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화되고 있는 국회파행에 대한 김형오 국회의장의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일 저녁 6시에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김 의장을 향한 노골적 불만이 주를 이뤘고, 전반적으로 강경기류가 흘렀다. 꼬일대로 꼬인 정국의 매듭을 잘라주지 않는 김 의장의 '역할 부재' 때문에 그의 친정격인 한나라당에서조차 의장을 향한 성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 의장에 대한 한나라당의 서운함은 권경석 의원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면 집토끼(한나라당)라도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발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한나라당이 불만으로 삼는 것 중 하나는 김 의장에게 직권상정과 본회의장 질서유지에 대한 결단을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김 의장의 별다른 액션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 장기파행과 여야 쟁점법안 협상 난항의 책임을 전적으로 김 의장을 탓으로 돌리고 있다. 구랍 18일'외통위 전기톱 난동'부터 시작해 연말을 넘긴 여야 쟁점 법안 협상 난항에 이르기까지, 제 역할 없이 회피로 일관한 김 의장의 정치 리더십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날 열린 의총에서는 김 의장에 대한 성토가 봇물을 이뤘다. '의장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손범규 의원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려는 의장"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고, 손숙미 의원은 "김 의장이 너무 몸을 사린다"고도 했다. 차명진 대변인은 "법안 통과를 위해 어떤 난관도 불사해야 하는데도 의장은 직권 상정을 안 하겠다고 발뺌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앞서 홍준표 원내대표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김 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놓고 싹싹 빌어서 자기 방(의장실) 점거 하나만 풀었다"며 "또 (의장이)빌면 (민주당이)본회의장도 비워 주지 않겠느냐. 이게 무슨 질서유지권 발동이냐"고 따졌다. 의총에서 홍 원내대표는 재차 이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임동규 의원도 "김 의장이 이미지만 염두에 둬 점거 사태에 아무 힘도 쓰지 못했다. 직무 유기다"고 지적했다. 당내 온건파인 조해진 의원조차도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의장을 잘못 뽑은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할 정도다.

    자유선진당의 김 의장 비판도 만만치 않다. 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이날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일찍부터 (김 의장이) 직권중재니 하면서 직권 소리를 남발하니까 '직권의장'이란 별명이 나온다"고 비난했다. 이 총재는 "본회의장 점거가 불법적이라고 판단되면 불법을 바로잡는 게 의장 권한 아니냐"면서 "직권상정이니 뭐니 말만 해 놓고 그 다음엔 흐지부지 끌고 가고 그러다가 또 직권상정한다고 나오면 여야에 설득력이 없어진다"고 꼬집었다.

    한나라당은 의총 직후 국회 로텐더 홀에서 가진 결의문 낭독에서도 김 의장 비판을 이어갔다. 한나라당 의원 일동은 "국회의장은 민주당에만 눈치 볼 것이 아니다. 난장판 국회를 조속히 바로잡아야 할 국회의장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게 국회의 현주소"라며 "국회를 정상화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국회의장이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라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