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6일자 오피니언란에 실린 이 신문 강천석 주필의 글 <교육 포퓰리즘, 죄(罪)는 누가 짓고 벌(罰)은 누가 받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집안 대대의 웃어른 그리고 얼마 전 세상을 버린 남편 역시 그곳에 모신 선산(先山)이 하루 아침에 남의 땅이 돼 버렸다. 법(法)에 밝은 마을 사람이 문서를 위조해 땅을 가로채 버린 것이다. 부인은 그러나 끝 모를 송사(訟事)에 매달리지 않았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곧게 자란 여섯 자식을 그 집으로 보내 무언(無言)의 시위를 벌이도록 했다. 심보 고약한 마을 사람도 이 아이들의 야무진 눈빛에 질려 빼앗은 땅을 토해놓고 말았다. 50년 전 이웃 어른들이 자식 농사만큼 큰 농사가 없다며 늘 들려주던 이야기다.

    일본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1603~1867)시대에 한 많고 설움 많던 고장이 사쓰마(薩摩)와 초슈(長州)라는 곳이다. 도쿠가와가(家)와 도요토미가(豊臣家)가 벌인 천하 쟁패 싸움에서 도요토미 쪽 편을 들었다 해서 260년 내내 중앙 정계에서 찬밥을 먹었다. 이 사쓰마와 초슈가 연합해 도쿠가와 바쿠후를 뒤집어 엎은 것이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다. 사쓰마와 초슈의 힘은 다른 지방에 비해 인구비례 학교 숫자가 3~5배나 많고, 케케묵은 옛 굴레를 벗어던지고 영국과 프랑스의 신(新)문명을 흡수·소화한 교육 내용에서 왔다.

    1851년 5월 1일 영국 런던에서 제1회 만국(萬國)박람회가 열렸다. 전 세계 육지의 0.2% 면적, 인구 2000만명 언저리의 영국이 세계 정치와 경제를 주름잡던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ICA)의 절정기였다. 이 박람회에서 영국은 최우수 출품작에 수여하는 ‘카운슬 메달’ 170개 중에서 78개를 휩쓸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으로 박람회를 주관했던 앨버트 공작은 영국 최대 수출품인 철강산업의 카운슬 메달이 독일 크루프사(社)에 넘어간 대목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그후 앨버트 공작은 영국 교육의 혁신, 특히 대학 교육의 대쇄신이 절실하다고 역설하고 다녔다. 그러나 아무도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즈음 경쟁국 독일은 영국에는 1개도 없는 전문 공과대학을 11개나 설립하고 20개 대학에선 체계적 공학(工學)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방심(放心)의 결과는 1889년 프랑스 만국박람회에서 930개 최우수상 중 59개를 겨우 건진 영국의 초라한 성적으로 나타났다. 독일은 1885년 영국의 자존심이던 철강산업에서 영국을 추월했고, 영국 경제는 이후 내리막길을 굴러내려 갔다.

    1957년 10월 4일 미국 전체가 잠시 얼이 빠진 듯했다. 까마득하게 뒤처진 공산 독재의 나라라고 여겼던 소련이 세계 최초로 지구 궤도에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렸다는 긴급 뉴스의 쇼크 때문이었다. 이 뉴스는 미국 국민의 자신감과 미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길을 함께 흔들어 놓았다. 이 사태 앞에서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MIT 학장 제임스 킬리안을 대통령과학자문회의의장으로 임명, 과학 교육 커리큘럼 혁신을 이끌도록 하고, 미국 의회도 미국과학재단(NSF) 예산을 57년 3400만달러에서 58년 1억3400만달러로 400%나 파격 증액하는 예산안을 승인, 대학의 연구·개발을 지원하게 했다. 이 시절 미국 교육의 이런 자기 반성이 없었던들 1969년 7월 20일 달에 첫발을 내디딘 인물은 미국인 닐 암스트롱에서 소련인 누구로 뒤바뀌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교육의 본래 목적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이 힘의 바탕은 저마다의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해 쌓아가는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다. 얼마 전 한 조사에서 우리 고교생들은 ‘공부가 싫다’(8.8%) ‘공부할 의욕을 잃었다’(16.4%)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18.5%) ‘그냥 수업만 따라갈 뿐’(23.7%)이라며 67%의 학생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행복한 인생을 향한 꿈을 접어버렸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자식들의 ‘긴 하루 짧은 인생’이 교육 평등이란 포퓰리즘 선동 구호 아래 무너져 망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교육 포퓰리즘을 ‘후세(後世)에 대한 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선동정치인들과 어리석은 국민이 거짓 평등과 표(票)를 맞바꿔 나라를 망치고 사라져 버린 다음에 애꿎은 다음 세대가 그 벌(罰)을 대신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교육 포퓰리즘의 죄(罪)와 벌을 함께 추궁하는 역사의 법정(法廷)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