국·에티오피아·네덜란드·필리핀·벨기에·남아공·뉴질랜드·룩셈부르크 등 16개국. 의무 지원을 한 나라는 5개국이고 물자 지원을 한 나라는 33개국에 이른다. 이중에는 우리가 고개를 갸우뚱 할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도 포함돼 있다.

    안 씨는 잊혀져가는 한국전쟁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전을 열기로 했다. 사진 수집을 위해 미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미국 국립자료보관청에서 6·25 사진들을 복사했고 참전 군인을 만나 개인이 소장한 사진을 얻어 복사했다. 2004년 9월 21일엔 ‘단 한 척만으로 1만4000명이라는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배’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기네스북에 등재시키기도 했다.

    2005년 여름부터 한국에 와 사진전을 시작했다. 지난해 6월 10일부터 두 달간은 청계광장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마침 촛불시위가 극성이던 그때, 시위대 일부가 사진을 불태우는 봉변도 당했다. 지난해 8월 15일 건국60주년 행사 때는 그의 사진이 청와대 본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 ▲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사진전. ⓒ 뉴데일리
    ▲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사진전. ⓒ 뉴데일리

    미국 전역에선 조기가 걸렸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거의 기억 못 한, 한국전쟁 휴전일이던 7월27일 안 씨의 사진전은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청계광장 사진전을 찾은 외국인들은 자신의 국기가 걸린 모습에 뿌듯해 하기도 했고, 어린이들이 전쟁의 참혹함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습도 보였다. 전시장 곳곳에 마련한 소감을 적는 난에는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는 고사리 손이 썼을 글도 보였다.
    “단순히 한국전쟁을 기억하게 하기 위한 행사만은 아닙니다. 폐허를 딛고 이룬 오늘의 번영을 이어가고 또 한층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키우는 자리였으면 합니다.”
    생활도 안 돌본 채 조국을 찾아 사진전을 여는 안 씨는 이제 월드피스자유연합 대표라는 명함을 갖고 있다.

  • ▲ 사진전을 본 소감을 적는 어린이. ⓒ 뉴데일리
    ▲ 사진전을 본 소감을 적는 어린이. ⓒ 뉴데일리

    “비단 한국인들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전시회장 한켠에 줄을 선 참전 54개국의 국기는 전시장을 찾는 외국인에게 또 다른 자부심을 준다.
    “한국도 이젠 다문화가정이 많잖아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한 여성은 자신의 친정 나라가 한국이 어려웠을 때 한국을 도왔다는 것에 대해 무척 긍지를 느끼는 듯 했어요. 아들에게 ‘네 외할아버지 나라가 한국을 위해 피를 흘렸다’고 말해주는 것을 보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안 대표는 “과거 우리를 도왔던 나라들이 비록 지금 우리보다 어렵더라도, 우리의 발전상을 보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6월 10일엔 그리스에서 온 할머니와 아들이 우연히 사진전에 들렀다.
    “할머니의 작고한 남편이 한국전 참전 용사였어요. 이들 모자(母子)는 그리스 군인의 사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그리스 군이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동료들의 사진을 보면서 돌아가신 부친을 떠올리며 감격하더군요.”
     
    안 씨는 곧 사진전 장소를 세운상가로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가까운 종묘공원에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때문이다.
    “그 분들이 피 흘려 지킨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리고 남다른 교육열로 오늘의 번영을 일구어내셨고요. 그분들에게 ‘이제 저희가 잘해나가겠습니다’라는 약속을 하고 싶습니다.”
    청계광장에서 나부끼고 있는 만국기 옆에 선 그의 키가 부쩍 커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