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 '동서남북'에 이 신문 박두식 정치부 차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4년 전 열린우리당은 '108번뇌 당(黨)'이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4·15 총선에서 국회 과반 의석보다 두 석 더 많은 152석을 얻었다. 이 중 71%나 되는 초선들을 부르는 이름이 '108번뇌'였다. 매사에 좌충우돌,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총선 한 달여 뒤에 열린 첫 워크숍에서 선배들이 "군기 좀 잡겠다"고 하자, 이들은 "물어 뜯겠다"며 덤벼들었다.

    이들의 또 다른 이름이 '탄돌이'이다. 이 말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 덕분에 지갑 줍듯 국회의원이 됐다는 비아냥이 담겨있다. 물론 108명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이 중에는 운동권 386뿐 아니라 기업 CEO(최고경영자)와 노동운동가, 전직 장관 등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돼 있다. 각 분야에서 나름의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 초선 하면 108번뇌니, 탄돌이니 하는 비난이 쏟아진 것은 일부 '완장부대'의 활약(?) 덕분이다. 친노 또는 좌파 이념 부대의 전위처럼 나선 이들의 기세에 눌려 당 지도부는 침묵했고, 결국 당 전체가 동반 몰락했다.

    정치적 격변기에는 신인들이 대거 등장하곤 한다. 미국에서도 공화당 소속 대통령인 닉슨(Nixon)의 하야를 가져온 워터게이트 스캔들 직후 치러진 1974년 선거에서 75명의 민주당 신인들이 연방 하원의원에 뽑혔다. 이른바 '워터게이트 아이들(Watergate Babies)'이다. 미국 하원의 권력을 40여 년 만에 공화당 쪽으로 돌려 놓은 1994년 선거에선 공화당 신인 73명이 당선됐다. 자칭 '공화당 혁명'을 주도하던 깅리치 하원의장의 이름을 따 '깅리치 갱(Gingrich gang)'이란 별명을 얻었다.

    지난 4·9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4년 전 열린우리당보다 1석 더 많은 153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 중 53.5%에 해당하는 82명이 초선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 전체 의석보다 1석 더 많다. 한나라당은 물론 국회의 흐름을 좌우할 수도 있는 만만치 않은 규모다. 이들은 작년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이명박 대통령의 '후광(後光) 효과'를 누렸다는 점에서 'MB 신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규모의 신인들이 정치권에 등장하면 기존 질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워터게이트 아이들, 깅리치 갱, 108번뇌 모두 그랬다. 워터게이트 아이들은 비밀로 가득 찼던 미국 의회 운영을 공론의 장(場)으로 끌어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깅리치 갱은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302건의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미국에서도 종종 이 같은 신인들의 과잉 의욕에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들이 소명(召命) 의식에 충실했던 점만큼은 긍정 평가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108명은 끝내 '완장부대'라는 이미지의 굴레를 털어내지 못했다. 90% 가까운 재선율을 보인 미국의 신인들과는 달리 108번뇌는 67.6%인 73명이 지난 총선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우리 국민들은 총선 때마다 국회 의석의 절반 가량을 신인으로 채우는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4년 주기의 정치 사이클이다. MB 신인들이 이 시험을 어떻게 통과할까? 답은 의외로 쉬운 데 있을 수 있다. 과반 여당을 만들어준 국민의 뜻은 정쟁보다는 민생, 이념 대결보다는 정책·비전의 경쟁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치인 모두가 잘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MB 신인들에 대한 평가는 이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