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이 쓴 '종교와 정치 사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얼마 전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들으려고 해서 들은 것이 아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산에 갔는데 등산로 초입에 있는 절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이번에 똘똘 뭉쳤어요. 그래서 대통령도 나오고, 중요한 자리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다 차지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불자(佛子)들은 뭐 하고 있나요…. ”

    스님이 신도들을 모아놓고 조용히 설법하는 자리였다면 지나가던 내가 들었을 리 없지만 사찰 마당 나무에 걸린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를 피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스님의 말씀은 “그러니 더욱 더 열심히 절에 나와야 한다”며 불심(佛心)을 채근하는 당부로 은근슬쩍 넘어갔지만 나도 모르게 장탄식이 나왔다.

    ‘고소영’이니 ‘신(新)SKY’니 뭐니 해서 새 정부 인사(人事)를 보는 눈이 가뜩이나 곱지 않은 마당에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된 김하중 주중(駐中)대사가 유별난 신심(信心)을 과시해 화제다. 청와대의 인사 발표가 있고 난 뒤 베이징에서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그는 북한 동포를 위해 눈물로 기도한 일화를 소개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갔을 때 백화원 초대소에서 기도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북에도 축복을 많이 주셔서 발전하고 남북관계가 좋아져 잘살고 번영된 나라를 이루고, 통일도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방에서 무릎 꿇고 아침·저녁으로 기도했다”고 했다. 대북정책을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답하면서 한 말이다.

    중국인을 위해 기도한 얘기도 했다. 1995년 중국인 친구 20여 명을 위해 기도를 시작한 것이 지금은 80여 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도해 온 사람 중 현직 부장(장관)만 5명이고, 21~22명이 전·현직 부부장(차관)급이라는 ‘실적’도 공개했다. “그 사람들이 나를 너무 사랑한다”는 말도 했다. 중국 내 인맥을 자랑하는 말 같기도 하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리콴유 전 총리는 자서전에서 재임 기간 중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 쓰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시행착오 끝에 그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균형 감각과 현실 감각으로 대표되는 인성이라는 결론을 얻었고, 이를 평가하기 위해 심리 테스트까지 동원했다고 털어놓았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과 현실에 입각해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할 줄 아는 현실 감각을 국정을 책임지는 인재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은 것이다.

    정교(政敎)분리 원칙이 엄연한 나라에서 종교는 개인의 문제지 국정 수행과는 무관한 문제다. 대북정책을 묻는데 북한을 위해 기도했다는 얘기는 왜 하는가. 공직자로서 균형 감각을 갖췄다면 정책을 묻는 공적인 자리에서 개인의 종교에 얽힌 얘기를 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논문 중복 게재에서 땅 투기 의혹까지 갖가지 이유를 들어 야당이 임명동의를 거부한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사회복지 정책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은 신앙심’이라는 요지의 칼럼을 신문에 기고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그 글이 실린 특정 일간지의 성격을 감안해 일부러 그렇게 썼는지 모르지만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현실 감각의 부재를 자인한 꼴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한다”고 했다가 엄청난 곤욕을 치렀다. 신앙의 자유에서 공직자도 예외는 아니지만 공사(公私) 구분은 엄격해야 한다. 종교 때문에 나랏일에서 균형 감각과 현실 감각을 잃었다는 소리가 나와서는 안 된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어제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을 만났다. 새 정부 인사를 둘러싼 불교계의 불만을 다독이자는 것인지, 총선을 앞두고 불심을 잡겠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또한 왠지 이상해 보인다. 사찰 마당의 스피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든 종교와 정치 사이는 멀수록 좋겠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