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홍정기 논설실장이 쓴 시론 '상상(想像)개헌론 제4안'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초 1월9일부터 개헌을 ‘회심(會心)의 거국 의제’쯤으로 받들어 왜 지지 여론의 불이 지펴지지 않느냐고 끌탕들 해왔다. 2월27일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초청 취임4주년 회견도, 지난주 개헌제안 만2개월 회견도 다 그랬다. 2월27일 “되느냐 안되느냐 저울질해서 되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되든 안되든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게 정치인의 도리”라고 자르는가 했더니 8일엔 “제 정당 대표 및 대선후보 희망자들과 개헌의 내용과 추진 일정 등에 대해 대화하고 협상할 뜻이 있음을 밝힌다”면서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1년 가까이 줄일 수 있다면 개헌안 발의를 차기 정부와 국회에 넘길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되든…, 글쎄.

    안되든… 아무렴. 개헌은 5단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 헌법 제89조 3호의 국무회의 심의, 제128조 1항의 발의, 제129조의 공고, 제130조 1항의 국회 의결 및 2항의 국민투표를 차례차례 거쳐야 한다. 제1, 2단계인 국무회의 심의와 발의야 마음먹는 그날도 가능하지만 제4, 5단계까지 다 거쳐 개헌 여부가 확정되리라고는 아무도 안믿는다. 노 대통령인들 설마 모르랴.

    성사되지도 않을 개헌을 두고 정부는 개헌추진지원단을 둬왔고, 그 지원단이 노 대통령 회견을 더 빛낸답시고 그 직전에 제1, 2, 3안이라 번호 붙여가며 대선·총선을 2012년 초에 동시 실시하느니 시차 실시하느니 그도저도 마뜩찮으면 아예 내년으로 다 몰자느니 하는 개헌시안을 발표했으니 얼마나 할 일 없고 하릴없는 정부인가. 그런 지원단 제1, 2, 3안에 필자가 역시 성사되지 않을 제4안을 덧붙여보는 것은 어차어피 피장파장이다.

    노 대통령은 앞서 1월11일 “임기단축을 하지 않겠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 “개헌이 부결돼 내가 임기를 그만두게 되면 (한나라당은) 당연히 부결시키고 선거를 빨리 하고 싶지 않겠나.” 민주화 20년 시점에서 4년 연임제로 환원하는 게 대의와 명분에 다 부합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직을 걸진 않겠다는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임기를 줄인다(고 약속하라), 나는 아니라니까…’쯤이다.

    개헌이 되든 안되든 그 발의가 곧 역사적 책무임을 역설해온 노 대통령이 올해 2007년의 의미, 곧 민주화 20년의 뜻을 기리자면 다음 대통령의 임기가 아니라 혹 자신의 임기를 줄인다면 어떨까. 대통령이 사임하면 헌법 제68조 2항에 따라 60일 이내 후임자를 선거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정확히 5월30일 임기를 시작하게 하면, 다시 말해 노 대통령이 사임한 뒤 공직선거법 제35조에 따라 대통령권한대행이 늦어도 선거일 29일전에 공고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5월29일을 대선일로 확정하면 그 다음날 취임하게 될 제17대 대통령의 5년 임기는 2012년 5월29일 끝난다. 차기 제18대 국회의원의 4년 임기가 끝나는 바로 그날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정확히 맞아떨어는 진다.

    물론 다다음 대통령과 다다음 국회의원 임기는 또 1년씩 더 틀어지게 된다. 필자도 굳이 맞출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다만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그렇게들 타박하니 개헌을 일단 미루고 2012년까지 딱 맞아떨어지게 실험해보자는 것뿐이다. 노 대통령이 하야 특별성명으로 그때까지 어떻게든 임기 불일치 문제를 재검토해 달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해온 말에 그나마 무게가 실릴지 모른다 - “훗날의 평가와 기록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나중에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이 ‘그때 해야 했는데, 절호의 기회였는데, 발의권을 가진 사람들이 대선 분위기에 매몰돼 책임을 방기, 개헌 기회를 놓쳤고 본격적인 개헌 길마저 안열었다’는 평가를 듣고 싶지 않다.”

    더 늦기 전에 성사되지 않을 제4안부터 접는다. 노 대통령이 사임까지 불사할 것 같지도 않지만, 그에 앞서 앞으로도 대통령·국회의원 임기가 엇물리게 하는 것이 정치권력을 보다 자숙하게 하리라고 믿으면서 실없는 말, 말, 말을 늘릴 것도 아니다.

    그래도 한줄기 걱정이 더 남는다. 노 대통령이 스쳐지나치듯 “1단계 개헌으로 장해요인을 제거함으로써 대한민국 사회구성원 모두가 참여하고 합의하는 본격적 개헌 논의의 첫 관문을 열어놓자”고 한 말의 여운이 개운찮다. 여차하면 헌법이 허구한 날 별의별 개헌론에 다 휩싸일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