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에 황태연 동국대 교수가 쓴 시론 '뜨는 575세대, 뜨는 중도노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계층·지역과 함께 ‘세대’도 주요 정치변수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우리는 4·19 및 6·3세대, 475세대(40대 나이, 70년대 학번, 50년대생), 386세대(30대 나이, 80년대 학번, 60년대생)를 구별해 왔다. 386은 ‘82학번’으로 자임하는 노무현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소위 ‘낀 세대’인 475를 제치고 나라의 권력코드로 부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변화가 일고 있다. 386정권과 (486으로 변신 중인) 386들의 가치폭락과 반비례로 475세대가 50대의 ‘575’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낀 세대’를 탈피하여 조용히 각분야의 최고지도층으로 떠오른 것이다.

    575세대는 도처에서 정상(頂上)에 도달했다. 이들은 황창규사장을 비롯한 유력한 CEO집단의 대종을 이루고,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각종 방송언론사와 사회·종교단체의 최고수뇌부, 그리고 여야 지도부와 정부의 국장급 이상 최고위공직자로 떠오르고, 박근혜 전 대표를 위시한 몇몇 575들은 대권주자 반열에도 끼어들었다. 이러니 차기정권도 575정권이기 십상이다.

    4·19와 6·3세대를 아우르는 664세대(60대 나이, 60년대 학번, 40년대생), 575세대, 386세대는 제각기 판이한 정치경험을 갖고 있다. 664세대는 이승만 부패정권을 무너뜨리고 박정희정권의 한일 국교정상화에 항거한 ‘반부패·반일 민족주의 세대’다. 이와 대비되는 중간세대인 575세대는 박정희정권의 유신독재를 무너뜨린 ‘반유신 민주화 세대’다. 반면, 386은 신군부의 맹동적 폭압정치와 그늘진 ‘산업화’를 적대하는 기계적 대척논리로 무장한 시대착오적 ‘계급혁명 세대’다. 386은 지금도 마음 속에 (신군부 못지않은) 맹동성과 적대적 독선을 품고 있다.

    664세대는 민주주의자라기보다 ‘청렴한 보수적 민족주의자들’이다. 하지만 575세대는 의회 다수의사를 국민의사로 의제(擬制)하는 ‘의회주권’ 원칙에서 유신체제를 위한 국회의 ‘시녀화(侍女化)’에 반대하고 ‘의회주권’을 위해 싸운 의회민주주의자들이다. 반면, 386은 의정활동보다 떼거리정치와 ‘떼법’을, 민주적 절차보다 피켓과 농성을 중시하는 ‘반의회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이다. 이들에게 국회는 신성한 ‘의회주권’의 헌정기관이 아니라 기껏 ‘떼거리정치의 도구’일 뿐이다. 국회의 노대통령 탄핵을 ‘의회쿠데타’로 몬 386의 무지한 폭언이 이들의 반의회적 포퓰리즘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575세대는 664세대의 ‘청렴한 민족주의’를 계승하지만 인권과 민주주의를 소홀히 하는 이들의 맹목적 보수주의와 폐쇄적 민족주의를 우려한다. 동시에 575세대는 진보를 중시하지만 의회를 도구화하는 386의 포퓰리즘을 위험시하는 한편, 얕은 도식적 지식으로 진보노선을 천박화시키고 창의적 사색과 지성을 적대하는 이들의 급진적 맹동주의를 걱정한다. 이런 까닭에, 자기 세대의 고유한 중용정신을 지켜온 575세대들은 아래 세대의 ‘과(過)’로서의 ‘아비 없는’ 혁명적 급진주의와 위 세대의 ‘불급(不及)’ 증후군인 ‘앞못보는’ 보수주의를 다 거부하고 ‘혁신과 전통의 조화’, 즉 중도의 ‘개혁주의’ 노선을 걸어왔다.

    요즘 여야가 모두 ‘중도’를 내거는 것도 575의 부상을 알리는 징표다. 575는 뜨고 있다. 중도개혁세력의 통합신당도 따라서 ‘575중심’이 될 수밖에 없고, 한나라당의 정권교체 ‘대업’도 당의 ‘중도화’ 없이 논할 수 없는 것이다. ‘과’와 ‘불급’을 넘어 시대적 요청에 적중(適中)하려는 575의 중도정신이 정치적 좌우명이 된다면, 올 대선에서 어느 당이 이기더라도 장장 5년의 소모적 좌우갈등을 종식시키고 나라에 안정과 도약을 가져올 것이다. 아울러 분명해지는 것은, 664는 575의 헤게모니에 얹히지 못하면 생애 최고의 야망을 이룰 수 없고 386에서 업그레이드된 486세대는 575선배들의 주도권을 인정치 않으면 다시 쓰일 기회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