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2일자에 실린 헌법학자 권영성 한림대 교수와의 인터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권영성(73.사진) 한림대 석좌교수는 11일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연임제를 허용할 경우 독재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정치적 프리미엄을 누리는 현직 대통령은 어용단체와 친정부적인 미디어를 동원해 선거에서 손쉽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5년 단임제와 4년 연임제에 대한 논의는 '민주'와 '독재'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에 대한 평가는.

    "시기뿐만 아니라 내용 자체가 이론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면 된다는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주장처럼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시기를 맞추기 위해서는 헌법 조항을 하나 더 고쳐야 한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말은 투포인트 개헌이다. 또 정치적 상황에 따라 선거구제.양원제 등도 논의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져 개헌을 둘러싼 논란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대통령이 개헌의 필요성으로 주장한 정책적 일관성 유지와 책임정치 구현 등에 대한 생각은.

    "우선 합리적 정책을 내놓고 여론을 존중하고 야당의 협조를 받으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의 일관성은 유지된다. 책임정치를 하려면 정부 정책에 대한 여론의 지탄과 비난이 있을 경우 수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부에선 자의적으로 밀고 나가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단임제였기 때문에 책임정치를 안 했다는 얘기인가. 5년 단임제는 한국의 정치문화가 더 성숙해 독재의 우려가 없어질 때까지 필요하다. 예전엔 독재를 하기 위해 사람을 가두고 고문해야만 했다. 그러나 요즘 독재는 포퓰리즘과 어용단체, 친정부 미디어를 동원하는 방식이다."

    -대선과 총선의 시기는 일치해야만 하나.

    "양대 선거를 같이 치르면 정치적 안정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집권당과 다수당이 같아져 일당 독재를 불러올 수 있다. 반면 따로 치를 경우 여소야대가 될 수 있어 정치적 안정이 다소 떨어진다. 그러나 권력 견제로 민주주의 원칙이 지켜진다. 한국의 정치적 현실에선 '독재'와 '민주'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다. 미국도 대통령 임기 중간에 의원의 상당수를 선출하는 중간선거가 있지 않은가."

    -대통령은 기자 간담회에서 독일의 경우 51번이나 개헌을 했다고 말했다.

    "횟수는 맞지만 대통령이 잘못 이해한 점이 있다. 독일은 연방의회에서 개헌을 법률 개정 형식으로 처리하는 등 우리와는 방식이 다르다. 한국처럼 국민투표를 거칠 필요가 없다. 개헌을 자주 했더라도 평화질서.기본권 보장 등 헌법의 기본 틀은 절대 손댈 수 없다는 헌법 본문에 따랐다. 독일이 헌법 개정한 내용은 양심적 병역 거부.통신의 자유 제한.주(州)의 경계 재조정 등이었다. 그래서 개헌을 51번 했지만 나라가 시끄럽지 않았던 것이다."

    -현행 헌법이 개정된 지 20년이 돼 권력구조 이외의 많은 조문을 고치는 포괄 개헌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정보 프라이버시 등 새로운 권리를 추가하자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 헌법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다'(17조)고 나와 있다. 전 세계적으로 헌법이 사생활 보장을 규정한 경우는 4, 5개 국가 정도다. 기본적 사항은 헌법에 있기 때문에 세부적 사항은 개별 법률에서 다루면 된다."

    -대통령은 오늘 기자 간담회에서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했는데.

    "야당 정치인들이 얼마 전까지 개헌을 주장하다 갑자기 개헌에 반대하는 등 말을 바꿨다는 대통령의 지적은 맞다. 그래서 대통령은 야당이 정략을 쓴다고 했다. 그러나 개헌 제안은 집권 초반기 또는 2~3년 전에 했어야 했다. 이같이 대선을 앞둔 해에 갑작스러운 제안이 바로 정략이라는 게 야당의 논리다. 대통령의 정략과 야당의 정략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없다."

    -대통령은 또 '필요할 때 개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현실을 바꾸는 게 무조건 개혁은 아니다. 국익이나 민생이라는 목표에 일치해야만 개혁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에서 개혁이라고 한 것을 보면 대통령이 자기 자신에게만 필요한 것을 개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대통령이 진정 국가 발전을 위한다면 개헌 제안을 하지 말아야 했다. 현행 헌법에 손댈 부분이 많지 않다. 개헌보다는 어떻게 하면 헌법정신에 합치되도록 국정을 운영할 것인가에 집중했으면 한다."

    ◆권영성 교수=헌법학계의 원로. 서울대와 독일 괴팅겐 게오르크아우구스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서울대.한림대에서 후학을 지도했다. 한국 헌법학에서 헌법의 본질 연구와 헌법학 방법론의 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0년대 논문과 강의를 통해 헌법의 규범성과 기본권 보호 등을 강조해 당국의 눈총을 사기도 했다. 저서론 법대생의 필독서인 '헌법학 원론' 등이 있다.