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화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지속적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유럽과 북미의 사례뿐만 아니라 경제발전 이후 권위주의 국가모델에서 탈피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케이스가 이를 경험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반면 경제발전에 실패한 중남미와 동유럽의 국가들은 아직 권위적인 정권의 지배하에 놓여있거나 민주화의 과도기에서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수 백 년의 시간대를 필요로 했던 서구의 경험과 달리 한국은 전쟁의 참화 이후 놀라운 속도의 압축성장을 이룩했다. 한국의 경험은 세계사의 조류를 감지하고 경제발전의 새로운 틀을 제기할 수 있는 예지와 이를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리더십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정치에서 리더십의 역할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근대가 도래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경험을 공유했던 중국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사회주의 혁명 이후 이데올로기 투쟁의 필요성에 매진했던 중국은 개혁과 개방 이전까지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궁핍화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19세기말 자력에 의한 근대화가 실패한 상황에서 서구의 침략을 바라보는 중국 지식인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화이사상(華夷思想)에 기반한 중화주의의 복구를 통해 부국강병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면 중국의 굴욕을 가져온 전통질서를 부정하며 서구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서구문물의 도입을 강조한 부류가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통과 근대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위의 지적 흐름은 서구근대화가 지니는 침략성과 자본주의의 폐해 그리고 전통 중화사상이 기반하고 있는 봉건주의의 병폐를 거부하는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과 당시 광범위하게 유포되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중국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호소력을 발휘하며 중국의 미래를 개척하는 대안으로 인식되었다.

    중국의 경우 사회구조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동원여부가 혁명의 성패를 가늠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대두되었으며 혁명의 주력부대로 농민을 편입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국공산당은 점령지역에서 적극적인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한 이후 중국공산당은 인민공사를 근간으로 농업의 집산화를 추진하면서 토지개혁을 통해 분배된 사적 토지를 강제로 징발했고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인간사상 개조에 매진했다. 모든 사회 에너지가 이데올로기 투쟁에 매몰되는 과정에서 중국은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는 효율적인 관료체제를 형성하는데 실패했고 이는 결국 중국경제의 장기적인 침체와 저발전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혁명 이후 사상개조에 치중한 나머지 물질적 토대의 중요성을 경시한 중국의 사례는 구질서 타파에 성공했다 할지라도 산업화에 실패했을 경우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좌절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이데올로기 논쟁에서 탈피하여 산업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오늘 날 중국정부의 경제정책 하에서 중국이 점진적인 법적 제도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화의 초석단계로써 산업화가 지니는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혁명 이후 중국과 달리 한국은 박정희의 주도하에 경제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효율적인 관료시스템을 구축했다. 박정희 시대에 이루어진 산업화가 결국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무너뜨리고 한국의 민주화를 추동 할 수 있는 중간계층과 시민세력을 태동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또한 후발주자의 불리함을 딛고 세계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구축된 효율적인 관료시스템이 한국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도 이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과 중국은 근대화의 실패로 인해 서구 열강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쓰라린 기억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근대화의 과정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한 중국과 달리 산업화를 통해 근대화에 성공한 한국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도 민주주의를 향한 획기적인 구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외세에 의해 고통 받은 경험을 통분하고 있는 두 나라지만 이후 서로가 선택한 상이한 과정은 한국에서는 산업화의 성공과 함께 민주화라는 값진 선물을 획득할 수 있게 작용한 반면 중국에서는 산업화를 위한 기나긴 여정에서 발생하는 사회갈등을 누적시키고 있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 리더십의 차이점이 주는 교훈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변증법적 과정을 성공적으로 개척한 한국이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것과 달리 중국은 한국의 경험을 되살리기 위해 뛰어든 뒤늦은 산업화와 요원한 민주화의 과정에서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