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에 김인규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시론 '운하를 넘어, 여몽(呂蒙)을 넘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관우(關羽)의 최후는 삼국지에서 안타까운 장면의 하나다. 어떻게 당대 최고의 장수가 하찮아 보이던 오(吳)나라 여몽(呂蒙)에게 어이없이 사로잡혀 죽었을까? 교만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관우는 위급시 봉화로 연락하는 ‘봉수대(烽燧臺) 전략’에 안주해 새 시대의 젊은 영웅 여몽이 새로운 전략으로 무장한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게 가까스로 이겼다. 아마 박 전 대표가 현대판 여몽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이 후보를 잡으려는 여몽이 범여권 어디엔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이 후보는 경선 승리의 도취감에서 하루빨리 깨어나 새로운 각오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박 전 대표의 적극적인 협력을 구해야 한다. 아울러 당내 경선에서 제기되었던 각종 의혹들이 본선 네거티브(음해·비방)의 소재로 악용되지 않도록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우선,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 대운하를 이 후보가 쉽게 접을 수 없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①홍보가 미흡했고 박 전 대표 측의 문제 제기가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생각 ②청계천 복원에서 거둔 성공의 추억 ③‘간판 상품’인지라 거둬들일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것.

    우선 첫 번째 이유부터 살펴보자. 1일 SBS가 실시한 대운하 관련 여론조사에서 ‘근본적 재검토’ 42%, ‘보완·수정’ 37%, ‘유지’ 12%로 각각 나타났다. 이는 앞으로 홍보를 강화하더라도 범여권의 공세를 고려하면 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명박은 좋은데 제발 대운하는 하지 말라’는 식자(識者)층의 거부감은 박 전 대표 측의 논리가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후보는 대운하가 ‘관우의 봉수대’가 안 되도록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다음으로, 청계천 복원의 성공을 대운하로 연결해서는 곤란하다.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면 청계천은 정상재(正常財)지만 운하는 열등재(劣等財)라고 할 수 있다. 소득이 증가할 때 수요가 느는 정상재와는 반대로 열등재는 소득 증가시 수요가 감소한다. 우리가 흔히 ‘싸구려’라 부르는 상품들이 열등재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정상재였던 청계고가도로는 우리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열등재로 변해 갔다. 이 후보는 서울시장 재직 시 현대건설에서의 경험을 살려 그 열등재를 정상재인 청계천으로 복원해 대성공을 거뒀다. 시대의 변화를 잘 읽었던 것이다.

    이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박 대통령도 경부 운하를 추진했었다며 박 전 대표를 비판했다. 그러나 만약 그 시절 운하가 건설되었더라면 지금쯤 열등재로 바뀌었을 그 운하를 정상재인 자연 하천으로 복원하는 작업이 대선 공약으로 큰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범여권이 대운하 비판의 포문을 열고 여기에 좌파 시민단체들이 선동적으로 거들고 나서면 이 후보는 정말로 힘든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네거티브에서 열세가 예상되는 그인지라 정책 경쟁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가면 대운하는 계륵(鷄肋)이 되어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끝으로, ‘간판 상품’을 거둬들일 명분의 문제다. 다행히 이 후보에게는 명분을 살릴 기회가 딱 한 번 남아있다. 그가 박 전 대표를 찾아가 협력을 구할 때 대운하 포기나 연기를 약속하면 된다.

    이 후보가 혹시라도 교만해져 박 전 대표의 ‘적극적’ 협력을 과소평가하며 대운하를 추진한다면, 그때는 범여권의 여몽이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