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 '전문기자 칼럼'에 이 신문 유용원 군사전문기자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나는 대통령에게) 우리가 다음 전쟁에서 패배해 한 미국 청년이 적의 총검에 찔려 진흙에 누워 있고, 죽어가는 청년의 목을 적이 발로 밟았을 때, 청년이 마지막 저주의 말을 내뱉게 된다면 그 내뱉게 될 말은 ‘맥아더’가 아닌 ‘루스벨트’라는 이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잿빛으로 변했다. 이 순간 나의 군생활이 끝났음을 느꼈고 대통령에게 참모총장 직책을 사임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주역 맥아더 장군이 참모총장 시절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한 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의를 표명했을 때를 회고한 대목이다. 1933년 루스벨트가 육군 예산 삭감을 추진하자 맥아더는 직(職)을 걸고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당시 루스벨트는 맥아더에게 “당신은 대통령에게 그렇게 대들면 안되지 않소”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맥아더의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루스벨트로부터 충분한 예산지원을 약속받았고 그 뒤에도 루스벨트가 각종 정책에 대해 허물없이 의견을 구하는 관계가 됐다.

    미군 장군 가운데엔 맥아더처럼 한때 대통령을 비롯한 상관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아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 대성(大成)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조지 마셜(국무·국방장관 역임)도 루스벨트에게 ‘예스맨(yes-man)’이 아니었지만 중용(重用)됐다.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역임한 콜린 파월이 준장 시절 그의 사단장인 존 후드첵 소장에게 부대 운용상의 문제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사단장은 파월에 관해 형편없는 근무평가서를 작성했다. 파월은 이 보고서로 인해 그의 군생활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던 샤이마이어에 의해 소장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

    100여 명의 대장급 장성들과 1000여 명의 여단장급 이상 장성들에 대한 각종 자료를 집대성해 미군 장성들의 리더십을 심층 분석한 ‘아메리칸 제너럴십(American Generalship)’의 저자 에드거 퍼이어는 “미국에서 성공한 대부분의 군 지도자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대의견을 자유롭게 제기하는 부하들이 있었다”며 “최고의 군 지도자들은 부하들의 이러한 소신을 받아들였다”고 지적했다. 본인들이 예스맨이 아닌 경우가 많았을뿐더러 부하들도 비(非)예스맨을 두고 이들의 고언(苦言)을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걸프전의 영웅 슈워츠코프 장군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예스맨 무리’들”이라고까지 말했다.

    김장수 국방장관의 언행과 소신이 화제다. 지난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꼿꼿이 인사를 한 것에서부터 최근 국방장관 회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켜낸 것 등에 대해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야당 의원이 김 장관을 치켜세우는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지난 93년 이른바 문민정부 출범 이후 10여 년간 군 수뇌부가 온갖 비리나 저지르고 권력 핵심부의 눈치나 보는 존재로 국민들의 눈에 비쳐 곤욕을 치러 왔던 것에 비춰 볼 때 참으로 이례적인 현상이다.

    김 장관을 둘러싼 세간의 반응과 평가는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군 수뇌부에 대해 어떤 인식과 평가를 갖고 있었고 무엇을 기대해 왔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 군 수뇌부는 물론 앞으로 군 수뇌부가 되고자 하는 직업군인들도 이런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