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은 31일 국가 원로급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회동을 갖고 국정 전반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남덕우 강영훈 이홍구 박태준 고건 전 총리를 비롯해 조순 전 서울시장, 강신석 전 5.18재단이사장,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창성 전 경총회장,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이인호 전 주러시아 대사 등 관계·학계·경제계 및 시민사회 분야 원로가 참석했다.

    이날 회동에서는 고건 전 국무총리가 한반도 대운하에 관심을 나타내 눈길을 끌었다. 고 전 총리는 "(교토의정서에 따라) 2013년 이후 우리가 의무국에 들어가는 데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가적 전략이 시급하다"며 운을 뗐고, 이 대통령은 "그래서 청와대 산하에 기후변화대책위를 만들었다"며 대운하 언급을 피해갔다. 국제적 환경에 맞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대운하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줄곧 강조해온 부분이다.

    고 전 총리는 곧바로 "요즘 대운하 문제가 나오는데 내 생각 같아서는 공개적이고 실질적인 찬반토론을 거쳐 결정해야한다"며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밀실추진' 비판을 전했고, 이 대통령은 "선거 때가 돼서 정치적 이슈가 됐지만 국내외 전문가를 전부 모셔다 충분히 의견모아 논의하려고 한다"며 기본 원칙을 밝혔다. 이에 이홍구 전 총리는 "새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받았으며, 김진현 전 경총회장은 "21세기 정부는 물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가 물 부족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각계 원로들은 국가 정체성 확립, 에너지 확보 방안, 낙태와 사교육비 문제, 규제개혁 등 사회 여러 분야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남덕우 전 총리는 "2012년까지 지금과 같은 고유가시대가 되면 결국 세계 불황을 가져올 것"이라며 "미국이 원자력을 다시 본다는 것에 주목해야한다"고 지적했고, 이 대통령은 "에너지 문제는 결국 원자력으로 가는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또 이홍구 전 총리, 김진현 전 회장, 서영훈 전 총재, 이인호 전 대사 등은 "국가의 이념을 제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건국기념관 설립을 건의했다.

    서영훈 전 총재는 "우리나라 자살 낙태가 세계적일 것"이라며 인명경시풍조를 경계했다. 서 전 총재는 "생명존중운동을 폈으면 좋겠다"며 "국민화합과 생명의 운동에 이 대통령께서도 많이 염두에 두고 선도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강신석 전 이사장도 "정부가 구체적이고 강력한 대책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이 대통령은 "비공개 숫자는 더 많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 뒤 "낳아서 맡기면 책임지고 키워줄 수 있는 제도를 연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사교육비 문제를 지적하며 이인호 전 대사는 "그냥 사교육비를 줄이는 차원이 아니라 사교육으로 들어가는 돈을 공교육으로 어떻게 끌어들이는가 하는 식으로 구조적인 접근을 해야한다"고 강조했고 이 대통령은 "없는 집 학생은 장학제도를 상당히 보강하려고 한다"며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교육' 의지를 재차 밝혔다. 조순 전 총리는 "우선순위의 문제인데 낙태나 인구, 사교육비와 같은 미시적인 부분을 전체적으로 파악해 전문가들과 함께 점검해야한다.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하고 애 낳기 실허하는 모든 것들이 연계돼있다"고 설명했다.

    남덕우 전 총리는 또 "규제개혁이 문제인데 무엇을 어떻게 규제하고 있는 지 총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면서 "전 규제를 코드화해 컴퓨터에 입력해놓고 효율적으로 해야지 단편적으로 완하하면 기준이 없어서 안된다"고 진단했다. 이 대통령은 "골프장 허가 내는데 대한민국은 770개 도장을 찍어야한다고 한다"면서 "허가 내는 동안에 땅값은 다 올라버린다. 공장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청와대측은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고 국제적 경제위기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모으자는 차원에서 이 대통령의 제안으로 마련된 것"이라고 이날 회동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인 점을 의식해 "일찍 (자리를) 하고 싶었는데 선거철이라서 (조심스러웠다)"라면서 "선거철에 하면 이상할 것 같았는데 선거 끝나면 곧바로 미국에 가서 돌아오면 늦을 것 같아 선거에 관계없이 모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