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교육 경감의 정치학'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권이 사실상 사교육과의 큰 전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중도'와 '친서민'을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3일 강력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주문하자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즉각 '7대 긴급대책'으로 화답하고 나서면서 그 향방이 주목받고 있다.

    사교육 근절 대책은 역대 정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어느 정권에서나 화두였지만 결과는 "돌고 돌아 제자리"(국정 브리핑)에 그쳤다. 사교육 팽창이 단순한 교육문제의 반영이 아니라 학벌사회를 비롯한 고질적인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와 얽힌 탓이다. 사교육 근절의 정치학이 사실상 사회의 틀을 조정하는 문제와 관련돼 있는 것이다.

    이 정권에서 다시 울려퍼진 '사교육과의 전쟁'이 반복돼왔던 구호에 그치지 않고 손에 잡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가장 화끈한 사교육 근절대책을 추진했던 것은 전두환 정권이었다. 1980년 7월30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대학졸업정원제와 과외 전면금지를 골자로 한 7.30 교육개혁조치를 단행했다. 신군부에 적대적인 측들조차 이 조치에 박수를 보냈다.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 문교공보분과 위원으로 참여한 정태수 당시 문교부 대학교육국장은 2007년 국정브리핑 인터뷰에서 "그때 민심은 '과외만 잡아라, 그러면 대통령 시켜준다'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신군부는 과외근절을 통해 정통성 획득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겨냥했고, 전두환 당시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한달여 뒤 대통령에 취임한다.

    하지만 과외세력을 정화대상으로 규정하며 벌어졌던 전두환 정권의 과외근절책은 '몰래바이트' 비밀과외'를 성행케 하는 등 일부 상류층의 고액과외만 부추기며 사실상 실패했다.

    앞선 박정희 정권도 1968년 7월15일 중학입시의 무시험제도를 도입한데 이어 1974년 고교 평준화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과외전쟁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교로 그 터를 옮겼을 뿐 진정되지 않았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권은 결국 1997년 교내 과외교습을 허용했다. 위성방송을 통한 과외 강의였다. 국민들의 과외 열망을 도외시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래도 비밀.고액과외는 여전했다. '족집게 과외'라는 용어가 매스컴을 장식했다. 서울대총장을 비롯한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족집게 과외강사를 이어준 수천만원짜리 고액과외사건이 터져나왔다.

    김대중(DJ) 정권에서는 1998년 문용린 당시 교육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한 사교육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해체됐다. 정부는 고액과외 특별단속대책반 등을 편성해 합동단속을 벌였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어떤 과외정책도 통하지 않게된 셈이었다. 결국 2000년 4월27일 헌법재판소는 1980년의 과외금지조항이 위헌(違憲)이라고 판결했다.

    이러는 사이 서울 강남 대치동이 사교육의 메카로 떠올랐고, '대치동 엄마'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로 사교육은 기승을 부렸다.

    노무현 정부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정권공약으로 내걸고 출범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당시 2조5천억원에 머물던 사교육비는 노무현 정권들어 105조원으로 불어났고, 조기유학 열풍까지 불며 '기러기 아빠'가 등장하는 등 사교육 문제는 광풍으로 치달았다.

    사교육비 경감과 공교육 정상화의 논리로 추진된 수능등급제 카드는 큰 반발과 혼선을 불렀다. 단순히 입시제도를 바꾸는 것으로 자녀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세태를 막을 수 없음이 확인됐고, 평준화 정책은 공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사교육의 영역만 키우는 꼴을 낳았다.

    상대적인 진보정권으로 평가받는 DJ,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사교육은 정권의 중요한 지지층을 허물어뜨릴 정도의 병리적 상황으로 치닫으며 오히려 무한확대 양상을 보였다.

    이 대통령이 "과거에는 없는 사람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었으나 사교육 부담이 커지면서 점점 서민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이번 정권은 이른바 '빈곤의 대물림'을 끊고자 하는 강력한 사교육 근절 대책을 추진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는 이번 정권의 사교육 경감대책의 정치적 과녁이 어디인지를 짐작게 한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여의도연구소 소장인 진수희 의원 등 정권 핵심인사들이 전면에 나선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고교 1학년 내신성적을 대학입시에 반영하지 않고 현행 9단계의 상대평가를 5단계의 절대평가로 바꾸는 내신파괴 방안 등도 강력한 방안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번 정권이 사교육 광풍을 잡을지는 미지수다. 현 정부의 특성화 교육 지향은 그 자체로 사교육의 토양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내신의 절대평가화는 내신 무력화로 이어질 수 있다. 사교육의 무리한 규제는 과거와 같은 사교육 음성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이 중도.친서민 정책을 주창하면서 나온 첫 어젠다가 사교육 경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 대책의 성패가 MB정권의 미래에 작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