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2일 오피니언면에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가 기고한 글인 '국가인권위원들은 사퇴하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올해 업무계획에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활동 강화'를 6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포함시켰다. 노무현 정권 내내 북녘 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다시피 한 국가인권위원회가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이를 "북한 인권 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 접근해야 한다"는 이명박 당선자와의 코드 맞추기라고 이해해야 할지, 아니면 이제서야 인권위가 보편적 가치의 의미를 깨달은 것인지 의아할 뿐이다.

    인권위는 2006년 12월 11일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조에 "이 법은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에 대하여 적용한다"는 규정을 들어 북한 내부 주민 인권은 조사 대상이 아니다, 즉 자신들의 소관 사항이 아니라고 사실상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것은 궤변이었다. 한글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이 규정이 대한민국 영역 안에 있는 사람에게 '만'(only) 적용한다고 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대한민국 실효 지배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적용해선 안 된다"는 규정도 국가인권위원회법 어디에도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이 규정 때문에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기가 어렵다면 이 법조항을 고쳐 달라고 국회에 권고안을 낼 수도 있었다. 의지만 있었더라면 말이다.

    그 이후로도 인권위는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라는 내외의 압력을 의연하게 거부해 나갔다. 2007년 10월 4일 정상회담 직전에도 인권위 내외부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의제로 채택할 것을 권고하자는 안건이 올라왔으나 이를 거부했다. 또 노무현 정부가 2006년에는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찬성했으나 2007년에는 그걸 뒤집는 황당한 모습을 보고도 인권위는 의연하게 침묵했다.

    인권위의 자기 기만은 이뿐만이 아니다. 인권위는 북한은 대한민국 실효 지배권이 아니라고 외면했으면서도 이라크, 버마에 대해서는 마치 실효 지배권이 있는 것처럼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라크 민간인의 무차별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전쟁이 더 이상 지속되는 것을 반대한다."(2003년 3월 26일 인권위 보도자료)

    그뿐 아니라 2007년 9월 말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태지역 국가인권위원회 연석회의에서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은 버마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서명을 했다. 이라크, 버마 인권은 이야기하면서 북한 인권은 왜 거론 못했을까? 이랬던 인권위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려 하자 슬그머니 '북한 인권' 문제를 자신의 업무 영역에 포함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인권위는 북한 인권 문제를 은근슬쩍 거론하기 전에 그동안 북한 인권을 두고 궤변을 일삼아 온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먼저 해야 한다. 동시에 인권위원들은 역사와 국민 앞에 공동의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해야 한다. 그것이 일을 풀어가는 올바른 순서이다.

    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은 진정성, 일관성, 지속성을 그 본질적 특징으로 한다. 때문에 이미 일관성과 진정성을 잃어버린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새삼 제기하겠다는 것은 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부합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비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왕 흠집이 난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니라 북한 인권을 전담하는 조직을 새롭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북한인권재단과 같은 것을 만들어 북한 인권 문제는 핵 문제와 별도의 민간 트랙에서 다루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